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아 Apr 26. 2022

음악이 던져 주는 기쁨

한 걸음 디딜 때마다 흙먼지가 이는 메마른 땅 위에 타는 듯 목마름을 식혀 주려는 듯 소리 없이 내리는 빗줄기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고 있다. 

머그컵에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따스한 커피 향과 라디오를 들어 흘러나오는 감미롭고 매력 넘치는 내레이터의 목소리가 라디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고 생각해 보라.

빗소리, 은은한 커피 향, 그리고 고운 목소리의 내레이터가 감미로운 음악!

부드러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음악이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 주는 달콤한 빗줄기 같다. 

매력 넘치는 남녀 MC의 달콤한 해설이 곁들여진 백경 설명으로 음악을 더 가슴 깊이 파고들어 희뿌연 연기 같은 영혼이 유리구슬처럼 맑고 깨끗해진다.  

여기에 커피 향이 함께 피어 오르면 창 밖의 빗소리 만으로도 하나의 음악이 된다. 

뭐 일반 커피도 좋지만 원두를 분쇄기에 갈면서 퍼지는 향기와 필터를 거쳐 떨어지는 커피 방울방울이 터지면서 내뿜는 향기

아직 어둠에 익숙한 내 눈이 무겁게 쳐진 커튼을 여는 순간 햇살의 입맞춤에 수줍은 듯 눈을 지그시 감는다. 

문을 열고 깊이 들이마시는 새벽의 차갑고 맑은 대지의 기운이 내 가슴의 어둠을 몰아낸다. 

대지의 말고 청량한 기운이 코를 타고 지난밤의 어둔 상념을 깨끗이 씻어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쇼팽의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 아침 이슬이 춤을 춘다. 

아침을 깨우는데 음악처럼 좋은 게 있을까!

페르귄트의 서곡은 아침을 깨우는 

텔레비전보다 라디오가 더 재미있었다. 음악도 그랬다. 그 시절 그 '밤에 듣던 밤을 잊은 그대!'

뭔가를 갈망하고 마음에 설렘을 가지고 살았던 시절에 황인용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이 깊은 밤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주었다. 

아침은 또 어떨까!

학교 가기 전에 잠시 잠깐 음악 프로그램에서 들려주는 음악소리에 학교 가기 전의 긴장된 마음을 가라 앉히고 성적이니 숙제니 오늘 수업 중에 얼마나 선생님들에게 구박을 받을지에 대한 걱정을 털어 버리고 가방을 싸며 나는 잠시 꿈결 같은 동화 속 나라에 다녀온다. 

그렇게 오랫동안 들었던 음악이다. 용돈을 타면 레코드 가게에 달려가고 외국의 팝 가수의 음반이나 유명 연주자들의 음악이 녹음된 LP판을 사 모의는 일이 취미였고 청춘시절 즐거움의 하나였다. 

세월이 흐르고 사는 게 뭔지 한 동안 삶이 짓누르는 무게는 나의 귀와 감성을 닫게 했다. 나는 그저 허덕거렸고 시계 추에 매달린 가련한 인생에 불과했다.  마음의 평온함은 말라가는 땅의 갈라진 거북 껍데기처럼 메말랐다. 

그렇게 메말라가던 정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된 산골생활에 다시 덕분에 내리는 비처럼 메마른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얼마 전부터 라디오를 다시 듣기 시작했다. 

잠을 깨고 난 한두 시간 잠들기 한 시간 전부터에 집중해서 듣는다. 

아직은 한가하게 하루 종일 들을 팔자가 되지 못한다. 

남자라 그런지 모르지만 남자 mc의 목소리보다는 여자 mc의 목소리가 더 정감 있게 들린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음악 제목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선곡표가 바로 뜨고 나중에 따로 듣기를 하면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다. 

꼭 음악 때문에 살아가는 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통해, 책을 통해, 그림을 통해 메말라가던 나의 인성을 촉촉이 적셔 주고 물질에 찌든, 시들어가는 꽃처럼 말라가는 정서에 시원한 물줄기를 만든다. 

사람은 밥만 먹고살 수 없다. 

과일도 먹어야 하고 음료도 먹어야 하고 때로는 술 한 잔도 해야 한다. 

지루한 일상에 작은 자극제는 음악이 되었던 책이 되었던 자신을 잠시 멈춰 세우고 숨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 

그 작은 여분의 시간, 여유를 가지는 시간이 진정한 나를 찾고 내 마음을 살찌우는 시간이다. 

각박하고 물질의 기준으로만 보는 현대에, 그래도 나 하나쯤은 조금 느리게 마음 따스해지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베토벤의 열정과 bts의 경쾌한 리듬에 묻혀 하루의 어느 한 부분은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나와 나와의 관계로 조용한 자신을 찾는 시간을 가지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운명 3악장과 4악장의 장중한 리듬이 1악장의 엄중한 운명을 헤치고 나간다. 

마치 니체가 자신의 운명을 이겨나가라고 하듯 음악은 삶에 대한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한다. 

조용한 봄이 찾아오는 '애팔래치아의 봄'에서 만물이 조용히 세상 밖을 나오고 생명의 장대함을 클라이맥스로 봄의 따스함과 자연이 내 가슴에 와닿는다. 

클래식이 되었던 헤비메탈이 되었던 사람들 가슴에  흘러들어 정신을 살찌운다. 

잠이 드는 순간까지 라디오 방송에서, 혹은 유튜브에서 나오는 음악을 벗 삼아 읽어 내려가는 로맹 롤랑의 베토벤을 읽으며 하루해가 저물어 간다. 

어느새 내 손에 쥐어진 책은 스르르 떨어지고 음악 소리를 귓가에서 멀어진다. 

조용한 하루가 나에게 작별을 고한다. 나는 다시 만나는 새날의 설렘과 떠나는 오늘 사이에 서 있다. 




작가의 이전글 재첩국 사이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