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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Apr 21. 2022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이른 새벽 동녘 하늘은 여명이 서서히 걷히고 해는 는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락 말락 거리고 아침 안개가 서서히 모습을 감추려는 그때에 골목 사이를 진동시키는 소리다. 

할머니가 쉬고 가래 끓는 듯한 텁텁한 목소리가 단잠을 깨운다. 

부산이라는 곳이 아니면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설사 부산에 살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70년 대에 익숙하게 들었던 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지 모른다. 

아파트라는 회색 괴물 기둥이 도시를 점령하지 않았던 시절, 커다랗고 얇은 알루미늄 재질의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그 위를  무명 포로 덮은 광주리! 

이른 이침부터 골목골목을 누비며 재첩국 사라고 외치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구슬프게 들린다.

머리숱이 적고 긴 흰머리에 쪽을 찌고 굽은 등에 휜 손가락이 세월의 무거움을 남몰래 알려 주던 그 손으로 집집마다 골목을 누비며 낙동강에서 재취한 재첩을 팔러 다녔다. 전날 우리네 아버지가 힘든 세상살이에 위로가 되어 주는 술이 마실 때까지는 좋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그 때문에 쓰린 속을 다스려야 했던 우리의 아버지는 쓰린 속을 시원하게 풀어줄 값싼 국물이 필요했고 재첩국은 좋은 속풀이 음식이었다. 

재첩국 사이소 하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워지면 어머니는 아직 잠이 덜 깨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보채어 할머니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신다. 

집에는 아버지의 전방(그 시절에 간이 공장이나 가게를 부르던 말)에서 일하던 형들과 식모 누나가 있었지만 다들 출근 준비에 바빴다. 그래서 할머니를 부르는 당번은 나뿐이었다. 

나는 금방 일어나 부스스한 모습에 민소매 러닝셔츠를 입고 아직 갈아 입지 못한 잠옷 바지를 그대로 입고 흰 고무신을 질질 끌고 삐꺽하고 소리 나는 철제 대문을 열어 얼른 할머니에게 달려간다. 

여러 해를 봐온 할머니는 내 얼굴을 익히 알고 있다. 나는 앞장서 걷고 할머니는 흰 고무신을 신은 발이 유난히도 팔자를 그리며 걷는다. 그 때문일까 아이인 나보다 걸음이 더 느리다.  

친할머니나 외할머니의 기억이 없이 자랐다. 재첩국 할머니와 계란 장수 할머니는 내가 가까이서 본 유일한 할머니이다. (그때는 계란을 지금처럼 팔지 않고 계란 장수가 있었다. 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도 계란 중수가 등장하지 않던가)

초등학교 다닐 때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을 지나고 나면 급우들의 일기에는 방학 동안 외가에 갔다. 친가에 갔다며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냈던 일을 그림일기나 일기에 써가지고 온다. 

나는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었다. 그러니 방학에 시골에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외가는 서울이니 가끔 어머니를 따라 외삼촌들이 있는 서울을 갔었다. 원두막이니 참외밭이니 수박서리니 하는 이야기는 나에게는 먼 남의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때로는 그런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재첩국 할머니는 아들도 손주도 없는 홀로 지내는 할머니였다. 역시 전쟁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행복을 빼앗아가는 악마의 대리자다. 

앞마당 평상에 앉은 할머니는 알루미늄 광주리를 평상에 올려놓고 봄날 아침 햇살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잠시 다리를 쉬게 한다. 식구가 많으니 커다란 냄비를 들고 나온 어머니는 재첩 할머니가 양은 주전자에 가득 담아 온 재첩국을 한 냄비 받는다. 오늘은 할머니가 운이 좋다. 식구가 많은 집의 가장이 쓰린 속을 달랠 겸 덕분에 일하는 형과 아저씨들도 재첩국 한 그릇으로 아침상을 받는다.

더운밥에 정구지(부추)를 썰어 놓고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를 풀어 한 그릇 먹으면 헛헛한 속이 시원해지고 굳었던 몸이 시원하게 풀린다. 

