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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Jun 02. 2022

사주 이야기

사주 명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사람은 살면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을까. 그리고 어떤 모습의 죽음이 나를 이승에서 떠나게 할까 하는 궁금증과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산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호기심을 만들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점을 쳐보기도 하고 사주를 보기도 한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자연 앞에 미약한 존재이고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사람은 공포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또 먹고사는 일은 어떤가? 생존에 직결된 문제다. 오늘 사냥을 가면 사냥감을 많이 잡을 수 있을까? 

사냥을 하다가 죽지는 않을까?

올해 씨를 뿌렸는데 수확이 많을까? 하는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러니 자연의 변화를 보았고 그 자연 속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점을 치는 법을 익히고 배워서 미래를 예측했다. 

자연과 하나인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그 순간까지 시간의 굴레가 지배한다.

시간은 내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변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가 오듯 인간에게도 시간으로 인해 변화가 오고 소멸된다. 

태어난 생년월일시는 자연이 변화하는 그 시점이다. 옛날 옛적 자연을 오래 연구한 한 선지자는 사람도 자연과 같다는 이치를 깨닫고 시간을 통해 운명을 예측했다. 

과연 태어난 생년월일시로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알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나도 공부를 하지만 사주명리학이 그 사람의 인생을 다 알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도 얼마 있지 않으면 한 갑자를 돈다. 한 갑자를 돌면 그것을 환갑이라고 한다.

환갑이란 60 갑자가 한 번 돌아서 다시 육십갑자를 시작한다고 환갑이라고 한다. 60년이 돌고 61년이 되면 다시 시작된다. 

그래서 60년을 살고 다시 한 갑자를 시작한다 하여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했다.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은 시절에는 한 갑자를 도는 육십 년을 사는 일은 힘들었다. 의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이니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다. 그래서 오래 산 것에 대한 축하와 긴 수명을 기원하며 '환갑잔치'를 하였다. 

요즘이야 생활환경이 좋아지고 수명이 길어진 탓에 환갑이 별 일 아닌 것으로 치부되어 대충 넘어가지만 삼십 년 전만 해도 환갑을 맞는 집안 어른이 있으면 동네에서 성대한 잔치를 했다. 동네를 돌며 떡도 돌리고 가까운 이웃들은 초청을 받아 그날 하루 아주 배부르고 즐겁게 보냈다.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60 갑자로 바꾸어 네 기둥에 여덟 글자로 바꾼 게 사주팔자다. 

사주는 생년월일시고 팔자는 생년월일의 아래위 글자, 예를 들면 壬寅년이라는 사주의 년을 보면 壬은 하늘이라 하여 천간이라 말하고 寅은 땅이라 하여 지지라고 말한다. 

지금은 가로 쓰기를 하지만 예전에는 세로 쓰기를 하여 아래위에 글이 놓이게 되어 천간과 지지로 불렸다. 

그래서 아래위 생년월일시를 쓰면 여덟 글자가 되니 팔자라고 말한다. 

뭐 사람들이 우스개 소리로 사주는 속여도 팔자는 못 속인다는 말을 하는데 사실은 그 사주나 팔자가 다 같은 말이다. 그저 삶의 위로가 되고 싶어 하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다. 아래위의 글자 두 쌍이 모여 사주가 되는데 사주와 팔자가 뭐가 다른가! 사주나 팔자가 똑같다. 


흔히 말하는 사주팔자는 음양오행사상을  이론적 기반으로 한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음양오행은 자연의 변화이다. 우주의 변화 원리이다.

이런 음양오행 사상을 이해한다면 사주를 공부하거나 사주 명리학에 대한 이해를 좀 더 높일 수 있다. 

자연을 알고부터 인간은 공포가 사라졌다. 

생각해 보자.

태초에 인간들은 작은 존재였다. 힘이 약한 인간은 커다란 동물의 먹이가 되었고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자신들은 모습의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강한 자연이 때로는 인간을 죽이기까지 했으니, 자연은 당연히 숭배의 대상 공포의 대상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진화라는 큰 변화는 사람의 생각도 진화시켰다. 당연히 진화하면 뇌가 커지게 되고 커진 뇌는 사람을 생각하게 했다. 

