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나의 유일한 친구다?

by 마리아

나이가 들어 갈수록 생활의 폭이 준다. 이제까지 살던 도시를 떠나 전원에 들어와 살다 보니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연락도 뜸해지고 새로 사람을 사귀는 일도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 친구가 최고라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자기 옆에 수십 년을 살아온 아내나 남편이 최고라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나이가 들면 피붙이가 최고라고 하며 형제자매가 제일이다 하는 사람도 있다.

뭐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형제자매도 나이가 들어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들도 적잖이 봐 왔다. 친구들도 그저 서로 어울려 한 잔 할 때는 '친구야! 친구야!'를 연발해도 헤이진 뒤에 찾아오는 공허감은 차라리 만나지 않았을 때 보다 못한 때도 있다.

남편과 아내도 나이가 들어 서로 애틋함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에그 저 원수 어디 밖으로 나가지 않나' 하는 부부도 있다.

자식이 말동무나 가장 좋은 이해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그다지 미덥지 않은 듯하다.

결국 여러 사람과 어울려 살든 아니며 혼자 지내든 마음 한 편에 공허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것저것 취미 생활도 만들어 보고 더 많은 사교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어차피 시골에서의 삶은 지금까지의 사람과 생활 방식이 단절이 된다. 지극한 단순한 생활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니 이제껏 살아왔던 길지도, 짧지만도 않은 삶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생각이 많아지니 머리가 복잡하다. 후회되는 일, 즐거운 일, 슬픈 일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꼬인다.

낡은 노트북을 펼치고 또닥또닥 거린다. 느린 독수리 타법으로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낸다. 마음같이 잘 써지지 않는다. 느린 속도의 타법은 하루 종일 써도 종이 용지 한 장을 채우지 못한다. 덕분에 생각이 정리되어 간다.

저녁 시간에 되고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 순간 다시 노트북을 펼치고 또닥또닥 느린 소리를 내며 한 자 한 자 쳐 간다.

어느새 글은 완성이 되고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상념에 젖어든다. 자신을 그렇게 진지하게 바라본 날이 있었던가 한다.

생각보다 전원생활은 단순함의 반복이다. 대부분 귀촌한 이들이 이 사람 저 사람과 공동체처럼 지내는 이유는 그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이다.

도시에서 그만큼 사람에게 시달렸으면 됐다 싶었던 나는 이제 나와 진정한 대화 상대자를 만났다.

텃밭을 가꾸고 저녁이면 텔레비전 앞에 아니면 소설책 몇 자 읽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루함이 없어졌다.

형식에 맞지 않지만 나름 소설도 써서 나의 못다 이룬 사랑이야기 속에 감취진 마음도 끄집어내어 본다.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미련을 글로 만들어 써보고 만족한 기분을 느낀다. 재미가 솔솔 나기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림 그리는 제주가 없었는데 내가 보는 사물을 글로 표현해보는 것도 그리는 일 못지않게 재미있는 작업이다.

예전에 나름 책을 많이 봤다고 자부했건만 자꾸 글을 쓰니 지금까지 읽었던 책은 모기 발에 워커였다.

읍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읽는다.

그냥 독서를 할 때와 글을 쓰면서 독서를 할 때 읽는 기분은 그 느낌이 아주 다르게 다가온다.

책 읽는 재미가 색다르게 다가온다.

마음도 오히려 밝아진다. 답답하던 마음도 글과 함께 사라진다. 혹자는 자기 세계에만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하지만 자연과 함께 지내는 시간도 있기에 오히려 더 푸근하고 넓어지는 느낌이다.

아침저녁 자연의 노래와 더불어 지내니 몸은 더 바빠지지지만 마음의 풍요로움은 가득 차 오른다.


후련하고 시원하다. 격렬하게 내지른 글을 찬찬히 읽고 고친다. 가끔 이성을 잃고 써 내려간 글을 다듬으며 나의 마음을 다스린다. 어쩌다 내가 써도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읽을 때면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구나 라고 속으로 되뇌며 스스로를 대견해하기도 한다.


학창 시절 낙서를 하면 혼이 났다. 수업 중에 노트나 교과서에 낙서를 하다 들키면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낙서를 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가르치지만 작은 낙서 속에 삶이 묻어있고 그 속에 내가 숨어 있다.

사람의 감정을 억누르는 규범은 잘못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심지어는 식물이든 감정은 있다.

감정은 모든 생명체가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어야 한다. 카타르시스란 바로 분출과 표현에서 생긴다.

어느 날 문득 나의 잡문과 선사시대 동굴 벽화가 묘하게 교차한다. 그때 그 선사인이나 나나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글은 생각의 모습이다. 생각은 흘러가는 물이고 글은 그 물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는 서 있는 나무다.

생각이 주는 기쁨의 크기보다는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기쁨이 더 크다. 그래서 매일 조금의 글이라도 써 내려간다.

밖은 세찬 비가 내리고 바깥일을 할 수 없는 오늘 하루 온종일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나에게는 주어진 황금 시간이다.

오늘 하루 마음껏 나와 대화하고 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려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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