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나 가격으로 집을 통째로 쓴 아비뇽의 에어비앤비

명탐정이 되어 휴가중인 주인가족에 대해 추리해 보기

by 일랑일랑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를 타고 아비뇽에 도착하자 때는 벌써 9시가 넘었다. 9시를 지나치자 제아무리 해가 긴 유럽의 여름이라 할 지라도 어둑어둑 밤 느낌이 난다.


아비뇽TGV기차역에서 갈팡질팡하다보니 더 늦었다. 아비뇽에는 기차역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시내에서 좀 멀리 위치한 떼제베역이고, 하나는 아비뇽시내에 딱 붙어 있는 아비뇽역이다. 바르셀로나나 니스등 원교로 가는 기차는 떼제베역에서, 아를 같은 근교로 가는 기차는 아비뇽역에서 탄다.


아비뇽TGV 역에서 아비뇽 시내로 가는 법은 간단한데, 그것은 아비뇽TGV역에서 기차를 타고 아비뇽역으로 바로 가는 것이다. 몇 분 채 걸리지 않으며 가격도 몇 유로 하지 않는다. 아비뇽역에서는 숙소까지 걸어가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비뇽역이 따로 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더군다나 예약한 에어비앤비의 '찾아 오는 법'에서는 '셔틀'을 타고 시내까지 오라고 되어있다. 때마침 함께 갈팡질팡하던 보스턴에서 온 미국인 남매가 함께 택시를 타자고 제안한다. 프랑스의 택시는 처음이라 고민했지만, 두 팀이서 나누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왠걸, 택시 트렁크에 짐이 네 개 모두 들어가지 않는다. 택시기사는 자기 친구를 불러줄테니 우리더러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전화를 건다. 택시 제안을 한 미국인 남매는 겸연쩍었는지 그냥 굳럭하고는 먼저 온 택시를 타고 훌훌 떠나간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숙소 코 앞까지 편히 가자고 위로한다.


곧 택시가 왔다. 택시기사는 20~30대로 보이는 청년. 영어도 조금 한다. 지도가 없냐고 해서 미리 뽑아온 지도를 보여줬더니 그 밑에 있는 숙소건물 사진을 보더니 "Ah~SPUR!"한다. 작은 슈퍼마켓 위에 있는 집이라더니 그 슈퍼마켓(체인명이 SPUR)을 알아본 모양이다.길을 달려 아비뇽 성곽 안으로 들어선 후, 구불구불한 골목길 사이를 확확 밟고 폭풍후진까지 하더니 딱 바로 SPUR 앞에 선다. 미터기 오르는 속도가 스페인의 두 배 정도로 빨라 잔뜩 긴장했었는데 다행히 18유로가 나왔다. 어두운 밤에 골목길을 헤매지 않고 편히 온 것을 생각하면 괜찮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니,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본 주인부부와 다른 4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여성이 나온다. 자신은 이 집의 청소와 관리를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어를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만 했다. 우리의(주로 프랑스어를 한 학기 배운 내 친구의) 프랑스어보다는 그녀의 영어가 두 배 정도 나은 수준이기에 대화는 영어로 진행되었고, 당연히 필요시 바디랭귀지도 동원되었다.


이 여인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집주인 부부는 휴가로 여행을 가 있고, 그래서 이 집이 지금 통째로 비어 있다는 것이다. 좋다는 생각보다도, 하나도 알지 못하는 여행객, 그것도 외국인에게 집을 통째로 내 주고 가는 그 배짱이랄까 신뢰 같은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여인이 열쇠 잠그는 법이라든지 수건 쓰는 법을 열심히 알려준 후 이 집을 나가버리자, 고요한 적막이 집을 감싼다. 친절하고 호들갑스러웠던 그녀가 떠나고 나니, 이 집에는 간접 조명 밖에 없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스탠드라는 스탠드는 모두 켜 놓아도 캠핑용 램프 하나 켜 둔 것보다 못할 정도로 어둡다. 더군다나 주인이 아프리카 문화에 심취했는지, 집안 곳곳 아프리카 조각 장식이 그득해서 조각상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조금 오싹한 느낌이 든다.


호텔은 밤에 도착해도 전혀 무섭지 않았는데 남이 살던 집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바람이 세게 부는 지, 창문마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닫으려고 용기를 내어 소리가 제일 심한 안방까지 들어가고니, 백 년은 되어보이는 나무 창틀이라 이음새가 잘 맞지 않는다. 낑낑거리다 내가 할 수 있는데까지만 맞춰놓고, 뒤도 안돌아보고 후다닥 뛰쳐나왔다. 비어 있는 어두운 안방이 너무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온 집안의 불을 다 켜놓고 우리 방 문을 걸어 잠그고서야 잠이 들었다. 안방의 창문은 밤새 삐걱였다.