채집 생활을 위주로 하던 삶은 채집과 농경을 함께 병행하는 삶이 되었다. 

상상을 해 보자. 

동물의 왕국이라는 텔레비전 프로에서 초원의 동물은 먹이를 얻기 위해 활동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생존을 위해 먹어야 했다. 약한 인간은 뇌가 크고 생각을 하면서 사냥이나 채집으로 먹을 것을 구할 수도 있지만 채집한 과일이나 곡식 알갱이들이 자라고 그 자란 식물에서 다시 먹을 것을 얻었다. 

생각을 할 수 있는 두뇌는 씨를 뿌리면 나무가 자라거나 풀이 자라 거기에서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의 삶에 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씨를 구하기도 힘들지만 무작정 심어도 안 되었다. 

잘 가꾸었지만 비가 오지 않는다던가 너무 비가 와서 쓸려 내려간다든가 하는 자연의 힘에 인간은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느꼈다. 

그런데 자연에도 일정한 규칙과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자연을 관찰하고 언제 비가 내리고 언제 비가 오지 않고 언제 춥고 언제 더운지를 알게 되면서 생산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자연의 일정한 규칙 속에 인간도 예외 일수 없다. 자연과 인간은 하나이기 때문에 자연의 움직임을 사람의 일생에 대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생겨난 학문이 사주 명리학이다.

농경 생활을 하면서 사람은 집단을 형성했다. 최초에는 길흉화복에 대한 점을 쳤다. 그렇게 점을 치면서 일정한 규칙을 얻은 게 주역이다. 

주역의 커다란 틀 속에 사주명리학이 속해 있다. 사주 명리학 보다 먼저 나온 게 주역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사주나 주역 공부가 당신에게 뭘 주나?'라는 물음을 던져 주었다. 

나는 기다림과 절제라고 말했다. 아내는 때 기다리다가 세월 다 가겠다며 웃고 넘어갔다. 

물론 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다리는 인내 속에서 사람은 마음이 커간다. 

고통의 시간이 올 수도 있다. 고통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순간, 미쳐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고 그 길을 통해 자신의 성장시키고 발전시킨다. 

사람이 어찌 결과만을 보고 살 수 있을까!

내가 이루어가는 하나하나의 과정이 삶이다. 삶은 그렇게 과정이 모일뿐이다. 결과는 자신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지향하는 지향점을 향해 가는 그 순간순간만큼 생의 즐거움을 얻는다. 그 과정 속의 많은 일이 고통과 괴로움을 주더라도 결국 지나고 난 시간이 나를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고 그때의 힘든 순간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기다림의 과정 속에 때로는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남고 거기에서 절제와 인내가 싸이면서 인간은 본능을 이기고 이성이 완성되어가는 진정한 인간으로 바뀌어 간다. 미완성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사주명리학은 바로 인내와 기다림 절제를 알려 주는 길잡이가 된다. 


사람들은 마음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 세상이 모질고 험하니 거기서 싸우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신에 위안을 받고 싶어 한다.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편안하면 몸은 저절로 편안해진다. 


사주 공부는 기다림과 절제라고 말했다. 

삶에 충실하고 살아가는 시간 동안 많은 노력을 한다. 때로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없을 때도 있다. 

좌절한다. 또는 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왜 나는 많이 노력했는데도 이렇게 밖에 되지 않을까! 하는데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덜질 때가 있다. 

나도 때로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결국 자신의 한계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사주를 공부하다 보니 나갈 때와 물러 날 때를 알게 된다. 

지금 나는 물러나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사주의 운에 있는데 움직인다면 자신의 힘을 쓸데없이 낭비하게 된다. 사주를 알게 된다면 자신이 나갈 때에 멈추고 숨을 고를 때를 안다. 

그렇다면 살아가면서 좀 더 쉽게 인생을 살지 않을까?

사주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알려 주기도 한다. 

