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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Mar 07. 2020

사주 이야기

운명이 너무 가혹하지만

주역에도 지산 겸이라는 괘가 있다.

산이 땅속으로 들어 가 있다는 뜻의 괘이다. 겸손을 뜻하는 의미가 있다. 나도 주역 64괘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괘고 내가 늘 경계로 삼는 괘이다.

뭔가를 알기 시작하면 교만이라는 놈이 꿈틀거린다. 교만이 자라면 자신의 본성을 잊게 만드는 고약한 성질이다. 그래서 지산겸은 경계를 삼을 만하다. 

사주 명리의 이치를 조금 알게 되고 나니 세산을 다 쥔 듯했다. 이사람 저사람 주위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받아서 풀고 그 사람의 인생을 어느 정도 볼 줄아니 어디서 생겨 났는지 자신감에 충만하였다.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더 하면서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사람의 인생을 보는 일이 까불거리고 지식이나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점점 말이 줄어 들었고 재미삼아 봐 주던 것에 나를 부끄럽게 했다. 

사주를 공부하고도 선뜻 밖으로 나가기가 두렵다.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할까 아니면 그냥 공부한 것으로 만족하고 나만의 공부로 묻어 버릴까 하는 생각 속에 갈등을 했다. 공부에도 신이 붙는다고 하더니 정말 무시무시한 힘을 느낄 때도 있다. 사람이 내게 오는 시간만을 보고도 무슨 일이 있는지 훤히 알 수 있다는 게 재미를 떠나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대전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이름 있는 주역 학자의 손자 분이 강의를 하신다. 나도 그분의 강의를 듣기 위해 찾아 간 적이 있다. 

그분이 말씀에 가끔 드물지만 스님들도 배우러 오신다고 한다. 어느 정도 주역을 이야기하고 점을 칠 수 있는 때가 되면 어느 순간 오지 않는다고 하신다. 아마 그 놀라움에 자신의 수행 공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하셨다. 

한창 공부가 무르익으니 시간만 봐도 사람에게 일어날 일을 말을 할까 말까 입이 열릴 듯 말뜻 한다. 그러다 이야기를 하면 속이 시원해지고 뭐 이야기해서 뭐해하는 마음이 들어 말을 하지 않으면 정말 하루가 힘들게 지나간다. 

아예 사람을 피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래도 공부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매일 3시간에서 4시간은 공부를 했다. 그 이상의 시간은 책만 보고 있지 아무 생각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멍한 상태뿐이었다. 

그렇게 나를 다스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날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사주와 주역을 공부한다고 알고 있던 친구는맛있는 점심을 사줄테니 바깥 공기 쇠러 사무실에 놀러 오라고 한다.  

집에 틀어 박혀 책만 보지 말고 바깥공기도 맡고 살라고 한다. 맛있는 점심의 유혹은 사양하기 힘들다.공브 한답시고 극히 단순하게 식사를 했다. 너무 자신을 누르고 사는것도 스스로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친구의 말대로 집을 나섰다. 

시내 번화가에 자리 잡고 있는 친구의 회계사무실에는 마침 부가세 신고 달이 끼여 있어 그런지 양쪽으로 마주 보고 앉은 책상 위에는 전표 뭉치와 서류뭉치에 사람의 앉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머리를 숙이고 있으면 서류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지경이다. 

컴퓨터 자판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회계사라는 명판이 문위에 붙어 있는 입구 문을 열고 들어 갔다.  

사무실 안은 친구의 소박한 심성이 드러나 있다. 대학시절 칡던 책들과 회계관련 서적이 낡고 허름한 책장에 기역자로 껵어진 두군데 벽에 빼곡히 들어 있었다. 책냄새가 물씬 풍기는 게 회계사 사무실이라기 보다는 대학 연구실의 느낌이 들는 아담한 사무실이다.

작고 소박한 책상에 앉아있던 친구가 일어나 나를 맞이 해 준다. 한쪽에 놓인 보조 책상에도 어김없이 서류뭉치들이 높이 싸여 있다. 책상 앞 소파에  나 말고도 다른 손님이 앉아 있었다. 

60대가 조금 넘은 신사 분이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업무상 손님이 점심에 맞춰 왔나 싶어서 들어가다 말고 손짓으로 나가 있겠다는 신호를 보내지만 오히려 그 친구는 크게 소리를 내어 

"어서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맞은편에 노신사도 반갑게 나를 맞이 한다. 

"제가 이야기하던 친구입니다. 지금 공부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60대 중반의 노신사 분은 자리에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나도 얼떨결에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어제 회계 자문 때문에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우연히 사주 이야기가 나와 내친김에 한 번 뵙겠다고 해서 오늘 점심을 같이 하자고 이야기가 되었다. 나야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오전에 전화를 했다 한다. 

슬쩍 기분이 나빠진다. 아무리 공부하고 있기로 결국 실업자인데 당연히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따지고 보면 나쁘게 생각할 일도 아니였다.

다 내 자격지심일 뿐이었다.

방안에 초침이 돌아가는 시계로 괘를 만들어 보았다. 자식의 문제 때문인데 자식 자리가 공망 줄에 앉아 있다. 

연세로 보아 자식이 아직 직업을 구하지 못했거나 혹은 아프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점 괘가 나왔다. 

자식이 어떤 걸림돌로 보인다는 말을 먼저 꺼내 놓았다. 참 재미있는 일은 그 사람에 대해 사주를 미리 보니 않고 주역 괘를 놓고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면 문제가 정확하게 드러난다. 오행과 사주 주역의 점이 때로는 놀라울 때가 있다. 

