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의 열매 속에 봄의 희망을 기다리는 씨앗
태양빛이 세상을 뜨겁게 달궜다. 여름 끝 자락에 들어 한 두 개의 태풍이 올라와 기세 등등했던 뜨거운 대지를 식혔다. 한낮의 열기는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기가 꺾였다.
붉게 물들어 나뭇잎처럼 타오르는 저녁 놀이 계절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린다.
들녘에는 여름 내내 꼿꼿이 머리를 쳐들고 있던 초록의 벼가 더운 기운이 힘을 잃고 하나 둘 고개를 숙인다. 서늘한 바람은 초록을 지우고 황금빛으로 색을 갈아입는다. 황금빛 가을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들녘에는 풍요로움만이 가득하다.
산꼭대기에서 시작된 누런 오렌지 빛깔이 붉은 주홍빛으로 물들어 가며 산아래로 내려와 앉는다.
어느새 찾아온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하고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마음도 스산해진다.
여름의 강렬함도 사그라지고 생명은 그 결실을 다지기 위한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한다.
열매는 가을의 스산한 바람을 타고 붉게 익어간다. 가을의 열매 속에 새 봄의 싹을 품는다.
겨울은 생명을 키우는 계절이다. 모든 것이 숨을 죽이는 계절이지만 땅 속 깊은 곳에 봄의 싹은 겨울의 보호 속에 긴 잠을 잔다.
가을은 생명을 완성하고 겨울은 그 생명의 씨앗을 품는다.
사람도 새 봄을 맞이 하듯 자신의 봄을 위한 긴 시간을 준비한다. 자연도 봄의 따스한 기운에 싹을 틔우기 위한 긴 겨울잠을 잔다.
들녘의 황금빛은 생기를 잃고 누렇게 빛이 바래고, 사람도 자연처럼 인생의 절정기를 지나는 여름 같은 시간을 보내고 결실의 황금빛 가을을 뒤로하면, 생기 잃고 누렇게 변하는 겨울의 시간은 피할 수 없다.
겨울의 쓸쓸함을 벗 삼아 지나온 날들을 다시 생각한다. 후회와 회한만이 남을 지라도, 고통의 시간이었다 할지라도 회상하는 그 순간은 그저 추억으로 다가와 고통과 절망의 시간도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봄의 기운에 육체는 커가지만 마음은 가을에 커간다.
가을이 지나고 나면 자연의 모든 생명은 모두 깊은 잠에 빠진다. 겨울의 긴긴 시간 새 봄의 희망을 안고 모든 생명은 다시 새 생명을 주는 봄을 맞는다.
가을의 풍성함은 빛의 속도로 사라지고 깊고 깊은 겨울의 잉태 속으로 들어간다.
겨울을 어머니의 계절이라 말하고 싶다. 양수 속에 긴긴 시간을 보내고 생명으로 탄생하는 아이처럼 자연을 품고 뱃속의 양수 속에서 자란다. 씨를 품은 과즙처럼 겨울은 혹독한 추위 속에 생명의 씨를 품는 어머니와 같은 때다.
풍요 뒤에 허무함과 차가운 쓸쓸함 속에 다시 따스한 생명의 씨가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쓸쓸한 가을을 슬퍼 말자!
차갑고 새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혹독함을 피하지 말자!
그 속에 우리 마음속에 작은 씨앗들은 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