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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Apr 27. 2022

자연의 품에서

한낮의 휴식

 늦은 봄 햇살이 몸을 파고 들어온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등을 타고 내리는 땀이 옷을 적시며 흘러내린다. 때마침 불어오는 산 바람이 햇살을 식히고 땀을 씻어 내린다. 마당 앞 평상 앉아 있으니 살랑대는 바람이 얼굴을 간질이고 눈이 부시게 푸른빛 하늘에는 흰 물감으로 그려놓은 듯한 구름이 두둥실 떠다닌다. 

두 시간 정도 움직인 몸이 시장끼를 느끼고 있다. 뭐든 먹어야겠다. 

일한 뒤에 먹는 점심은 간단하게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식곤증에 일도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만 한다.

일할 생각을 하고 어제저녁 미리 밥솥에 2인 분정도의 밥을 해 두었다. 

그 정도면 양이면 세끼는 충분히 먹는다. 

호박과 양파를 넣고 보글보글 지지고 거기에 두부를 조금 넣고 자박하게 끓인다. 자박 된장에 밥을 비벼 먹으면 뭐 다른 반찬 필요 없이 한 그릇 뚝딱이다. 산골에서 살고 있으니 배달 음식도 없다. 거의 나가는 일도 없으니 사 먹지도 않는다. 이렇게 몸을 움직여 음식을 해 먹는다.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어떤 때는 귀찮기도 하지만 때로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도 있다. 

평상 앉아 자연을 벗 삼고 소풍 나온 듯한 기분을 느끼며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뿐인 소박한 상이지만 산해진미에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거기에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자연은 반찬이 되고 함께 식사하는 친구가 된다. 가끔 산새들이 놀러 와 자리 잡고 노래를 불러 준다. 

힘께 식사하는 친구가 여럿이다.

도시에 살 때는 점심 먹고 차 마시고 혼자 먹는 일이 별로 없었다. 설사 조용한 점시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동료나 거래처 사람과 밥을 먹는다. 혼자 먹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함께 식사하면 이말 저말 쓸 때 없는 잡담을 하고 혹은 남 험담으로 시간을 보낼 때는 정말 영혼이 빠져나간 듯 의미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입에서 맛을 느낄 수 없는 도시의 점심에 비해  혼자서 자연과 더불어 밥을 먹으니 음식 맛도 느끼고 더불어 밥 맛도 좋고 마음도 한결 부드럽고 평온해진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잠시 평상에 몸을 뉘이고 상상에 빠지다가 해가 서쪽으로 달음박질친다고 생각하는 순간 벌떡 일어나 남은 일을 시작한다. 

해는 남서쪽으로 향해 가고 나의 느린 몸을 어영부영 놀리다 보면 서녘으로 기운다.


봄이 푸릇푸릇 솟아오르나 싶었는데 봄날의 화사함이 잠깐 보이고 아쉽게도 어느새 햇볕이 따가운 여름이 성큼 다가온다. 그래도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 봄을 느끼게 한다. 

낮 동안의 내리쬐는 햇살에  봄날 어린 새싹이 자란다. 

이른 봄에 심은 감자는 꽃이 피고 땅 속 열매는 익어간다.  지난겨울에 심은 양파와 마늘은 거두어들인다. 

시중에 파는 양파보다 크기는 작지만 손에 쥐는 느낌이 단단하다. 

아침에 예쁜 꽃망울을 피우던 노란 민들레, 흰 민들레가 앞마당에서 예쁜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수줍은 듯 모습을 감춘다. 

 아쉬운 하루해는 떠나기 싫어 오래 서산에 머무르고 노을빛에 붉게 물들어 간다. 

단조롭지만 아기자기한 농촌 들녘의 하루도 저문다. 하다만 일을 멈추고 내일을 기약하는 게으른 농부의 하루가 저문다. 

풀밭에는 작고 귀여운 새들의 노랫소리가 푸른 들녘에 퍼져 나간다.

작은 생명이 자라서 고추가 되고 토마토가 되고 상추가 되어 사람의 삶을 살찌운다. 파릇파릇 자라는 작은 생명이 경이롭고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자연은 사람을 포함한 세상 만물의 아버지이고 생명의 어머니다. 나는 그 생명과 함께 이 여름을 보낸다.  

손길이 오래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사랑은 깊어가고 무럭무럭 자라난다. 


초봄에 싹트기 시작한 들풀들이 어느새 발목까지 자라 있다. 예쁜 꽃이 피고 지고 풀향기 가득한 마당에 벌들이 꿀을 모으려고 분주히 날아다닌다

벌써 풀이 자라 발목을 덮는다. 봄에는 봄 꽃이 여름에는 여름 꽃이 피는 들풀을 잡초라 부르며 깎아 낸다. 