문제는 그분이 내어 놓으신 두 분의 사주를 보고 난 뒤였다. 두 분 사주에 아내 분은 사주에서 이야기하는 관과 식신 상관의 자리가 비어 있고 사장님에게는 관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렇다고 재가 많은 사주도 아니었다. 사주를 보면 사업을 할 팔자는 아닌데 돈을 벌고 사업을 하고 있어 조금 의아해했다. 

간혹 사주를 내어 줄 때 죽은 자의 사주나 다른 사람의 사주를 가지고 공부자를 시험하는 분들도 있다. 

아무래도 나를 시험하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분에게 내가 아는 대로 말씀은 드려야 했다. 

괘를 놓은 이야기부터 했다. 자식이 아프거나 몹시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다고 말을 했다. 얼굴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시 말을 이어서 한다. 옆에 앉아 있던 친구도 열심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나 혼자 떠들고 있다. 아내분의 사주에 관이 없고 식신과 상관이 약하다고 말씀드렸다. 자세히 설명을 해 달라고 하시는 말에 관은 남편이나 직장을 이야기하고 식신관 상관은 여자에게는 자식을 이야기한다 말씀드렸다. 다시 사장님의 사주를 말하려는 순간 그분은 말을 끊었다. 다짜고짜 식사를 하러 나가자고 한다. 

보통 사무실 점심시간은 12시가 되어야 한다. 아직 15분이나 남았다. 5분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분이 내 말을 잘랐다. 혹시 내가 틀린 소리를 해서 별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기와에 왔으니 점심이나 사주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혹시 내 공부가 헛공부였나 하는 불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친구와 사장님 나 셋이서 사무실을 나섰다. 그분의 표정은 많이 굳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온갖 상상을 다했다. 내 소리에 기분이 나빴나 하는 생각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분의 행동에 화가 나기도 하고 말을 자를 필요가 있었나 하는 온갖 생각이 머리를 맴돌고 있었다. 간단한 정식을 기대했는데 아주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는 말씀을 친구에게 했고 친구는 낮이지만 술 한잔 겸해서 식사를 하시겠냐고 물었다. 그분은 만족해했다. 

우리는 친구의 단골 일식집에 갔다. 점심 준비가 마무리된 식당은 마치 전투를 치르려는 비장한 분위기마저 느껴지는 꽤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다. 

자리에 앉고 사장님은 나에게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고 말한다. 회는 기본으로 시켰다. 

점심을 먹는 내내 내가 공부한 것에 대해서만 묻는다. 대낮이지만 셋이서 소주 한 병씩 마셨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사업 이야기를 하고 시간을 보냈다. 계산은 그분이 하셨다. 술이 조금 오른 사장님이 갑자기 내 팔짱을 끼셨다. 그리고

"선생 골프를 좀 아시오?"

고개를 내저었다. 알 턱이 없다. 

"골프에 원 포인트 레슨이라는 게 있소. 내가 오늘 원 포인트 레슨을 받고 갑니다."

하면서 내 팔에 팔짱을 끼고 친구 사무실 앞까지 왔다. 그 앞에서 헤어지면서 사장은 악수를 한 내 손을 꼭 쥐었다 놓아주신다. 

그렇게 친구의 거래처 사장님을 배웅하고 술도 좀 오르고 해서 집에 가려니 자기 사무실에 가서 차 한잔 하자고 한다. 

뭐 혹시 내가 공부나 말하는 법이 잘못되었는지 친구에게 듣고 싶기도 하고 은근히 잘 얻어 먹고도 기분이 좀 개운치않은 터였다.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분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잘 키우고 공부도 잘했다. 두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부부는 밥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두 아들은 각각 사고로 모두 죽었다고 했다. 나도 순간 놀라웠다. 사주로 봐서는 자식이 없거나 아니면 그 자식이 아프거나 했는데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신 줄은 몰랐다. 

중간에 말을 끊었다고 속으로 투덜거린 내가 부끄러웠다. 

그분들은 늘 돈도 벌었고 사회적으로 성공도 했는데 왜라는 질문을 늘 하시고 사셨단다. 점잔하고 과묵한 성격의 친구는 그에게는 좋은 술 친구였고 화사와 회계라는 관계를 떠나 사장의 위로 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보면 그 친구도 참 대단하기는 하다

거래 관계에 있어도 특별히 친구와 친하게 지내던 그 사장은 오늘 이야기에서 답을 찾았다고 했다. 

나도 사주만 간단히 이야기했지만 무슨 답을 찾았는지는 모른다. 

그 사장은 직원들에게 많은 신경을 쓰신다 했다. 벌어 가지고 있느니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자 하는 마음에 다른 곳에 비해 보너스나 혜택을 많이 준다는 소리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편으로 나도 내가 공부를 한 것에 놀랐다. 자연의 법칙을 사람의 태어난 연월일시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도 생겼지만 이 공부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나에게 

"앞으로 공부하면서 오늘 만난 사장님 같은 분을 계속 만날 텐데 어떻게 하니?"

놀림 반 적정 반이었다. 놀림은 나에게 잘했다는 칭찬이었고 걱정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살아야 할 일이라는 데에서 하는 위로였다.

앞으로 이런 힘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날 나는 그분에게 배웠다. 아무리도 사주에 보이는 대로 이야기를 해도 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사주를 공부하고 사주를 봐주는 것이 때로는 먹고살기 위해 시작 하지만 결국 상처 받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직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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