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넘게 비가 내려고 비가 그친 뒤에 더위의 기세가 맹렬하다. 정오를 넘어서는 시간부터는 폭염의 기세에 눌려 꼼짝하기도 어렵다.
해발 400m의 산골이라 어지간해서는 푹푹 찌는 날씨를 볼 수 없는데 비가 그치고 난 날씨는 밖에 잠시 서 있어도 땀이 흐를 정도다.
주위가 조용하다고 싶어 시계를 보면 점심시간쯤이다. 이때부터 대 여섯 시까지는 그저 집에서 책을 읽고 선풍기 바람이 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쯤 마을 회관에서는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는 녹음된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른 아침 서너 시간이 제일 서늘하다. 대략 6시 반에서 9시 반 정도가 일하기 아주 적당하다.
아침잠이 적은 편이라 오늘은 큰 마음을 먹고 풀을 깎기로 했다. 비가 오는 동안 풀이 너무 많이 자랐다. 잡초라고 하지만 식물의 이름도 있고 철마다 예쁜 야생화가 핀다. 그리서 잡초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래도 너무 무성하면 풀 속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여름 동안 대 여섯 번은 깎아 줘야 한다.
예초기에 기름을 채우고 오래간만에 시동을 걸었다. 몇 년 된 기계지만 아직도 건제하다. 시동을 거니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시동이 걸린다.
'위잉위잉 스윽스윽'
날카로운 칼날에 풀이 베어나간다. 군데군데 숨어 있던 개구리들이 깜짝 놀라 뛰어 어른다. 놀라 뛰어오르는 개구리 때문에 내가 다 놀랄 지경이다.
마당에 심어 놓은 아로니아는 초록이 가득한 그 싱싱한 잎들이 어느새 주황색과 노란색의 옷으로 갈아입었고 여름을 뒤로한 채 떠나고 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앙상한 가지만이 남고 땅에는 색이 바랜 잎사귀가 뒹굴며 이 여름을 불태운 자취만이 남길 것이다.
풀을 깎는다. 뭔가 달리진 풍경이다. 깎여나간 풀을 밑 뚱 색이 초록을 벗고 빛바랜 노랑으로 바뀌고 있었다.
계절이 변하고 있다. 아직 뜨거운 태양이 그 힘을 자랑하고 있지만 태양이 힘자랑하는 그 순간에도 자연은 카멜레온의 변신처럼 계절의 색을 바꾸고 있었다.
그렇게 비가 내리고 그렇게 무더운 날씨에도 계절은 무소의 뿔처럼 자기 길을 걸어간다.
세상은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며 혼란스럽다. 작은 일에 다투고 사람을 미워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 등을 돌린다. 세상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자연은 그저 자기 길을 걷는다.
아무리 사람이 위대하다 해도 사람의 삶도 흘러간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힘이 있다고 뽐내는 사람도 자신이 약하다고 하는 사람도 자연 속에서 흘러간다.
알 수 없는 그 어느 곳을 향해 자연도 인간도 흘러가고 있다.
자연을 보고 지내면서 욕심도 사라진다. 마치 어머니의 품과 같은 자연에서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다 가고 싶은 작은 욕심을 내어 본다.
그 욕심마저 과한 것이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