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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Jan 13. 2017

이 요리는 꼭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비프 부르기뇽

와인 한 병이 고스란히 농축된 감칠맛에 혀가 마비된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담아 두면서도 선뜻 도전하기 어려웠던 요리가 하나 둘 쯤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비프 부르기뇽(Boeuf Brourginon)이 그런 요리였다.



비프 부르기뇽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요리 영화 중 하나인 '줄리 앤 줄리아(Julie and Julia)'를 통해서였다. 여주인공 줄리는 요리 작가로 성공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요리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는데, 요리 작가가 되기 위한 여정에서 비프 부르기뇽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화 '줄리앤 줄리아'에서 비프 부르기뇽 만드는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CXUhJNBoG1g

비프 부르기뇽 만들기. 영화 '줄리 앤 줄리아(Julie and Julia)' 중.




도전을 해보고 싶었으나, 일단 재료와 시간 장벽이 컸다. 비프 부르기뇽은 절대로 만들기 간편한 요리가 아니다. 재료를 준비하고 굽는 것을 제외하고 스튜를 끓이는 것 자체에 최소 2시간은 투자를 해야 하는 요리이다. 또한 일개 자취생에게 '소고기'라는 재료가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재료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소고기 한 두 조각도 아니고  최소 1kg을 고스란히 한 요리에 써야 한다니. 한술 더 떠서 그냥 먹기도 귀한 와인 한 병남김없이 사용하여 깊은 국물을 우려내는 요리이다. 한마디로 웬만한 결심 없이는 도전하기 어려운 요리인 것이다.



요리를 알게 된 날로부터 5년 이상이 흐른 후에야, 드디어 비프 부르기뇽 만들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도전의 배경에는 원활한 재료 수급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엄마가 서울을 다녀가시면서 코스트코에서 부챗살 스테이크 한 꾸러미를 사주고 가신 것이다. 어찌어찌 먹다 보니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남은 몇 조각이 꽤나 투실했다. 거기에다 홈플러스에서 30% 카드 할인을 해서 판매 중인 호주산 소고기 한 팩을 더하면 1kg은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몇 주 전의 홈 파티에서 먹다 남은 와인도 3분의 2병 정도 남아있었다. 이렇게 타이밍이 잘 맞는데, 비프 부르기뇽에 도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재료비가 비싼 요리인만큼 실패란 용납할 수 없었다. 유튜브에서 본 많은 동영상 중에 다음의 두 동영상을 확인하기로 했다. 동영상의 댓글을 쭉 살펴보니 Marco Pierre White는 상당히 명망 있는 요리사인 듯하다.


Recette du Boeuf Bourguignon - 750 Grammes

https://www.youtube.com/watch?v=8uzLRSl3u2w

위의 동영상에서는 소고기를  와인과 향신채(양파와 당근, 샐러리('미르푸아'라고 부르는 향채 삼인방)와 월계수 잎 등의 허브)에 하룻밤 담가 놓는 것을 참고했고,



Boeuf Bourguignon with Wild Mushrooms Recipe | Marco Pierre White

https://www.youtube.com/watch?v=x8sS72-N3NY

전반적인 과정은 Marco Pierre White의 레시피 동영상을 참고했다. 특히 이 레시피 동영상이 이 요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는데, 그것은 Marco Pierre White가 단순히 조리과정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왜'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 원리까지 강의를 하듯 자세히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재료.


-양파, 샐러리, 당근: 샐러리의 경우 샐러리향을 싫어하는 사람은 사진 속의 저 정도, 샐러리향에 대한 불호가 없는 사람은 한 줄기까지 자유롭게 조절한다. 당근은 한 개 정도. 양파는 한 알~두 알까지 쓰고 싶은 정도. 양파는 샬럿(방울처럼 생긴 일반 양파보다 작은 양파 종류)이 없을 경우 나중에 가니쉬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정말 취향 껏이다.


-마늘 5톨~6톨


-타임, 파슬리 (생 허브이면 더 좋지만 건조시킨 것도 괜찮다)


-월계수 잎, 정향 2-3 봉오리, 통후추 약간 : 고기를 하룻밤 와인에 재울 때 함께 넣는 재료이다.


-소고기 1 kg 정도 : 어느 부위이든 가능하지만 가능한 한 부챗살이나 살치살, 척 아이롤 같이 지방과 살코기가 적절한 비율로 섞인 부위가 비프 부르기뇽에 적합하다.


