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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Mar 24. 2021

전원생활 일기

도시를 떠나 시골로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송두리재 바꾸는 데는  두려움도 생기고 용기도 필요하다. 

살아왔던 장소를 바꾸고 살아왔던 방식을 바꾸고 살아야 하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용기를 내어야 하는 일인지, 어쩌면 두려움이 앞서기보다는 용기가 더 필요한지 모른다. 

용기만 있다면 두려움도 극복하기 쉽다. 용기를 내어 보자.

그러나 그 용기가 모든 일을 실패하고 난 뒤에 쥐어짜듯 해야 한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함께 만든다. 

남의눈을 의식해서 뭐 하나 하는 소리를 하지만 지금껏 살아온 시간은 모든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앞에서는 나를 위로 하지만 뒤에서는 나를 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다. 뒤척이는 밤은 길어지고 기운이 빠진다. 


하던 일이 힘겨웠다. 제일 큰 문제는 돈이었다. 노력의 대가는 부도 수표로 돌아오기 일쑤였고 남에게 받기는 힘들어도 남에게 줄 돈은 빚을 내서라도 줘야 했다. 신용은 사업의 세계에서는 아주 큰 자산이기에 그 신용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일은 실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었다. 인간관계를 통해서 일을 받는 경우가 꽤 많았다. 자신의 실력과 정직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내성적이고 남 앞에 나서기 힘든 성격 탓에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뭔가를 주는 만큼 일은 따라왔고 그 뭔가가 소홀하면 일은 그만큼 줄었다. 

사업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나보다는 수완이 좋았던 동생에게 사업체를 넘기고 얼마 동안 백수 생활을 이어갔다. 쉬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지났다. 

아무리 노는 일이 사람에게 중요해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며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지루함에 이리저리 귀동냥을 하려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났다. 알고 지내던 선배가 무심히 흘러가는 말로 시골에 작은 농장을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어떠냐는 제안을 한다. 

시골!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시골이라는 말에 귀가 쫑긋 섰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단편 소설의 내용을 늘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다. 

도시의 삶에 지친 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전원생활을 잔잔하게 써 내려간 소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작가와 제목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작은 오두막 같은 집을 짓고 답답한 도시는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 싸여 답답한 모습이다. 

주상 복합 아파트가 유행처럼 지어지기 전에는 그래도 멀리 산도 보이고 가까운 집 주변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이 뚜렷이 보였지만 고층 아파트 덕분에 어디를 가도 회색빛 건물만 보인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라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월급이나 잠자리 같은 것은 물어보지 않고 다 짜고 고자 가겠다고 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달렸다. 여름이 절정에 달하는 계절이었다.

 주변은 초록이 물결치고 있었다.  농장 사무실이 내비게이션에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현실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꽉 들어찼다. 농사일을 몰라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주변의 경치가 너무 마음에 들어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면 할수록 점점 목적지가 다가 오자 불안한 마음은 극에 달했다. 

도착한 농장 사무실은 농장이 아니었다. 처음 이야기는 작은 농장이라고 했지만 농업 법인 같은 곳이었다. 직원도 두어 명 되었다. 작은 사무실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했다.

약초를 주로 재배하고 팔고 가공하는 농장이었다. 일반 작물도 아니고 약초농장이라는 생소함이 어깨를 짓누른다. 

책상에 앉아 있던 젊은 아가씨가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하니 한쪽 구석에 칸막이에서 키가 작고 머리는 하얗게 센 사람이 일어나 나를 쳐다본다. 

약간 말을 더듬 듯이 면접을 보러 왔냐고 말한다. 

앉자마자 나에게 농사를 짓어본 경험이 있냐고 묻는다. 아차!

사무실 분위기만큼이나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면접은 의외로 간단했다. 일할 생각이 있느냐는 말과 지낼 곳이 없으면 건물 일층에 숙소가 있으니 사용해도 좋다는 말이 전부였다. 조금 전 잔뜩 긴장했던 마음은 봄 눈 녹듯 사라졌다.  출근은 언제부터 하면 좋으냐고 물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을 하라고 말을 했다. 

