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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Jun 09. 2022

요리하는 즐거움


칼도마에 오징어 한 마리를 올려놓고 어떻게 할까 궁리 중이다.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손 끝에 감촉이 차고 미끈거린다. 

우선 내장을 끄집어내어야 하는데 유튜브나 인터넷을 보면 아주 손쉽게 재료를 다루지만 막상 내가 칼을 쥐고 오징어를 갈라 내장을 꺼내는 일이 쉽지 않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그리 좋지 않다. 상당히 미끈거린다. 

다른 감각은 견딜 만 하지만 미끈거리는 느낌은 그다지 유쾌한 기분을 주지 못한다. 맨 손으로는 콱 움켜쥐기도 힘든다. 

미끄럽다!

먹을 때 식감은 쫄깃쫄깃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달큼한 맛이 일품인데 생물 오징어를 손으로 만지니 맛의 느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괜히 얼굴만 찡그려진다.

할 수 없이 나의 영원한 멘토, 오마니(어머니의 평안도 사투리)에게 전화를 한다. 팔십이 넘어 낼모레 구십을 바라보는 오마니이다. 

평양에서 나고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해방 이듬해에 월남을 하셨다. 오마니는 화나시면 평안도 사투리가 작렬한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오마니의 평안도 사투리 나오기 시작하면 아바지도 입 다물고 계신다. 

매사 정확하신 분이지만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도 어머니의 말씀대로 음식을 해서 실패는 거의 하지 않는다. 어릴 적 어깨너머로 본 눈썰미도 한몫을 했다. 

배를 가르고 내장 빼고 가른 오징어 중간에 그래도 뼈랍시고 투명한 세라믹 같은 얇은 꼬챙이까지 제거를 했다. 

싱싱해서 그런지 비린내는 별로 나지 않는다. 

TV나 인터넷 영상에는 오징어가 잘 잘리던데, 써는 일이 쉽지 않다. 

간신히 오징어 두 마리를 손질했다. 

왜 두 마리냐고?

한 마리는 국을 끓이고 한 마리는 조금 더 잘게 썰어 정구지와 바지락과 양파와 고추를 조금 썰고 밀가루에 버무려 전을 부쳐 먹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거의 반 세기가 되어 간다. 지금 보다 훨씬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오징어에 무를 썰어 넣고 끓인 오징어 국, 추운 겨울에 뭐 별다른 반찬 없이 단백질 오징어 국이면 밥 한 끼 뚝딱 이었다. 그리고 김장 끝나고 남은 배추 몇 포기를 고이 간직한 뒤의 어느 날 배추 썰고 고춧가루 양념을 하고 잘 버무려 밀가루를 섞고 거기에 오징어를 얇게 썰어 넣고 전을 부쳐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달큼한 배추에 오징어는 상상만 해도......

상상은 침을 고이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제 겨우 오징어를 손질했을 뿐이다.

한 사람이 먹기는 양이 많지 않을까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에 의외로 시간이 많이 든다. 그래서 좀 많이 만들어 놓고 질릴 때까지 먹는다. 그게 사는 지혜라고 생각하는데????????

무를 사각으로 얇게 썰고 다시마와 멸치를 조금 넣고 만든 육수에 재료를 넣고 끓인다. 멸치 육수를 너무 진하게 우려냈더니 오징어 국인지 멸치 국인지 이상한 맛이 났던 적이 있었다. 

음식 하는 일도 실패가 없으면 안 되는 모양이다. 세상살이와 너무 똑같다.

오징어 국을 끓이면 약간 붉은 기가 감돈다. 색깔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그때 그 오징어 국처럼 되어간다. 

간을 맞추기 위해 국간장을 살짝 넣는다. 우리 음식 중에 단연 압권은 간장이다. 

진간장이나 왜간장과는 또 다른 우리의 맛이다. 짜긴 짜다. 

혹시 아실려냐?

간수가 잘 빠진 소금은 단맛이 난다. 그런 소금으로 장을 담갔을 때 장맛이 좋다. 식당이나 혹은 다른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 간혹 뒤 맛에서 쓴 맛이 돌 때가 있다. 그럴 경우 십중팔구는 소금에 간수가 충분히 빠지지 않아서 나는 맛이다. 