-와인: 소고기 1kg 정도를 요리한다면 족히 와인 한 병은 필요하다. 이 와인이 서서히 졸아들며 비프 부르기뇽에 깜짝 놀랄 만한 깊은 감칠맛을 남기게 된다. 요리의 맛이 와인의 맛과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는 하지만 일반인의 입맛을 기준으로 그리 큰 차이를 주지는 않는다는 의견도 많다. 저렴하면서도 튀지 않는 맛의 레드와인이면 적당하다. 나의 경우 먹다 남은 와인은 적당한 품질의 와인이어서 걱정이 없었지만, 2시간 이상 졸이는 과정에서 추가한 와인은 급한 대로 판매되는 와인 중에 제일 싼 진로 와인(500ml 한 병에 2500원 정도)였다. 포도주스급으로 단맛이 강한 와인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요리의 맛은 괜찮았다.


-버섯, 샬럿(없으면 양파로 대체), 베이컨: 가니쉬의 재료가 된다.


양파와 비교한 샬럿(shallot)의 이미지. 일반 양파보다 익혔을 때 맛이 더 부드러워서 가니쉬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사친출처: Reddit




큰 맘먹고 준비한 요리, 시작해보자!




1. 고기를 와인에 재울 때 함께 넣을 재료로, 양파와 당근, 샐러리는 적당한 크기로 손질한다. 너무 잘게 손질하면 나중에 꺼낼 때 조금 귀찮을 수 있으니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자른다. 어차피 건져내서 재활용할 녀석들이다.




2. 고기는 적당한 사이즈로 썰어두는데, Marco Pierre White에 따르면 2시간 이상 졸여내고 나면 고기가 크게 수축할 것이므로 본인이 먹고 싶은 크기보다 좀 더 크게 썰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인절미 떡조각보다 약간 큰 정도로 잘랐는데 이것보다 살짝 크게 잘랐어도 괜찮았을 듯하다.



3. 이제 양파, 당근, 샐러리와 고기를 담은 냄비에 통후추, 월계수 잎, 정향 등의 향신료를 넣고,




4. 와인을 이 모든 재료가 잠길 정도로 붓는다.



5. 이 상태로 냉장고에 몇 시간~하룻밤 재워둔다.



6. 적당한 시간이 흐르야채와 고기, 와인을 따로 담는다.


하룻밤 재워두었더니 고기 색깔이 와인색과 비슷하게 살짝 보랏빛을 띠게 되었다.



7. 뜨겁게 달군 팬에 오일을 두르고 고기 조각들을 올려 겉면을 노릇하게 익히는 캐러멜 라이징(caramelizing) 작업을 한다.


어차피 삶을 고기를 왜 따로 익히는지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마이야르 반응을 통해 얻어지는 감칠맛을 요리에 더하기 위한 과정으로 깊은 맛의 요리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팬은 강한 불에 잘 데워두어야 하는데, 약한 불에 많은 고기를 한꺼번에 올리면 팬의 온도가 급격하게 낮아져서 고기가 노릇하게 익는 대신(caramelize 하는 대신) 수분을 배출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감칠맛을 효과적으로 얻어내기 어렵다.


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고기에 묻은 와인 때문에 캬라멜라이징이 격렬하게 일어나게 된 것이다.




잘 익혀낸 고기는 옮겨둔다. 속을 익힌다기보다는 겉면을 익히는 과정이다.





8. 고기를 익혔던 팬에 오일을 넉넉히 두르고 잘게 자른 양파를 넣어 볶는다. 이때 양파의 수분으로 팬에 묻은 감칠맛 나는 잔해들을 녹여낸다(디글레이징 한다). 마늘도 이때 양파와 함께 볶는데, 마늘을 다질 것인지, 슬라이스 할 것인지 통으로 넣을지는 전적으로 요리하는 사람의 취향대로이다.


버터를 넉넉히 추가하면 그 풍미가 좋아질 뿐 아니라 디글레이징을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9. 양파에 버터를 넣고 볶아서 어느 정도 갈색빛의 감칠맛 나는 잔해들은 팬의 표면에서 닦아내는(디글레이징) 작업이 끝나면 큰 꼬집(a big pinch) 또는 1 밥숟갈 정도의 밀가루를 추가하여 다시 잘 볶아준다.


이 밀가루는 나중에 소스의 점도를 높여주는 thickening agent로 작용하게 된다. 원래 '버터+동량의 밀가루'는 '루(roux)'의 기본재료이다. '루'는 프랑스 요리에서 소스의 thickener로 애용되는데, 유명한 베샤멜소스(화이트소스)는 동량의 버터와 밀가루를 볶다가(roux) 우유를 조금씩 더하면서 만드는 소스이다.