곱고 향기로운 들풀과 들꽃들이 잡초라는 이름으로 붙어 날카로운 칼날에 쓰러지는 모습이 마음 아프다.

지는 해가 서산에 반쯤 가라앉고 석양의 놀이 깔리는 산촌 마을의 적막함이 귀에 울린다. 집집에 피어오르는 흰 연기가 구수하다. 

신비하고 오묘한 자연의 조화다.

밀려오는 허기를 달래려고  막걸리 한 사발을 시원하게 걸친다. 

일한 뒤에 마시는 막걸리나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아침부터 땅과 씨름한 몸을 나른하게 만들어 준다. 

맥주나 막걸리가 주는 시원한 청량감이 더운 기운을 가시게 한다. 술이란 이런 때 정말 좋은 음료다.

이제 저녁을 준비를 한다. 그러나 혼자 해 먹는 저녁이 산해진미에 진수성찬 일리가 없다. 

그저 점심에 먹은 밥과 찌개를 다시 데워 먹는다. 반찬이라고 해야 김치가 전부다. 

일을 한 기특함에 달걀 두 개 프라이해서 놓고 막걸리도 한 잔 더한다. 그렇게 막걸리 두어 잔과 함께 한 식사가 포만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아! 배가 부르니 세상을 다 쥔듯하다. 이른 아침잠을 깨기 위해 내려놓은 남아 있는 커피에 물을 연하게 타서 컴퓨터를 켜고 유튜브를 검색해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다. 

비록 일본 작곡가의 곡이지만 유키 쿠리모토의 레이크 루이스를 듣는다. 잔잔한 호수의 풍경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 호수에 낚시를 드리우고 조용히 낚싯줄을 바라보는 나를 상상한다. 

바로 이 순간 나의 엔도르핀이 솟아오르고 행복감에 젖어든다. 나의 가장 사치스러운 삶의 시간이다. 

들려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앉은 의자의 벽에 붙은 책장에서 안톤 체호프의 단편을 뒤적인다. 늦은 봄의 지는 햇살에 붉게 반짝이는 초록의 마당을 바라보며 마치 신선이 된듯한 착각에 빠져 든다. 

그리고 막걸리 두세 잔에 취기 올라 의자에 기대어 스르르 잠이 든다. 그렇게 하루의 시간은 흘러간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욕망이 있을까?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속에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나도 욕망과 욕심이 가득하다.

나는 조용히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나는 멍하니 아무 생각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고 싶다. 

나는 조용한 시골에서 지금처럼 안빈낙도의 삶을 살고 싶다. 

이것이 나의 욕심이고 욕망이다. 

어떤 이가 말을 했다. 

"욕심이나 욕망이 없는 사람은 사람은 없다."라고 하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내 몸에 맞게 내가 먹을 수 있는 작물을 키우고 가꾸고 자라는 모습을 즐거워하며 살고 저녁에는 보고 싶은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감상을 하며 세상에 많은 책들을 다 보지 못할지언정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 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 쓰고 싶은 이야기를 솜씨 없는 글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그런 삶에 나는 욕심을 낸다. 


적은 나이가 아니다. 오십 중반을 넘어 후반을 향해 달리고 있다. 내가 너무 일찍 삶의 욕망을 접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삶이 나는 너무 행복하다. 

도시에서 복잡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나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생각에 방해를 받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때의 치열했던 삶에서 무얼 얻었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손에 쥐고 있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조용하고 가난한 삶이 온전한 나를 찾고 나 스스로 위로하며 지낸다. 

좋은 옷, 좋은 음식, 검은 새단 승용차, 넓고 잘 사는 사람이 많이 사는 아파트.

다 좋다!

좋은 옷? 나는 몸매가 안 된다. 아무리 비싼 옷을 사 입어도 테가 나지 않는다. 그럼 포기한다. 

그저 내 몸에 편안한 옷이면 싼 옷이라도 명품이 된다. 

좋은 음식도 이제는 속된 말로 bye! bye! 다. 우선 젊었을 때보다 소화력이 떨어진다. 그저 부드럽고 활력이 되는 소박한 한 끼가 제일이다. 그리고 입에 조금 거칠고 꺼끌꺼끌한 맛이지만 영양이 풍부한 음식만 있다면 그만이다. 

한낮의 달콤한 휴식이 도시에서는 가당키나 하겠는가! 

낮 시간에 낮 술 마시고 낮잠 잘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겠는가!

더 바랄 것이 없다. 

지난날 탐욕의 시간이 후회된다. 하지만 지나간 일에 더 이상 마음을 두지 않는다. 

내가 짊어질 십자가는 내가 짊어지고 간다. 

잠시 의자에 기대어 앉아 이 순간의 행복을 아주 깊이 느껴본다. 이 이상 더 바랄 게 없다. 

죽는 그날까지 쭉 이대로 살아가고 싶은 작은 욕심을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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