몇 집 돌지 않고 골목에 있는 평상에 앉아 다 팔아버린 할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재첩국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 앉아 구경하던 나에게 할머니는 보자기에서 푸른빛이 나는 달걀을 하나 꺼낸다. 

'청란'이다. 

지금도 귀하지만 그 시절 청란은 쉽게 먹을 수 있는 달걀이 아니다. 물론 달걀도 쉬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할머니는 이빨로 달걀의 아래위를 '똑똑' 소리 내며 깨고 때 묻은 손으로 한쪽 껍질을 다른 쪽 껍질보다 조금 크게 만들어 내 잎에 쓱 내민다. 

요즘 같으면 기겁할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었던 행동이다. 

어머니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먹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뭔지 모르고 어른이 주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쪽 빨아들인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입을 우물 걸리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그렇게 우물거리는 작은 입술을 마냥 쳐다보시는 할머니의 눈에 촉촉하게 반짝인다. 그리고 할머니의 그 솥뚜껑 같은 투박한 손이 내 머리로 닿는다. 그리고 얼굴도 한 번 문지르고 앞치마를 눈가에 가져가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렇게 바랜 , 한 때는 하얗게 깨끗했을 고무신을 끌고 대문을 나선다. 

연신 어머니에게 허리 굽히고 아직 조금 남은 재첩국 마저 팔기 위해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을 외치며 골목에서 사라진다.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던 우리 집 오늘 아침에 재첩국이 올라온다. 

다들 은회색의 재첩 국물에 밥을 말아 빨간 김치와 함께 한 그릇 뜨끈하게 먹는다. 

정구지의 우적 거리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고 옆에 앉아 그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옆에 앉아 먹는 모습을 보고 입 맛을 다신다. 

일하는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대문을 나선다. 

사람은 배가 든든하면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뜨끈한 국물로 배를 채운 사람들의 얼굴이 만족하다는 듯 환한 미소와 함께 하루를 또 시작한다. 


할머니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재첩을 까고 진국을 짜고 국을 끓였을 것이다. 

아무리 노인네 새벽잠이 없지만 아궁이에 앉아 하루 삶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재첩국을 끓여 무거운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새벽 찬 이슬을 마시며 길을 나선다. 

그 할머니가 오늘은 일찍 장사를 마치고 전대에 돈을 담고 가벼운 발걸음을 했을 것이다.

아프트가 도시를 점령하고 골목이 사라진 지금 재첩국을 사라는 할머니의 텁텁한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마트나 시장에서 봉지에 넣고 파는 재첩국을 사 먹어 봤다. 

어린 시절 그 진한 국물 맛은 나지 않는다. 내 입 맛이 변해서 일까 추억 때문일까 

입맛이 변한 탓이겠거니 한다. 

귀를 기울여 본다. 할머니의 쉬고 텁텁한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힘든 세월을 보내며 일하던 가장들의 쓴 속을 풀어 주던 재첩국 한 그릇은 힘든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에게는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할머니의 구슬픈 듯한 텁텁하고 쉰 목소리가 오늘따라 귓가에 맴돈다. 

그 시절 평상에 쪼그리고 앉은 소년의 눈에는 한 냄비 가득 팔아 주던 어머니와 많이 팔아 준 고마움에 정구지를 듬뿍 담아주던 할머니의 시커멓고 쭈글거리며 손마디가 휜 손에 건내주던 따뜻한 정이 가득했던 시간이다.

지금처럼 회색의 거대한 덩어리에서 사육장 비둘기가 생각나게 하는 아파트에서 사람이 나오는 동네가 아니라 땅 위에 지어진, 비록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외풍 때문에 머리맡에 있던 물그릇이 얼어 버리는 집이지만 그래도 정이라는 게 피어나던 집에서 사람 사는 정을 느낄 수 있던 골목집들이 그립다. 

이제 더 이상 구수한 정을 느낄 수 없지만 내가 정을 알고 살아갈 수 있고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게 만들어 준,

비록 지금처럼 물질문명과 풍요에 젖은 시절보다 더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던 시절에 대한 추억과 고마움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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