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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Dec 28. 2016

친구를 초대한 날, 뜨끈한 스키야키

불고기용 소고기만 있으면 금방

일찍 퇴근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게 맞는 말인가 보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날, 집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싸고 괜찮은 정육점을 발견했다.


한 정거장은 지하철을 타기보다는 지하철비도 아낄 겸 운동도 할 겸 걸어다니는 편인데, 두 정거장은 좀 부담스럽기 때문에 이 정육점이 있는 곳까지 그닥 갈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무작정 걷고 싶었다. 얼마전 직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에 직장에서 집까지는 지하철로 6~7 정거장 정도가 되는데, 역간 거리가 짧아 실제로는 6~7km 정도가 나온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듯했다. 가방도 살짝 무겁고, 내가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싶어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멀지 않은 길을 따라 걸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포기하고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을까 하여.


겨울 치고 춥지 않은 날씨 덕에 집으로 향하는 길은 꽤나 즐길 만 했다. 하천변길에서는 청둥오리나 황새 같은 새를 구경하며 걸을 수 있었고 지하로만 다닐 때는 볼 수 없었던 작고 예쁜 카페도 몇 개 발견했다. 이렇게 타박타박 이것저것을 구경하면서 걷다보니 예상시간보다 훨씬 더 늦게 지하철 두 정거장을 남겨두게 되었다. 운동화를 신고 나오지 않아서 발이 슬슬 아파지고 하늘이 비가 올 듯이 조금 어둑해진 것이 보였다. 지하철을 타 버릴까, 두 정거장 밖에 남지 않았는데 조금만 더 걸을까. 역에 가까워지자 살짝 고민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다섯 정거장을 걸어왔는데, 겨우 두 정거장을 남겨두고 포기하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집 방향을 유지한채 역을 지나치고 조금 더 걸었다. 그렇게 발견한 곳이 바로 이 정육점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길래 무슨 행사를 하는 줄 알았다. 가까이 가서야 그 사람들이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멀리까지 줄을 선 것으로 보아 가격이 싼 것이 틀림이 없었다. 고기를 살 계획은 하나도 없었는데, 우연처럼 다가온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혼자 먹는데 고기를 많이 사둘 필요는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g당 가격을 확인하고 나니 '내일 친구를 불러서 같이 먹지뭐'라며 바로 합리화할 수 있었다. 불고기용 소고기가 싱싱해보이고 값도 싸 보이길래 냉큼 그것을 1만원 어치 맞추어 샀다. 불고기는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것으로 무엇을 할 지는 남은 두 정거장을 걸어가는 동안 고민할 일이다. 사실 꽂히는 대로 재료를 먼저 사 두고 만들 요리와 같이 먹을 사람을 고르는 것은 나의 고질적인 패턴이기도 하다.



집에 돌아와서 한참 궁리를 하다가 선택한 메뉴가 바로 이 스키야키이다.






일본요리에는 'OO야키' 또는 '야키OO'로 이름지어진 요리가 많다.


유명한 타코야키, 오코노미야키부터 시작해서 타마고야키, 야키토리, 야키니쿠, 야키소바,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쇼가야키와 스키야키까지, 내가 아는 것만 줄을 세워도 이 정도이다.


이렇게 요리이름에 '야키'가 많이 들어가는 이유인즉슨 일본어에서 '야키'는 조리방법으로서 '~구이 또는 ~볶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야키'의 원형이 되는 동사 '야쿠(やく[焼く])'는 '태우다, 굽다, 그릴링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구이' '~볶음' 같은 음식이 많은 것과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


대부분의 경우,  'OO야키' 또는 '야키OO'라는 요리명에서 'OO'에 들어가는 단어는 요리에 들어가는 주요한 재료인 경우가 많다.