쉽게 결정이 나서 오히려 나 자신의 마음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얼굴에 웃음기 없는 여직원의 표정부터 면접을 본 법인 대표라는 사람의 뭔가 기분 기분 나쁜 눈빛이 어딘가 개운치 않은 느낌을 주었다. 

막 대표와 면접을 마치고 일어나려고 하니 직원 두 사람이 사무실 안으로 온다. 그중 한 사람이 여기를 소개해 준 선배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미 그 사람에게 연락이 갔는지 그 사람이 나를 반갑게 맞이 한다. 

면접도 끝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와 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간단히 면접을 본 이유를 알았다. 

이제 처음 생긴 농업법인이라 월급도 잘 나오지 않고 직원들도 1년 새 여러 명이 비 뀌었다는 말을 한다. 

어쩐지 내가 쉽게 면접을 통과한 게 이상하다 했다. 나보고 잘 생각해 보라고 하지만 어차피 시골에 들어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니 일단 부딪쳐 봐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 친구는 나 보는 한 참 어린 친구였다. 제법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편이었다. 얼굴도 잘 생긴 편인데 말투가 거칠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잘 생긴 용모에 괜찮다 생각이 들지만 말을 꺼내는 순간 외모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다. 그냥 과묵하게 있는 편이 더 좋은 점수를 얻을 그런 친구였다. 

월급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사무실 안에 숙소도 있고 그리고 점심도 그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만들어 먹을 때 엉덩이 하나 붙이고 말 그대로 숟가락 젓가락 하나 얻으면 그만이다. 


첫 출근하던 날 점심은 정말 꿀 한 숟가락 입에 넣은 맛이었다. 직접 농사지은 쌀로 냄비 밥을 짓고 텃밭에서 따온 고추와 상추 맛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집에서 담근 된장으로 보글보글 지진 된장찌개가 약간 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구수한 맛에 묻혀 버렸다. 주위 사방을 둘러보면 논과 밭은 푸르게 펼쳐 있고 멀리 보이는 야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오전에 흘린 땀을 시원하게 씻어 준다. 일하는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꽃무늬 있는 작은 배낭에 숨겨온 이 지방 막걸리 한 잔으로 마른 목을 축이면 세상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바로 내가 바라던 삶이었다. 단순 무식하게 사는 삶!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도시에 온 허여 멀 건한 놈이 신기한 모양이다. 그 휘황찬란한 도시를 두고 왜 이런 촌구석에 왔니 하는 질문부터 여기 살면 속편 하다 하는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말씀을 하신 할머니의 아들이 2년 전에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서울서 대학을 나오고 이름 있는 직장에서 승승장구했지만 그만 사십도 되지 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죽은 모양이다. 며느리는 그 뒤 소식만 전하고 보고 싶은 손자와 손녀의 얼굴을 보지 못해 애가 달았다. 

그 할머니는 내가 시골에 온 것이 마치 자기 자식이 살아 돌아온 모습처럼 여긴 모양이다. 첫날부터 나를 살갑게 챙겨 주셨다. 

봉급이 잘 나오든 말든 시골에 연고 없는 놈이 어떻게 시골생활을 해 볼까 고민하던 중에 얻은 자리였다. 

여기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버티자. 새로운 인생의 출발에 이만한 고통도 감내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까!

마음을 먹고 나니 기분도 좋아졌다. 

그것이 기회가 되었던 아니면 잠깐 지나가는 꿈이 되었던 사람에게는 어떤 계기가 생긴다. 

나는 꿈에 그리던 시골 생활이 눈앞에 펼쳐졌다. 물론 꿈처럼 달콤한 생활은 아니지만 회색빛 가득한 삭막한 도시를 떠나 눈을 뜨면 싱그러운 초록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시골에서 나는 새로운 인생을 맞이 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숨 쉬고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부푼 희망을 손에 쥐었다. 

자연의 품이 비록 험난한 폭풍을 숨기고 있다한들 도시의 삶도 그리 녹녹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도시를 과감히 떠나 자연 속으로 내 몸을 던졌다. 

늘 말로만 듣던 교과서에서 나오던 안빈낙도의 삶에 오히려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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