그만큼 기본 재료가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국 맛이 그럭저럭 맛이 난다. 맛은 나지만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맛은 오징어 맛인데 뭔가 빠진 기분이다. 어릴 적 먹던 그 맛을 기억해서 그런지 내가 만든 국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뭐 어때 먹을 만하니 된 것이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밀가루에 버무린 전을 굽는다. 치하고 구워지는 소리가 창밖에서 비가 내리는 소리와 흡사하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날에 전을 먹고 싶은지도 모른다. 

약간 끝이 바삭하게 구웠다. 찐득하게 구우니 꼭 쑥떡 먹던 생각이 나는 맛을 만들어 낸 적이 있었다. 맛이 없었다. 전이라 게 사람의 입맛에 따라 구워지는 법도 다른 것 같다. 

전은 역시 재래시장에서 구워 파는 전이 맛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갔다. 어린 소년이 학교에서 갔다 와 숙제를 하고 나면 어머니가 언제 시장에 가나 그것만 기다려졌다. 

어머니가 혹시 나를 두고 갈까 하며 가슴을 조리고 있는데 어머니는 

'시장 가자!'

그 한마디에 배를 깔고 엎드려 스케치북에 낙서하고 있던 나를 벌떡 일으켜 세운다. 

시장 구경이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다. 물건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시장 구경은 역시 시장의 좌판에서 파는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먹을 수 있다는 기쁨이다. 

아직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나는 여러 가지 먹을거리가 신기한 모습을 눈에 들어왔다. 

그때에 좌판에서 이북 말씨의 할머니가 구워 주시던 녹두 빈대떡과 정구지 전의 맛이 가끔 생각난다. 

추억은 맛에서도 재생될 수 있다. 그 맛이 어릴 적 나를 소환한다. 


이제 국도 전도 다 되었다. 배 속은 음식 냄새에 요동을 친다. 

반찬이래야 김치 하나 달랑!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을 한 숟가락 푹 떠서 입으로 쏙 넣는다. 고실고실하게 잘 익은 밥알이 입속을 유영한다. 밥알이 터지면서 나는 달큼한 맛이 어디에 비할 수 없이 맛있다. 

그리고 오징어 국을 몇 번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히~야!

뱃속이 뜨듯해지고, 뜨거운 국이지만 느낌은 시원하다. 

임금님의 밥상이 부럽지 않다. 그리고 전을 뜯어 김치 올리고 먹는다. 

정구지 전을 씹는 우적우적하는 소리를 귓속에서 들으며 가끔 씹히는 오징어와 어우러 지고 단맛들이 입안에 가득하다. 

음식이라는 게 남이 차려 주는 게 맛있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재료를 손질하고 내가 만들어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 호텔의 음식은 아주 고급스럽고 일류 요리사들이 만들었으니 맛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거기서 음식을 먹고 오면 꼭 라면을 끓여 먹게 되는 진기한 일이 생긴다. 

왜 그런지 먹은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식당도 마찬가지다. 먹고 나면 꼭 물을 많이 찾는다든지 속이 더부룩하다. 

젊은 때는 그래도 그런 게 덜 했는데 나이가 먹으니 바깥 음식이 멀어져 간다. 

맛이 있던 없던 내 손으로 해 먹는 작은 음식이 더 입맛에 맞기 시작한다. 

귀찮을 때가 더 많다. 에이! 그냥 라면 끓여 먹을까 하지만 그래도 손으로 직접 음식을 하는 재미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시간이다. 

물론 귀찮아서 라면이나 국수로 대충 때우는 때가 많지만 그래도 밥을 지어서 반찬과 국을 만드는 과정이 내 마음을 뿌듯하게 하고 뭔가를 해 내었다는 자긍심을 주기도 한다.(너무 거창한가?)

그래서 힘들고 귀찮아도 요리를 해 본다. 

음식 만드는 일도 처음 하기가 힘들어 그렇지 자꾸 해 보면 맛도 잘 내고 시간도 단축이 된다. 

오늘은 뭘 만들어 먹어 볼까?

하는 상상을 하면 미식이라는 즐거움이 함께 찾아온다. 

창 밖에 붉은 노을이 지고 있다. 오늘 저녁은 뭘 만들어 먹어 볼까 하는 기분 좋은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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