-타마고야키(타마고:달걀):달걀말이

-야키토리(토리:새 또는 닭): 석쇠에 구운 닭꼬치

-야키니쿠(니쿠:고기): 한국의 석쇠구이가 전래된 일본의 즉석 불고기

-야키소바(소바:국수): 볶음국수

-타코야키(타코:문어): 문어빵

-오코노미야키(오코노미:좋아하는것)

-쇼가야키(쇼가:생강): 생강을 넣은 소스와 구운 돼지고기

-스키야키(스키:가래-농기구의 일종): 주로 쇠고기를 간장과 미림, 설탕 등으로 간을 맞춘 육수에 넣어서 각종 야채 및 두부, 곤약 등을 곁들여 끓여먹는 전골과 비슷한 요리.



그런데, 이 중에서 스파이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맨 아래에 있는 '스키야키'이다.


 '스키야키'의 '스키'는 농기구인 '가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요리 재료명도 아니요, 하다못해 '테판야키(테판:철판)'처럼 조리도구를 지칭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영 생뚱맞은 것이다.



왜 요리명에 요리재료도, 요리도구도 아닌 '가래(스키)'라는 농기구명이 붙었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 아래는 나무위키의 설명이다.


가장 널리 퍼져있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고기를 가래에 올려 구워먹었기에 스키야키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그 외에 삼나무(일본어 발음이 '스기')로 만든 상자에 어패류를 넣어 쪄먹는 요리였던 스기야키가 변형된 것이라는 설 등도 있다.

-출처: 나무위키


그런데, 만약 요즘 들어 더욱 인기가 있는 일본식 가정식 또는 일본식  선술집에서 스키야키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다른 장소에서 스키야키를 한번 더 먹게 될 때 확연히 다른 요리방식에 살짝 놀라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스키야키의 요리법에 관동(간토)식과 관서(간사이)식 두 가지의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간토식 스키야키에는 청주와 간장, 설탕, 미림, 다시다를 섞어 살짝 끓여낸 '와리시타'가 사용된다. 뜨거운 팬에 먼저 와리시타를 넉넉히 붓고 고기, 야채, 두부, 곤약 등을 넣고 익혀먹는 것이다. 샤브샤브를 먹고 나면 남은 국물에 칼국수나 죽을 끓여먹듯이, 간토식 스키야키의 마지막 코스는 스키야키를 먹고 남은 육수에 우동이나 죽을 끓여먹는 것이다.


간토식 드스키야키를 만드는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uhkxz1N6iVQ

맨 먼저 와리시타를 따로 만들고, 간사이식보다는 묽고 양이 많은 국물에 각종 재료를 넣고 끓여먹는다.



간사이식 스키야키를 만들 때는 뜨거운 팬에 고기를 먼저 구운 후에 고기기 거의 다 구워질 즈음에 청주와 설탕, 간장을 살짝 붓는다. 고기 육즙과 청주, 설탕이 섞인 자작한 소스에 나머지 고기와 채소, 두부 등을 익혀 먹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gUoxOxkT540

간사이식 스키야키를 만드는 동영상. 고기를 먼저 굽고, 소금과 설탕을 뿌리고, 간장과 미림 등을 넣어서 자박할 정도로만 끓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9h1qUqEviwg

기묘한 이야기 스키야키 편에서도 간사이식 스키야키가 나온다.


요약하자면, 간장과 청주, 설탕, 다시다 등으로 만든 육수를 먼저 넣고 전골처럼 끓여먹는 방식은 간토식이고, 고기를 먼저 구운 후에 간장과 청주, 미림, 설탕 등을 더해 자박한 국물을 만든 다음 야채와 나머지 고기를 추가해서 졸이듯이 익혀먹는 것이 간사이식이다.


우리나라에 평양식 냉면vs.서울식 냉면, 순대에 소금vs.초장vs.막장 같은 지역간의 음식 경쟁이 있듯이, 일본에도 스키야키의 조리방법을 두고 관서와 관동 사람들 간의 자부심 경쟁이 있다고 한다.






어쩌다보니 내가 만든 것은 간토식과 간사이식의 중간 정도이다. 참고한 레시피는 언젠가 한번 꼭 만나서 수업을 듣고 싶은 '나카가와 히데코' 선생님의 레시피이다.



