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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Jul 28. 2022

사주이야기

죽음 저 너머로

 사주를 처음 공부했을 때 명리학을 가르쳐 주시던 분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던지는 질문이 있었다.

"사주가 공평하다고 생각하니? 사주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드니?"

하는 두 가지 질문이었다. 질문은 두 가지였지만 답은 한 가지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누구에게나 평등한 게 딱 하나 있다. 

절대 비켜 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것!

바로 죽음이다. 

누구도 피해 나갈 수 없다. 

어쩌면 죽음은 우주의 법칙에 따라 피고 지고 떠오르고 저물어 가는 순환의 법칙인지 모른다.

성경에도, 주역에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그 끝의 뒤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다고 말한다.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자주 듣던 말 중에 하나가 '질량 불변의 법칙'이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다. 

질량은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그 질량은 어떤 형태로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서도 남아 있다는 말이다. 

혹자는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다른 이들은 죽으면 영혼이 몸을 빠져나와 천국을 간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다시 새로운 생을 시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죽어 보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람이 죽는다는 명제는 피할 수 없다. 

어떻게 죽어야 할까라고 하는 질문은 어떻게 살까라는 질문과 연결된다고 한다. 

삶은 무엇일까?
내가 왜 태어났는지를 알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어차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의문은 떠나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다 보면 알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살아가는 인생은 비단길만 있지는 않다. 

가다고 보면 폭풍우도 만나고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씨에 숨을 헐덕거리 듯 숨 넘어갈 일도 생긴다. 

그러나 어찌하랴! 피할 수도 없다. 도망을 쳐 보지만 결국 또 다른 고통이 상황만 바꾸어 내 앞에 나타 난다. 

결국 이겨내어야 한다. 

나는 사주를 공부 한 사람이다. 사주 공부도 역시 살아가는 지혜를 깨닫게 해 준다고 한다면 피식 웃을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실이다. 

그리고 시작을 알았듯 끝을 알 수 있다. 

죽음 뒤에 뭐가 있을까?
없다! 내용의 의미가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모른다"가 정답이다. 

참 단순한 대답이지만 제일 정답에 가까울지 모른다. 

종교를 가진 자들은 죽어 천국을 간다, 극락을 간다고 하지만 누구나 쉽게 말하듯

"죽어 봐야 저승을 알지"다 

역시 죽은 뒤에 이야기를 들어 본 일이 없다. 

우리는 막연하게 혹은 자신에게 위안을 주려고 죽은 뒤의 환생과 천국과 극락을 말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겠나? 그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종교에 의지하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위안을 받기 위해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물, 우주의 그 어떤 것이라도 나고 자라고 쇠하고 사라진다. 그 순환은 반복된다. 

반복되는 손환은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윤회설을 믿자는 말이 아니다. 

자연의 법칙을 설명하는 물리 시간에 배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어쨌든 죽으면 땅에 묻히고 세월이 흐르고 나면 나의 육신은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그 육신은 어떻게 변화가 되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형태만 바뀐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육신이 썩어 흙이 되고 돌이 되고 거름이 되어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뇌에서 만들어진 생각 의식도 역시 에너지의 한 형태로 남아 존재하리라 믿는다.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누구도 알 수 없다. 

나의 의식, 나는 생각을 하고 뭔가를 느끼며 살고 있다. 단순한 본능이 아닌 이성으로 판단한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의식, 쉽게 풀어 나의 생각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바람이 될 수도 있고 천주교나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영혼이 될 수 있다. 

죽음 뒤에 의식(사고)은 어디로 가는 걸까?

다만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과 사물을 인식하고 생각하는 일은 분명 존재한다. 

의식이 존재한다면 내가 살면서 보고 듣고 배웠던 많은 경험이 쌓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식이 존재하기에 살아 있는 동안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 

악한 이의 의식은 그 의식 그대로 존재할 것이고 선한 이의 의식은 선한 그대로 의식으로 존재하여 선과 악으로 나뉘는 것이다.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은 없다. 

그래서 가보지 않은 길이라 두려울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을 잘 바라보고 자신을 공부시키고 살아간다면 죽음 너머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나를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게 하고 싶은지 모른다. 

정신을 맑고 아름답게 만든다면 죽음 뒤의 어떤 세계도 두렵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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