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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Feb 21. 2017

톡 쏘는 반전에 중독되는 초콜릿 쿠키

고춧가루와 후추가 들어간 칠리 초콜릿 쿠키

자취 인생 9년 만에 드디어 오븐을 장만했다!


자취생 주제에 전자레인지 크기의 1.5배나 되는 전기 컨벡션 오븐을 들이는 것은 적어도 한두 달의 고민이 필요한 벅찬 일이다. 단순한 가격 고민이 아니다. 공간에 대한 다면적인 고민 또한 필요하다. 그리 크지 않은 주방 어디에 오븐을 둘지, 그러면 오븐을 둘 자리에 있던 물건들은 어디로 치울지, 다음에 이사할 때 큰 짐 한 덩이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감당할 수 있을지, 각종 오븐용 팬 등 오븐 사용을 위한 여러 도구들을 구매해야 할 것인데 그러면 그 도구들은 또 어디에 수납할지, 공간에 대한 고민은 도미노처럼 연결되어 자취생을 압박한다.


이 외에도 베이킹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흔히 베이킹을 시작하면 살이 찌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한껏 베이킹의 재미에 눈을 뜨는 시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면, 어느덧 베이킹을 취미로 삼게 된 사람들은 살을 찌우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븐에서 구워낸 쿠키며 케이크 같은 것을 남들에게 나누어주게 된다고 들었다. 가족과 함께 산다면 이 나누어먹는 문제가 비교적 쉽게 해결될 것이다. 식탁 위에 쿠키를 올려두면 누군가는 오며 가며 조금씩 먹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혼자 사는 자취생이 쿠키를 구워낸다면 그 쿠키들은 고스란히 구워낸 사람의 뱃속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나.


책 한 권 들이기도 고민스러웠던 3평짜리 원룸에서 벗어나 9평짜리 원룸에 입성한 지금, 이 정도면 오븐을 들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브런치에 요리 포스팅을 하면서부터 유튜브에서 다양한 레시피를 접한 것도 오븐 구입에 대한 갈망에 불을 질렀다. 서양 쪽 레시피를 보다 보면 제빵, 제과 레시피가 아니라고 할 지라도 적게 잡아 40프로는 "자, 이제 오븐에 넣어봅시다"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 실컷 재미있게 영상을 보며 '이 정도면 할 수 있겠어'하다가 '오븐!!!'하며 가슴을 부여잡으며 안타까워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2개월에 걸친 고민 끝에, 이사한 지 3달 만에 그리고 자취 인생 처음으로 오븐을 들이게 되었다. 



지금부터 포스팅할 쿠키 레시피는 밸런타인데이 기념으로 구운 칠리 초콜릿 쿠키이다. 중고등학교 때 부모님과 같이 살 때 대형마트에서 파는 쿠키믹스를 사용하여 빌트인 오븐으로 쿠키를 만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베이킹파우더니, 박력분이니 하는 것을 직접 계량하고 믹스하여 쿠키 도우를 만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필요한 재료 중 몇 가지를 자꾸 빼먹어서, 한꺼번에 다 사지 못하고  집 앞 홈플러스에 여러 번 다녀왔다. 쿠키 팬이니, 베이킹파우더니, 바닐라 익스트랙이니 안 써보던 것들을 장만하느라 돈도 꽤나 썼다. 하나둘씩 사모은 건조 허브와 향신료가 요리를 하다 보니 찬장 하나를 가득 채운 것처럼, 베이킹 재료도 하나둘 사모으게 되는 것일까? 부실한 빌트인 싱크대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만들 요리. <칠리 초콜릿 쿠키>

Chili Chocolate Cookies Recipe - Chocolate Chili Cookies ㅣ food wishes

https://www.youtube.com/watch?v=9I6G45bYf2U&list=PLoVNPiL6Ea8zYSN0Vd23T3o_5TWRaAYuD&index=60


Food wishes의 레시피를 따왔는데 Chef John이 만든 레시피가 아니라 그의 부인이 사용하던 레시피라고 한다.




재료.