추운 날에는 더 가까이 : 스키야키와 생굴 배 무침 l 나카가와 히데코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5413353&memberNo=22990502&navigationType=push



설탕과 간장, 청주를 섞어서 이리 와리시타를 섞었다는 점에서는 간사이식과 비슷하고, 국물을 흥건하게 하지 않고 진하고 자박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간토식과 비슷하다. 결과물은 어쨌거나 맛있었다는 것.



재료.


-소스류: 간장, 미림, 설탕 2:2:1의 비율. (나는 설탕양을 조금 줄였다)

-채소류: 당근, 호박, 양파   (대파가 사실 필수인데,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쑥갓과 알배추, 버섯류도 자주 들어가는 재료이다)

-찌개용 두부 (스키야키에 넣기 전에 팬에서 따로 겉을 노릇하게 익히면 맛이 향상된다)

-불고기용 소고기





조리방법.


1. 와리시타 만들기


간장 머그컵 2 컵, 미림 2컵, 설탕 0.5~1컵 을 넣고 설탕을 넣고 끓인다. 쓰고 남은 것은 냉장고에 넣고 일식요리를 만들 때 간장소스로 활용하면 된다.




2. 재료 손질하기


재료는 한입 크기로 손질한다.



3. 고기 먼저 굽기.


기름을 두른 팬에 소고기를 몇 조각 먼저 굽는다. 그 이유는 앞으로 만들어질 육수에 육즙을 더하기 위해서이다.

팬에 묻은 갈색 육즙은 타지 않게 잘 지켜보았다가 씻어내지 말고 사용한다.




팬에 노릇노릇 육즙 흔적이 많이 남았다. 저것은 다 국물에 들어갈 것.



한 번은 와리시타를 더하지 않고 소금간을 해서 먹었고, 두번째는 와리시타를 끼얹어서 구워보았다.





3. 팬에 손질한 채소와 와리시타를 넣고 채소 익히기.

 

와리시타는 자박할 정도로 뿌려준다. 국물이 너무 졸면 더 추가해야 하기 때문에 다 붓지는 말 것.

단단한 채소가 살짝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4. 고기 익히기


채소를 한 켠으로 치워내고



소고기를 익힌다.



불고기용 소고기는 두께가 얇아 빨리 익는다.



동영상을 보니 고기를 넣고 꽤나 오랜 시간을 끓여내는데, 소고기는 금방 익고 금방 질겨지는 데 왜 그런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비프 부르기뇽처럼 아주 오래 끓여서 고기가 녹아나도록 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까?


내가 본 레시피에서는 고기색이 살짝 갈색으로 변하면 덜어서 먹으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미디엄레어를 좋아하는 내 입맛에 딱 맞을 정도로 익히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고기를 넣고 끓이자마자 꺼내다시피 해야 한다.






간장이 들어간 대부분의 일본 요리가 그러하듯이 짭잘하고 달큰하니 입맛에 꼭 맞는다. 고기는 부드럽고 채소도 잘 익었고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진다. 간장맛이 잘 밴 두부도 별미이다.



다만, 휴대용 버너나 인덕션이 없어서 상에 올려놓고 익혀가며 건져먹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가스렌지에서 고기가 너무 익을 새라 집중하며 지켜보다가 때가 되었다 싶으면 후다닥 달려와서 접시에 옮기고 식탁에서 먹는 식이어서 조금 우스꽝스럽다.


휴대용 인덕션이 생기면 꼭 친구 서넛을 불러서 식탁 위에 앉아 각자 먹을 고기를 익혀 먹으며 수다를 떨고 싶다.










달걀 노른자를 풀어서 고기를 찍어먹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더 질감이 풍부해 진다고나 할까. 친구는 찍어먹는 것을 더 좋아했고, 나는 짭잘한 간장소스 맛을 살려 그대로 먹는 것이 더 좋다.






이타다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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