좀 생경한 말이 될지 모르지만 요즘에는 예전에 비해 삶의 질이 높아서, 시골을 떠나 잠깐 대도시에 나가 보면 명품 한 두 개쯤 걸치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물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가지고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을 사는 일에 딴지를 걸고 싶지는 않다. 

사람은 욕망을 쫓아 가면 결국 이카루스처럼 날개가 녹아 떨어지듯 자신을 잃어버리고 정신은 방황하게 된다.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본능이다. 

그래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는 몰락했고 모순은 있지만 그래도 아직 자본주의가 건재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좀 더 나은 물질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욕망도 역시 본능이라고 본다. 사람은 이성과 본성의 사이에게 균형을 이룬다. 그 균형이 깨어지고 본능을 따르다 보면 자신의 동물적 탐욕만이 남는다. 

인간다운 삶은 검소함과 자기 절제에 있다. 그리고 두 가지를 통해 자신의 영혼이 맑아진다. 

사주에는 왜 절제를 해야 하는지 욕심이 자신을 어떻게 만드는지 등불처럼 비춰 준다. 

사주에 제물이 약하거나 없거나 하는 사주가 있다. 

그런 사람이 세속의 물질을 계속 따른다면 그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그저 잠시 왔다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존재가 될 뿐이다. 


사주팔자는 말 그대로 네 개의 기동에 여덟 글자를 말한다. 어찌 보면 단순하다. 글자 여덟 개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본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어쩌다가 아니면 통계치로 보는 것 아니야 하는 말을 하겠지만 사실은 과학이 발달하기 전 우리 조상, 아니 최소한 동양권으로 말할 때 농사를 짓기 위해 절기를 알아야 하고 계절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홍수가 나는 시기, 계절이 바뀌는 시기, 가뭄이 드는 시기를 살펴 농사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생긴 기상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농사를 짓고 그 논사를 짓기 위해 천문을 관측하면서 명리학도 함께 학문으로서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가상에 대비하여 추운 날씨에 태어난 사람은 따뜻한 온기를, 더운 날에 태어난 사람은 뜨거운 열기를 식힐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사주를 관찰하고 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오천 년 이상을 이어온 학문이지만 아직 아웃사이더에 있다. 

사람의 운명을 보는 학문이니 그 정확성이나 과학적 증명이 약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자기 마음공부를 하는데 명리학이 바탕이 된다면 이보다 좋은 수행도구는 없을 듯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주를 보고 오면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고 말하거나 나쁜 것은 맞더라 하는 이야기를 하며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사주 보는 사람들의 실력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신뢰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돈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굳이 나쁜 이야기를 해서 상담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조심해라"라는 말로 그냥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몇 달 뒤면 크게 문제가 생길 사람에게 미리 겁나는 이야기를 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그 사람이 어떤 사건을 헤쳐나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항해와 같다. 

좋은 날씨로 순풍에 돛 단 듯 하기도 하지만 비바람과 폭풍우 속을 헤매기도 한다. 

순풍에 돛을 달았을 때야 그리 힘들지 않겠지만 어디 인생이 순풍에 돛 단 듯 평안히 항해를 하겠는가!

오히려 그런 날 보다는 폭풍우 치고 비바람 치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폭풍우와 비바람 앞에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자신에게 힘을 주는 도구가 필요하다. 

사람 사주에는 어려움이 닥치는 그때에 운명을 헤치고 나갈 도구를 알려준다. 

그렇게 된다면 험한 항해에도 지혜롭고 슬기롭게 이겨 나갈 수 있는 길잡이를 손에 쥔다. 

만약 자신의 뭘 해도 잘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때쯤 자신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궁금해진다. 

사주 명리는 그런 때를 알려 앞으로 나서고 뒤로 물러나 기다리는 때를 알려 준다. 

긴 시간 동안 자신이 올 때를 기다리고 자신이 어떤 유혹에도 빠지지 않을 도구가 바로 이 공부인 것이다.

사주를 공부하면서 나는 이 공부에도 도가 있고 도를 깨우친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욕심과 욕망을 절제하고 기다림과 때를 알아 간다.

겨울이다. 자연의 모든 것을 안고 조용히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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