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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Feb 03. 2021

사주 이야기

사주명리학 공부의 매력

몸에 붙은 습관이 무섭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고 일어나서 자리에 앉아 주역 괘를 놓고 하루를 시작한다. 

달력과 만세력을 보고 하루를 살핀다.

주역 계사전에 

"거처하여 평안한 자는 역의 차례를 알고 살아가고 즐거워하며 세상을 완미 하는 자는 효의 말을 살펴 이에 응하여 살아가고 이런 까닭에 군자가 집에 거처할 때는 대자연의 형상을 관찰하여 계사를 깊이 탐구하고, 행동할 때에는 대자연의 변화를 관찰하여 점을 탐구하는 것이니, 이로써 하늘로부터 도와 길하여 이롭지 아니함이 없다."

라는 글이 있다. 알면 무서움도 두려움도 사라진다. 

코라나가 만든 펜데믹 시대의 불확실성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 편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역을 알고 기다림을 배웠으니 두려움이나 무서움 조급함은 생기지 않는다. 


주역은 점을 치는 책이다. 괘를 만들어 그 괘의 변화를 보고 괘사 효사로 대입하여 미래를 읽어 본다. 

점을 쳐서 미래를 알게 된다. 불안한 마음이 일단 나쁘든 좋던 알게 되면 편안해진다. 


역을 안다는 말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역을 공부해서 일어날 일을 알고 길흉을 안다면 그렇게 마음에 조바심을 내거나 두려워 하는 일은 없다. 


아직 음력으로 달이 바꾸지 않았지만 아는 지인들로부터 한 해 신수부탁을 받는다. 

가장 많이 묻는 말이 이 펜데믹 상황이 언제 끝나는가냐는 말이다. 나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을 해 준다. 

에~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밖에 말할 수밖에 없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분노가 시작되었다. 늘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자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은 그런 자연을 돌보지 않았다. 


사주를 보면 대체로 어떠한 시기에 사람들의 사주가 비슷할 때가 있다. 

6.25세대가 대표적인 세대이다. 그 연령 때의 사람들 사주가 왜 그런지 사람을 잃고 어렵고 힘든 시절을 보낸 흔적이 남는다. 

개발 독재 시대의 세대가 그렇게 흔적을 사주에 남긴다. 

사주를 봐 달라는 사람들 대부분은 부귀영화 재물 같은 물질에 관심이 많다. 

사주에 재물이 붙고 돈이 되는 사주를 가진 사람이 물으면 대답하기 좋고 서로 기분이 좋다. 

대부분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아 묻는다. 사주에 재물이 없거나 장사나 사업을 할 팔자가 아닌 사람도 꽤 있다. 

하지 마라고 한다. 그러나 이왕 벌였다고 말하거나 왜 나는 아니냐고 묻는다. 

타고 난 사주를 어떻게 말할까? 돈을 벌고 싶다고 기를 쓰고 묻는다. 

작은 일에 기뻐할 수 있냐고 묻는다. 말은 기뻐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 100원 벌면 70원 60원에 만족할 수 있냐고 묻는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동의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에게 다 자기 그릇이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는다.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 가끔 본다. 그 사람에게 나는 조상 (신은 조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 물려준 건강한 육체가 있으니 몸으로 하는 일을 한다면 부자는 아니어도 먹고사는데 힘은 들지 않으리라 말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동의하지 않았다. 

가끔 길에서 나와 마주치면 마치 예전에 태공망 이야기를 잘 꺼낸다. 

주나라 왕이 강태공에게 낚시하는 모습을 보고

" 뭘 낚소?" 물으니 

"세월을 낚습니다."
하는 소리를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나에게 자기도 때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 앞에서 그저 웃고 만다. 

몇 년째 만나도 늘 같은 소리다. 때를 기다린다고.

나는 또 웃는다.

사람은 자신의 크기를 알아야 한다. 그게 제일 중요한 공부다. 어렵지만 그렇게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 사는데 두려움이 없다. 

또 다른 하나는 건강과 수명이다. 건강해야 명이 길고 결국 수명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다 알려 줄 수 없다. 특히 수명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말하지 않는다. 

수명 알아 뭐하겠나! 

길게 산다고 하면 기쁠까? 명이 짧다고 하면 슬플까?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특히 수명을 알려 주다가 경치는 수가 있다. 물어보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알면 뭐하냐고 알면 병이고 모르면 약이 된다고 이야기 하지만 은근히 계속 물어본다. 대답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으면 한 번 해 보고 싶다. 언제가 사람은 모두 죽는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죽음 앞에서 만큼은 공평하다. 


같은 사주의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나 사는 방식은 다를지  몰라도 결국 운이 흐르는 방향은 같다. 주변의 환경이나 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똑같은 직업이나 길은 아니어도 운명이 흘러가는 모습은 대체로 같다. 

그래서 나는 아는 사람들에게 큰 그림만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추길 피 흉이라고 길은 취하고 흉은 피하는 방법 정도만 알려 준다. 

이 공부를 오래 하다 보면 결론은 큰 인생의 흐름은 거스르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으니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노력도 운명 안에 있다. 사주가 좋게 흘러가면 저절로 그 사람은 뭔가를 하게 되어 있다. 운이 나쁘게 흘러간다면 사람은 어떻게 하든 일이 꼬인다.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나는 사주와 주역을 공부하는 공부 자다. 사주에 대해 그리고 운명에 대해 한 마디만 하고 싶다. 

나 자신의 영혼을 포함한 나의 운명 전체를 사랑하면 그 속에 해답이 존재한다. 두려움도 사라진다. 

신이 있다면 좋은 것만도 나쁜 것만도 주지 않으신다.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게 있다. 그래서 음양이 있지 않은가!

살아가는 동안 좋았던 때 보다 힘들고 어려운 때가 더 많다. 살아가며 잊고 그 고통마저도 추억으로 남기에 사람은 살아간다. 주어진 운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닥 친일은 어쩔 수 없다.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실수를 만회하는 노력이 삶이다.


인간은 위대하다고 한다. 그래서 못할 게 없다고 하지만 코로나에 인간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두 손에 든 물질을 버리고 나머지 손에 정신을 쥐고 산다면 균형이 이루어지려나!

주역이나 사주는 기다림의 학문이다. 길고 긴 자신의 운을 기다리고 그때에 맞추어 움직이면 자기의 역량이 배가 될 수 있다. 

알면 두렵지 않다. 알면 기다릴 수 있다. 그래서 이 공부가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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