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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Mar 19. 2020

전원생활 일기

봄바람이 살랑살랑

세상은 코로나니 선거에 정신없이 돌아 가지만 조용한 이곳에서는 마치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세상의 바람이 불지 않는 듯 자연의 시간 속에 흘러간다. 

우수 경칩이 지나고 날씨가 따뜻해지니 들녘의 모습은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듯이 서서히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쟁기를 걸쳐 메고 긴 고무장화를 신은 촌노의 발걸음에 힘이 있다. 뒤 다라 걸어가는 할머니도 걸음이 민들레 홀씨가 가볍게 날리는 모습과도 같다.

경운기의 소음이며 트랙터 움직이는 소리가 대지를 가르며 생명을 불어넣는다. 


지난 그렇게 열심히 풀을 깎았건만 빛바랜 누런 풀들이 겨울바람에 뒤엉켜 흉한 모습을 하고 있다. 

풀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작물을 심든 나무를 심든 할 수 있다. 

낫을 들고 쇠스랑을 어깨 메고 긴 고무장화를 신고 옷은 시골 농부의 모습이지만 일하는 모습은 이직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한 상태이다. 

어느새 집 아래 밭에도 아주머니가 와 거름과 비료를 주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일에 열중한다. 

 잠시 뒤 아랫집 아저씨가 엔진 소리 우렁차게, 낡은 트랙터를 끌고 밭에 등장한다. 트랙터가 몇 번 지나가고 나니 시원하게 목욕이라도 한 것처럼 땅은 말끔하게 갈아졌다.

여유 있는 웃음을 나에게 던지고 유유히 사라지는 아저씨의 모습이 세상 다 가진 듯 여유로운 표정이다.

이제 아주머니가 괭이 하나 들고 골을 판다.  거기에 비닐 멀칭을 하고 있다. 

봄에 제일 처음 심는 작물이 감자다. 40년 베테랑 농부답게 만들어지는 골이 곧고 가지런하다. 

역시!

작은 텃밭 하나 제대로 못해 낑낑거리는 내가 부끄럽다. 그래도 일하는 나 자신의 기특함에 스스로 감탄한다.

몸으로 움직이는 일, 노동!

거짓이 없는 신성한 몸놀림이다. 

노동이 신성하다는 말은 직접 체험해 보면 그 뜻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사우나에서 억지로 땀을 흘리는 것보다 한 시간 동안 괭이 하나 손에 쥐고 일하다 보면 찬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봄기운 속에서도 이마와 등에 땀이 흐른다. 그 흘린 땀이 청량음료 한 잔 마실 때의 느낌보다 더 상쾌하다.  


봄이 되면 늘 뭔가를 심는다. 감자도 조금 고추, 호박, 참깨, 들깨, 콩을 심지만 풀과 전쟁은 만만치 않다.

주변에서는 제초제를 뿌리라고 하지만 힘들어도 그것만은 하지 않는다. 

병충해 약도 견디다 견디다 두세 번 정도 치는 것이 전부이다. 그래서 그런지 수확은 매년 신통치 않다.

열심히 잡초를 뽑아 보지만 역부족이다. 혼자 김매기 하는 것도 어느 정도여야 말을 하지 풀과 벌리는 전쟁에서 나는 아직 승기를 잡지 못했다. 

주변에서 제초제를 치라고 이야기한다. 

단연코 반대다.

땅이 살아있다. 숨을 쉰다

펄 벅의 소설 대지에서 처럼 땅은 우리에게 생명을 품어 준다. 

땅이 품은 생명이 대지를 뚫고 세상 밖으로 모습을 보인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아래 집 밭에 아주머니가 일하다 말고 숨도 고를 겸 우리 텃밭에 놀러 오신다. 

땅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오랜만에 본다고 하신다. 

화학 비료 제초제 가공 퇴비를 사용하다 보니 아래 밭에 지렁이가 없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늦가을까지 집 마당에 온갖 잡새들이 마당에 진을 치고 산다. 늘 부리로 땅을 쪼아 대고 있다. 

조금 과장 되게 말하면 다른 밭에는 새가 없다. 

아내는 늘 우리 마당과 텃밭이 새들의 놀이터라고 말한다. 


아직 초 봄의 기운이 남아 있는지 풀들이 누렇고 뻣뻣하다. 손으로 뽑아도 뽑혀나간다. 

한 곳에 모아 두면 저절로 썩고 삭아 없어진다. 자연의 그렇게 순환하는가 보다.

정리하고 나니 제법 텃밭의 느낌이 든다. 감자를 심을까? 지금 감자를 심을 철이기는 하다. 아래 밭에 아주머니 손에 한 주먹 뭔가를 쥐어 준다. 

마른 옥수수 알갱이다. 아무 곳에나 대 여섯 개씩 심어 놓으란다. 여름철 초록의 느낌이 물씬 날 듯하다.

열심히 심었다. 쪼그리고 앉아 심는 일도 힘들다. 무릎이 아프니 당연히 힘들다. 일어나려니 입에서는 

'아이고아이고' 하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아직 60 십이 되려면 좀 멀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 

하늘이 갑자기 조용하다. 하늘을 쳐다보니 매 두 마리가 신비스러운 소리를 내며 하늘을 빙빙 돌고 있다. 

작은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위엄이 보인다. 

새나 작은 짐승들은 공포의 시간이지만 인간인 내가 바라보는 모습은 말 그대로 신비로운 자연이며 동물의 세계다. 

오후 세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햇살은 따뜻하다 못해 따갑다. 비타민 D를 만들어 볼 거라고 모자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제법 햇살이 얼굴을 간질이고 있다. 

집 안에 뛰어 들어가 모자를 찾아 쓰고 다시 일을 한다. 겨울 내내 집에만 틀어 박혀 있어 그런지 몇 시간 하는 간단한 밭 일에도 곡소리가 절로 난다. 

사방 주위가 너무 고요하다. 어느새 아래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도 일을 끝내시고 어디로 가셨고 주위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 고요한 적막만이 감돈다. 

내가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마저 멈춘다면.....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용히 집 앞에 보이는 산을 바라본다. 

자연의 숨소리가 들린다고 하면 믿을까

이 고요한 적막 속에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

산과 들의 정령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온다. 

자연의 소리들이 나의 가슴속에 부딪쳐 메아리가 되어 퍼져 간다. 

나는 자연의 소리에 마음속 깊이 있던 지난겨울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 낸다.

나는 이제 맑디 맑게 정화되어 간다. 

봄옷을 입고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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