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다.평화로워"

by 사랑니

"정말 평화롭다. 평화로워"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있는 남편을 끌다시피 하여 맨발 걷기를 시작한 지 두어 달이 되어 간다.

하지만 지금은 맨발 걷기의 필요보다 이 공원의 평화로움에 더 빠져 버린 것 같다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평화로움을 외치는 나의 모습을 남편은 희한한 듯 바라보지만 그래도 얼굴만은 인정한다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고는 한다.

무엇이든지 너무 가까이 있으면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처럼 신호등 두 번만 받으면 올 수 있는 이공원도 너무 가까이 있어 늘 나의 관심밖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맨발 걷기가 건강마니아들의 화제가 되면서 이 공원에도 맨발 걷기를 할 수 있는 길이 따로 만들어졌다.

남편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나도 남편과 함께 이 맨발 걷기에 합류하게 된 셉이다.

우리 부부는 이틀에 한번 정도는 맨발 걷기를 위해 공원을 찾는다.

하지만 지금은 맨발 걷기의 운동의 필요성보다는 이 공원의 평화로움에 더 빠져 버린 것 같다.

세상의 모든 평화가 이 공원에 모여 있는 것 같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앞세우고 뒤를 따라 걸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

산책을 하기 위해 나온 강아지들이 넓은 잔디밭에 모여 뛰어노는 모습,

다이어트가 필요한 조금은 살집이 있는 아주머니들이 에어로빅 강사를 보며 열심히 음악에 맞춰 따라 하는 모습,

이쁘게 불 켜진 조명등을 따라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

몇몇 외국인들이 돗자리를 펴놓고 포카를 치며 즐기는 모습,

하물며 병의 기색이 완연한 비쩍 마른 남자분이 절실하게 자신의 건강을 위해 걷고 있는 모습에서도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건 나만이 느끼는 기분일까?

역시나 평화로움의 절정은 자신만의 작은 무대를 꾸며놓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저 이름 없는 가수의 남자분이다.

네다섯의 관객을 앉혀놓고도 저렇게 평화로운 얼굴로 노래를 하고 있는 자신이 사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는 듯한 얼굴로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오늘 저녁이 토요일이라 출근의 부담이 없는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무대 맞은편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참을 작은 공연을 관람하며 평화로움의 절정을 맛보았다.


두 해 전 오월이었던가 나는 딸내미와 런던과 파리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때 런던 버킹검 궁전 옆에 자리 잡고 있던 세인트 제임스공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먼저 여행을 다녀왔던 딸내미의 지인의 조언에 따라 돗자리를 챙겨가서는 한참을 공원에 앉아 즐기던 기억이 있다.

이상하게도 우리 집 앞 이 중앙 공원을 보며 그때 버킹검 궁전 옆 세인트 제임스 공원이 오버랩되어 떠오르고는 한다.

오늘 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때 그 공원에서 보았던 평화로운 외국인들의 여러 모습들이 보이고는 한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서나 다 비슷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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