10. 이제 와인이 들어갈 차례. 혹시 팬에 남은 잔여물이 있지 않을까 와인을 살짝 부어 잘 저어주고,



11. 냄비에 볶은 양파와 마늘, 노릇하게 익힌 고기, 고기를 재울 때 썼던 당근과 양파, 샐러리, 월계수 잎 등의 야채와 허브를 넣고 와인을 넣고 끓인다. 이때 와인은 1 리터 정도가 들어간다. 20분 정도 이것을 졸인다.


싱싱한 타임과 파슬리를 갖고 있다면, 아래 캡처 사진처럼 '부케 가르니(필요한 허브를 요리용 실로 한데 묶은 것)'를 만들어 넣으면 나중에 꺼내기가 쉬워진다.


Marco Pierre White의 유튜브 동영상에 등장한 샐러리, 타임, 파슬리, 월계수잎으로 만든 부케 가르니.





12. 와인이 어느 정도 졸았으면 우려낸 닭 육수를 1 리터 정도 넣고 다시 끓인다. 물론 자취생에게 직접 끓여낸 닭 육수 따위가 있을 리가 없으므로 치킨스톡 큐브를 물에 풀어 육수로 사용했다.




계속해서 졸인다. 일단 끓기 시작하면 불은 강불에 두지 말고 약불에 둔다. 두 시간은 넘게 끓여야 하는데, 그래야 소고기가 포크를 갖다 대면 쉽게 결대로 갈라질 정도로 부드럽게 익는다.





거의 다 졸아들 정도가 되면 깜빡 놓친 사이에 바닥의 야채와 고기들이 타버릴 수 있으니 주의하며 간간히 잊지 말고 저어준다. 소스가 착실히 줄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고기가 질기거나 딱딱하다면 물이나 와인을 추가하여 소스의 농도를 낮추어 더 끓인다.





13. 고기도 부드럽게 익고 소스도 알맞게 졸아들었으면 이제 가니쉬를 준비할 차례. 아까 고기를 와인에 재울 때 사용했던 양파를 적당한 크기로 썰고,




버섯과 베이컨도 적당한 사이즈로 썰어서 준비했다.



14. 비프 부르기뇽이 완성단계에 다다르는 것을 유심히 살피며 가니쉬(베이컨, 양파, 버섯)를 프라이팬에 볶아서 준비한다.


섯에 수분이 많기 때문에 각 재료를 따로 볶는 것이 좋은데, '베이컨-양파-버섯'의 순서로 한 팬에 볶는 것도 괜찮다. 먼저 오일을 살짝 두른 팬에 베이컨을 올려 바삭하게 튀기듯 볶아낸 후에, 베이컨을 덜어내고 그 기름을 아주 조금 버리고 양파를 볶다가, 양파가 다 익으면 양파를 덜어내고 버섯을 노릇하게 익을 정도로 볶는 것이다.


양파를 볶을 때 와인 또는 비프 부르기뇽 소스를 살짝 섞는 것이 레스토랑 맛의 비법 중 하나라고 한다.



이제 비프 부르기뇽은 완성이다. 와인 한 병과 소고기 1 kg의 힘일까, 국물색은 짙은 갈색인데 그 색깔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칠맛의 깊이가 느껴진다.












예쁘게 덜어낸 후에




15. 준비했던 가니쉬를 올려 완성한다.





와인 1 리터의 농축된 맛과 소고기와 베이컨, 치킨스톡의 치명적인 감칠맛이 혓바닥 전체를 무겁게 압박하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진한 풍미의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머리에서 종이 울리는 듯한 맛의 소스이다.





가니쉬로 올린 노릇노릇한 버섯, 양파, 베이컨도  요리에 다양한 식감과 맛을 추가한다. Marco Pierre White가 비프 부르기뇽을 만들 때 절대로 가니쉬를 아끼지 말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것보다 가니쉬를 적게 준비했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2시간 30분가량 천천히 뜸을 들여 조리한 소고기는 아예 물컹거리지도 않고, 적당히 쫀득하면서도 부드럽다. 오랜 시간 동안 끓으면서 고기가 혀를 압박하는 진한 맛의 소스를 충분히 흡수하였다는 것이 느껴진다. 고깃덩이를 입에 넣고 굴리면 굴릴수록 행복감에 기분이 노곤노곤해진다.





다음 접시는 가니쉬를 소스와 잘 섞어서 내어보기도 했다. 이쪽도 나름대로 보기가 좋다.





왜 영화의 Julie가 이 요리에 혼신을 다했는지를 알 것 같다.

비프 부르기뇽 만세!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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