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아 Jan 29. 2020

사주 이야기

사주는 공평하다.

배운 도둑질이라고 사주를 볼 줄 알다 보니 미래가 궁금한 주변 사람들이 사주를 봐 달라고 떼를 쓴다. 봐주기 싫다가도 맛있는 밥을 사준다든지 술 한 잔 사주면 그만 홀딱 넘어가 그 사람의 사주를 봐준다. 

딱히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사주팔자를 펼치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다가 보면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다. 사람들은 궁금해 자꾸 물어보고 나는 사주팔자 여덟 글자에 나오는 대로 말을 하다 보면 몸이 녹초가 되어 버린다. 

밥 한 끼, 술 한 잔에 천기를 누설한다. 뭐 사주 봐주는 걸 천기누설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주는 의외로 간단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 계절 기후에 목, 화, 토, 금, 수라는 다섯 가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로 대입 해 인간의 길흉화복과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이다.

오천 년이 넘어오는 학문으로 사람의 갈 길을 알려 줄 뿐이다. 뉴스 끝무렵에 머리를 산발하고 나온 기상 케스트가 일기를 예보해 주는 일과 다를 게 하나 없는 일이다. 

업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한 사람 두 사람 사주 봐주다 보니 꽤 많은 사람의 사주를 봤다. 

좋은 사주도 없고 나쁜 사주도 없다. 그저 삶이 있을 뿐이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태어나 살아갈 뿐이다. 

사람은 그 삶이 왜 괴롭다고 말할까? 왜 누구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까?

특별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의 삶은 모두 소중하다.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회사의 중역이었다. 좋은 직장에 많은 연봉 자식들도 그럭저럭 잘 지내는 사람이다. 

친구와 함께 찾아온 사람은 겉으로 볼 때는 정말 남부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생년월일시를 종이에 적어 내민다. 

생년월일시를 육십갑자로 바꾸어 사주팔자를 만들었다. 

정말 좋은 사주였다. 제물도 풍족하고 자손 자리도 넉넉하고 좋은 사주였다. 그러나 항상 신은 모든 걸 다 주지 않는다. 사주에 재물 자리는 여자도 된다. 재물이 있으나 대운에서 충돌을 하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에 지장이 없으면 처 자리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아내가 몸이 아프냐고 물었다. 


사주는 사주팔자 여덟 글자 외에도 사주가 흐르는 운이 있다. 운과 사주를 보고 나면 용신을 찾아야 한다. 쓸 용자에 귀신 신자를 써서 용신이라고 하는데 

용신은 더운 날 태어난 사람은 더위를 식혀 줄 용신을 찾고 추운 날 태어난 사람은 추위를 녹여 줄 용신을 찾는다. 그 용신이 태어난 날을 어떻게 해 주느냐가 사주를 읽는 가장 큰 열쇠다.


태어난 날과의 관계로 인생살이를 보는데 친구와 함께 온 지인은 아내의 힘이 약했다.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아내가 평생 몸이 좋지 않아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산 사람이었다. 

부귀영화를 주면 뭐하나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받는 고통의 세월이 말할 수 없이 힘들어 보였다. 

같이 온 친구도 그 사람 아내가 그 정도로 힘들게 아파하며 사는 줄 몰랐다. 그 사람이 눈시울이 맺힐 때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는 이제 정년도 되어가고 자기 뒤로 오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렇게 하라 말씀드렸다. 그의 타고난 사주팔자도 팔자지만 이제 그도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아내도 힘든 병마와 싸움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조용한 시골에서 땅을 벗 삼아 살아 보라는 말을 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제까지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시골 묻혀 지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조용히 묻는다. 아내가 얼마나 살 수 있느냐고.

나는 대답 대신 지금부터 아내와 처음 만난 그 순간을 되새기며 살아보라고 말해 주었다. 그 가슴 설레던 그 시절로 다시 한번 돌아가 보라고 말이다.

남자는 내 이야기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집으로 가자고 한다. 

친구와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라 점심을 거하게 얻어먹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같이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가는 뒷모습이 어딘지 쓸쓸해 보였다. 남들 부러워하는 직장과 직위를 가지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성공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도 말 못 하게 힘든 인생의 십자가가 있었다.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향해가는 마을 어르신 부부가 집 앞에 서 있는 나에게 손을 흔든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하얀 이빨이 더욱 희게 보인다. 

크게 가진 것 없고 명예도 없고 지위도 없는 분들이지만 평생 손에 흙을 묻히고 사신 두 분의 얼굴이 오늘따라 행복하게 보인다. 


아마 그분은 일을 그만두고 시골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기력이 없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아내와 도시를 떠나 시골에 살면서 지금까지 보다 더 보람되고 즐겁고 여유로운 생활을 할 것이다. 웃음 가득한 그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누구입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