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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Jan 29. 2020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똑같은 일상

창 밖으로 보이는 서녘 하늘이 붉게 노을 지기 시작하고 낮동안 뜨거웠던 공기는 지는 해와 함께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지는 해가 아쉬운지, 저녁 달빛이 그리운지 사람들은 기지개를 켜고 하루를 마감한다. 

밭에 나갔던 경운기들의 시동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밭을 누비며 뽑아 놓은 잡초를 끌어 모은다. 검둥이 해피는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커다란 몸으로 이리저리 돌아 다며 마당에서 열심히 먹이를 쪼아 먹는 새들을 쫓아다닌다. 

이제 서녘 하늘의 노을빛은 모든 것은 불살라 버릴 듯이 타오른다. 세상의 종말이 이런 색이 아닐까 할 정도로 붉게 물든다. 

쪼그리고 앉아 호미질하는 아내의 흰 빰을 발갛게 물들인다. 

아내 곁에 다가선다. 그제야 아내도 하던 일 멈추고 지는 해를 바라본다. 집 아래의 좁은 길에 경운기 한대가 올라간다. 아저씨와 아줌마의 웃음 띤 얼굴이 참 정답다. 무슨 일이 그리 즐거우 실까 

덜컹거리는 경운기도 함께 웃는다. 

여유로운 저녁이다. 약속도 없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루를 마치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도시의 화려한 밤을 밝히는 불빛도 없고 이름난 맛집의 음식도 없지만 된장에 김치 하나뿐인 작은 소찬이 거하게 차려진 밥상이나 고기구이보다 더 훌륭한 저녁이다. 거기에 막걸리 한 사발 곁들이면.

땅거미가 어느새 드리워지나 했더니 주위 사방이 어두워진다. 고요한 적막 속에 간간히 새소리와 고라니 소리가 들릴 뿐이다. 

검은 벨벳에 반짝거리는 보석을 박아 수놓은 하늘에 빛나는 작은 별들이 아름답다. 

선선해진 밤의 공기를 깊이 마신다. 폐 속까지 시원한 공기가 스며든다. 개 집에 묶여 있던 검둥이 녀석이 밖을 나와 서성이는 나를 보자 꼬리를 흔들어 댄다. 밤도 깊어 가는데 아직 놀고 싶은 모양이다. 

아내가 머그 컵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케모마일의 타 온다. 코끝에 달큼한 향기가 전해진다. 

함께 서서 바라보는 서녘 하늘의 별들이 영롱하다. 들릴까 말까 하는 슛 하는 소리와 함께 별똥별이 떨어진다. 놀란 토끼 눈을 뜨고 바라보던 아내는 금세 눈을 감고 기도 한다.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아내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사랑스럽다. 

함께 한 세월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 세월이 좁은 등에 아로새겨있다. 옆으로 가서 아내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얻는다. 아내의 머리가 살짝 어깨로 넘어온다.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내일의 밝은 태양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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