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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Sep 17. 2020

황탯국을 내 손으로

아내는 바쁘다. 주말 부부이기에 나는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아내가 간단한 장을 봐주면 거기에 맞춰 나름대로 음식을 만든다. 

혼자 살아왔던 시간이 길어 음식 해 먹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 먹었던 기억보다는 사 먹고 라면 끓여 먹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밥이라고는 볶음밥 만들어 먹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일은 옆에 잔소리꾼이 있어야만 해결이 된다. 아내는 혼자 먹고 있을 내가 안쓰럽게 생각되었는지 반찬 만들 때마다 거들라고 하고 나는 아내에게 성질을 부리고 했던 일이 부끄럽기도 하고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는 기본으로 한다고 하지만 그 마저도 아무렇게나 하던 때와 달리 맛을 내려고 하니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두 가지 음식은 그렇다 치지만 미역국과 황탯국은 내가 좋아하는 국 종류지만 내가 만들어 먹어 본 기억이 있는지 없지 조차 가물가물하다. 

아내의 가르침을 따라 조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닐 듯했다. 말린 황태를 물에 불렸다. 말라비틀어진 황태 살이 물속에 들어가니 얇고 가늘던 살이 퉁퉁 부어오른다. 손으로 만져 보니 꼭 스펀지 손으로 누르는 느낌이 든다. 

육수를 내어도 좋고 그냥 해도 좋다는 아내의 말을 생각했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쓰라린 속을 부여잡고 전날 있었던 일을 후회하며 쓰디쓴 입맛을 황태의 구수하고 시원한 맛으로 달랜다. 그때 단골 식당에서 조리하던 모습을 어깨너머로 본 기억이 났다. 그저 맹물을 붓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굳이 육수를 낼 필요가 없다 싶었다. 황태 그 자체도 육수를 내는 좋은 식재료인데 굳이 황태 맛을 반감하는 육수를 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참기름 조금 넣고 볶았다. 

그리고 다른 물을 쓰지 않고 황태 불린 물을 그대로 부었다. 혹시나 불린 물에 황태의 육즙이 스미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그대로 그 물을 썼다. 

무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없는 것을 어떡하겠나! 대신 양파를 얇게 썰어 조금 많이 넣었다. 육수 만들 때도 사용하는 양파인데 뭐 어떨까 싶어 좀 많이 넣었다. 

다진 마늘은 감칠맛을 더해 주니 조금 넣어 보기로 했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고 뒤 이어 깍둑 썬 두부와 파를 넣고 한 소꼼 더 끓이고 불을 줄였다. 향은 기억 속 어머니가 해 주신 국 냄새 그대로였다.

맛은 어떨지 자신이 없었다. 어머니의 손 맛을 기억하며 한 국자 떠 봤다.

냄새는 추억을 소환한다. 오늘도 황탯국 냄새에 어린 시절 어머니기 부엌에서 국을 끓이시던 모습이 생각나게 한다. 

그때 어머니의 모습을 지금 보다는 훨씬 젊고 날쌘 모습이셨다. 그리고 나를 불러 국 맛을 보라며 커다란 국자를 후후 불면서 내 입에 가져다주신던 어머니 그리고 입맛을 본 나는 구수하고 시원스럽게 맛깔난 국물을 맛본다. 

어머니의 손맛을 말로 표현할까! 맛있다는 한 마디면 그만이지!

 입가에 여운으로 남아 혀를 입 주변에 돌리면서 맛있다고 말한다.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또렷이 되살아 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나도 혼자지만 그때처럼 국자에 조금 국물을 퍼 맛을 본다. 

싱겁다!

물론이다. 아무 간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집 사람 집에서 가져온 집 간장으로 간을 한다. 시커면 집간장은 보기만 해도 입술이 찌그러진다. 그 짠맛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한 숟가락을 넣고 다시 맛을 봤다. 조금 전보다는 덜 싱거웠다. 그저 먹기 딱 좋지만 내 입맛이 다른 사람보다는 짠맛에 대한 거부가 심해 다른 사람이 먹으면 싱겁다는 느낌을 준다. 아내도 심지어 내가 끓인 라면도 싱겁다고 하니 할 말 다했지 뭐!

드디어 완성이닷!

나는 국그릇에 밥을 조금 퍼 담고 국을 그릇에 담았다. 일명 황태국밥을 만들었다. 

시원한 황태 국물 맛이 온몸을 휘감는다. 몸은 마치 목욕탕의 온탕에 들어앉은 그 기분 그대로였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입 안은 시원하고 감칠맛이 맴돈다. 

비록 혼자 맛있다고 즐기는 한 끼 식사지만 내가 스스로 만들어 먹고 있는 사실이 나에게 성취감을 던져 준다.

그저 사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지 않고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내 손으로 야채를 다듬고 계란을 풀고 도마 위에 칼질을 하고 끓고 있는 가스레인지 위의 열기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으며 만든 음식이 대견했다. 

아니 그렇게 노력한 내 모습에 나 스스로에게 대견했는지 모른다. 

오늘 아침 잿빛 하늘은 바늘을 콕 찌르면 금방이라도 터져 비가 쏟아질 듯하다. 

안개가 쌓인 마을은 적막만이 사방으로 누르던 이른 아침 뜨끈한 황탯국 한 그릇이 어둠을 걷어 내는 햇살처럼 다가온다. 

또 하나의 즐거움이 내 삶의 수첩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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