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의 빈티지 그릇가게

흥분과 후회와 기쁨과 미련과 그리고 다시 후회

by 일랑일랑



아를Arles의 원형경기장 근처에는, 한국으로 통째로 들여오고 싶은 빈티지 그릇가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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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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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탄성이 튀어 나온다. 아... 이런 커피 세트가 단돈 6유로라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문을 박차듯이 하여 가게로 들어간다.



가게는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고, 2층은 작은 찻집이 있고 그 옆에는 큰 그릇과 접시가 전시되어 있다.

주인 부부가 있는 1층에서 호들갑 떠는 것이 부끄러워져서 2층에 올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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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탄성이 나오고 손이 떨린다. 이런 빈티지 접시가 겨우 4유로라니. 그것도 세트로 원하는 만큼 사갈 수 있다니. 일단 이거 2개는 산다. 5초만에 결정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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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선반은 더하다. 무슨 용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은 건 설탕 그릇, 큰 것도 설탕 그릇인가?)

특히 양손잡이 뚜껑 달린 그릇들이 맘에 든다. 찻주전자와 밀크자Milk Jar도 있다.


혼돈에 휩싸인다.


나는 무엇을 사야 하는가. 내 캐리어에 잔여공간은 얼마나 남았고, 나는 이 중 몇 개를 깨뜨리지 않고 들고 갈 수 있는가. 앞으로 가게될 니스와 에즈에는 이런 빈티지 가게가 있을 것인가. 거기에서도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어찌할 것인가?


마침내 4유로짜리 접시와 짝이 될 만한 양손잡이 뚜껑그릇을 하나 산다. 저 위 사진의 빨간 그릇과 금색 그릇 사이에 있는 녀석이다. 그러나 다른 녀석들도 사고 싶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친구가 손목을 잡는다.


친구여, 우리는 고흐의 발자취를 마저 쫓아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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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금박과 은박 장식이 있는 아이들의 자태가 너무나도 아름답다.

자꾸 내가 뒤를 돌아본다. 친구야, 저 아이들은 너무 예쁘다. 친구도 인정한다.

니가 결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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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하여 12유로짜리 양손자리 그릇 하나, 4유로짜리 접시 둘, 3유로 짜리 장미꽃무늬 커피잔 세트를 골라서 도망치다시피 2층 매장에서 내려왔다.


아이들이 포장을 되고 있는 것을 보니 부피가 상당하다. 내 24인치짜리 캐리어는 이미 스페인에서 사 온 접시 3개와 커다란 소금단지 하나, 커피잔 세트 하나와 술잔 두개로 터질 것 같다. 아마 이 아이들이 최후의 공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공간이 없다, 공간이 없어,를 주문처럼 외치며 흥분과 욕망을 잠재우려 한다. 나를 시험에 드지 말게 하소서, 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시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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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 모습을 아까부터 말없이 지켜보던 존재하나가 있었는데 이 포스가 넘치는 고양이이다. 이 고양이의 나를 향한 눈빛에 담긴 예언을 알았더라면, 한국에 돌아와서 이리도 괴롭지 않았을 것을.
















아를 빈티지 가게에서의 이날이 내 행복했던 스페인-남프랑스 여행 중 가장 후회스러운 날이다.

샀기 때문이 아니라 덜 샀기 때문에 괴롭다. 특히 금박, 은박을 입힌 아마도 설탕그릇일 두 양손잡이 그릇이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리고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안쪽으로 그 이미지가 떠오르며, 혹여 사진으로라도 보자하면 송곳 같은 후회가 가슴을 후벼 판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안되는 일이 뭐가 있으랴. 자리가 없으면 옷을 버려서라도 자리를 만들면 되는 것을. 미련하도다. 미련하도다. 한여름의 여행이 끝나고 겨울이 왔건만 나는 아직도 아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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