집이 층고가 상당한데 우리가 묵었던 방만 2층이다. 로맨틱한 벽화도 있다.




빈티지 인테리어에 환장을 하는 내가 거품 물고 좋아했던 우리 방의 가구들.




우리가 묵은 방의 이층에는 이토록 깜찍한 빈티지 책상과



폭신폭신한 침대가 있다.



거실에는 멋진 벽난로가 있다.



다음날, 햇살이 집 안을 비추자 이 집이 그리 무서운 집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시간을 잡고 천천히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낮에 보는 집은 빈티지 가구와 아프리카풍 장식으로 가득한 어두운 갈색 베이스의 분위기 넘치는 집이다.


집안 곳곳 가족사진이 보이는데, 딸 하나가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방 책장에 동화책도 몇 권 있었던 것으로 보사 아마 우리가 쓰던 방이 그 딸의 방이었나보다.



역시 프랑스인 아니랄까봐, 가족사진마저 감성이 넘친다. 우리 방을 쓰던 딸은 어디로 갔을까? 대학생이 되었거나 어디 기숙학교에 들어간 것은 아닐지 상상해 본다.


책꽂이를 살펴보니 저자명이 집주인의 이름과 똑같은 책이 여러 권 보인다. 전부 아프리카에 관련된 책이다. 게다가 집주인이 쓴 책 외에도 많은 책이 아프리카 관련 서적이다.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집주인은 필시 아프리카 문화를 사랑하고 아프리카 여행을 많이 다녀온 아프리카 문화연구자이다. 아마 대학교수일 것 같다. 이번 휴가는 어디로 갔을까? 또 아프리카로 간 건 아닐까?추리가 완성되자 이제는 온갖 상상이 이어진다.



친구는 또 귀신 같이 악보를 프린트해왔다. 대체 어떻게 그걸 생각했냐고, 이 집에 피아노가 있을 줄 알았냐고 하니 그건 아니랜다. 그냥 짐 쌀 때 혹시 몰라서 가벼우니 그냥 넣어봤다고 한다. 내 친구이지만 무서운 친구다. 어젯밤과 달리 한결 밝아진 집안에 친구의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진다.



거실의 TV다이와 의자까지, 죄다 빈티지풍이다.




친구가 나갈 준비를 하는 사이, 나는 부엌에서 어제 까르푸에서 사 온 재료로 아침을 차렸다. 토마토와 부라타치즈(물소젖치즈), 곡물빵과 오렌지 주스, 그리고 후식으로 요거트와 납작 복숭아를 나름 신경 써서 차려 보았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다보니, 프랑스인의 주방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첫번째로, 물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석회가 많이 끼여 있다. 씽크대를 보고 한 번 헉 했는데, 시허연 커피포트 안을 보고는 놀라 뒤집어질 뻔 했다.


두번째로, 마시는 물은 브리타 같은 간이정수기로 걸러 마신다는 것. 마트에는 생수가 정말 많이 있던데, 생수병이 안 보이는 것을 보니 이 가족은 생수는 잘 안사나보다. 브리타에도 석회가 잔뜩 끼여있는게 찝찝해서, 우리는 그냥 생수를 사 먹었다.


세번째는 냉장고 안의 버터. 프랑스인의 피에는 버터가 흐른다더니 역시 냉장고를 열자마자 버터가 눈에 딱 들어온다. 미국가정에서는 플라스틱 통 안에 든 버터를 그냥 그대로 퍼서 썼었는데, 이 가족은 딱 버터 담기 용도로 보이는 뚜껑이 달린 은색 식기에 딱 먹을만큼만 작은 큐브모양으로 잘라 두었다. 이것이 미국과 프랑스의 차이인지, 그냥 각 가정의 습관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고르자면 나는 속편한 미국파인 듯 하다.




집안 곳곳을 둘러보고 아침을 차리느라 부엌을 뒤지다시피 하고 나니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이 넓은 집을 방 하나 빌리는 돈으로 우리끼리 쓴다는 것에 신이 났었지만 이 가족을 만나서 함께 3일을 보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귀엽고 감성 넘치는 가족처럼 보였는데.

가족 이야기며, 아프리카 이야기며, 석회수 이야기며 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프랑스인들은 이런 빈티지 가구를 어디서 사는지, 만들 때 빈티지처럼 만드는지 진짜 세월에 의해 빈티지가 되는지, 아프리카 베두인족이나 베르베르족을 만나보았는지, 주로 집에서 먹는 프랑스요리는 어떤 것인지를 물어보면, 어쩌면 진짜 대학교 교수처럼 수십 분 대답을 논리정연하게 줄줄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첫날밤 무서움에 오돌오돌 떨기도 했고, 샤워부스에서 물이 넘쳐 욕실바닥을 젖게 하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숙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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