-1 밥숟갈 진한 커피액(에스프레소, 카누 녹인 것 등)

-다크 초콜릿 170g

-3 밥숟갈 버터(무염버터일수록 더 좋다)

-1/2컵 밀가루(박력분)

-1/4 티스푼 베이킹파우더

-1/4 티스푼 소금

-1/8 티스푼 시나몬

-1/2 티스푼 후추(통후추를 바로 갈아낸 것이 좋다)

-1/8 티스푼 카옌페퍼(없다면 곱게 간 고춧가루로 대체 가능. 고춧가루가 진득하게 오래 남는 매운맛이라면, 카옌페퍼는 강하고 깔끔하게 톡 쏘고 지나가는 매운맛이다)

-실온에 둔 달걀 2개

-3/4 컵 설탕(나는 케이크이나 쿠키류는 덜 단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설탕을 1/2컵으로 줄였다. 미국 쪽 레시피를 그대로 따를 경우 한국인 입맛에 지나치게 달콤한 디저트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2 티스푼 바닐라 익스트랙트

-1 컵 초콜릿 칩(다크 또는 밀크)





조리 과정.


1) 버터(3 밥숟갈)와 초콜릿(170g)을 중탕하여 녹인다. 초콜릿이 거의 다 녹았을 때 버터와 잘 섞어서 부드러운 상태로 만들고, 차지 않고 부드러운 상태로 유지한다.


-팁: 초콜릿을 중탕할 때에는 물이 끓는 냄비 위에 볼을 받쳐서 녹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녹고 있는 초콜릿에 물이 들어가면 이도 저도 아닌 쓸모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냄비 위에 올리는 볼의 사이즈를 적당히 큰 것으로 골라 끼우듯이 냄비 위에 올리면 물이 들어갈 일이 없어서 편하다.



2) 드라이 믹스(dry mix)를 준비한다. 카옌페퍼(1/8 티스푼), 후추(1/2 티스푼), 시나몬(1/8 티스푼), 소금(1/4 티스푼), 베이킹파우더(1/4 티스푼)를 밀가루(1/2컵)와 함께 담고 거품기로 잘 섞어서 밀가루 덩어리를 풀어낸다.


나는 매운맛을 더 강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카옌페퍼와 후추를 원래 레시피의 두배 이상(카옌페퍼 1/2 티스푼, 후추 1 티스푼) 넣었다. 아무래도 한국인은 미국인보다 매운맛이 무던하기 때문에 적당한 킥을 주려면 훨씬 매워야 할 것이라는 추측도 했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 깊은 초콜릿 맷에 은은히 치고 지나가는 매운맛이 어우러진 쿠키가 탄생했다.



3) 젖은 믹스(wet mix)를 준비한다. 실온에 둔 달걀 두 개에 설탕(1/2컵~3/4컵. 취향에 따라)을 넣고,



바닐라 익스트랙트 2 티스푼을 더해 잘 섞는다.




4) (1)의 중탕한 초콜릿에 (3)의 젖은 믹스를 섞는다.



5) (4)에 커피액 1 밥숟갈을 더한다.



6) (5)의 젖은 믹스에 (2)의 드라이 믹스를 조금씩 넣어가며 주걱으로 섞는다. 아주 완벽하게 섞으려고 하다 보면 지나치게 반죽이 되어버릴 수 있으므로 큰 밀가루 덩이가 없을 정도로 한다. 마지막으로 초콜릿 칩을 더해서 살짝 섞는다.


쿠키 반죽도 점도나 축축함의 정도가 차이가 있는데, 이 쿠키 반죽은 좀 축축한 편이다. 반죽이 축축하다는 것은 완성될 쿠키가 촉촉하다는 것! 반죽이 질어서 모양을 내기는 힘들지만 속이 촉촉한 쿠키를 기대해 본다.



7) 쿠키 팬에 쿠키 반죽을 덜어 띄엄띄엄 올린다. 반죽을 지금 3-4 cm 정도로 하여 올리면 약 20개 정도가 나올 분량이다.


쿠키 팬 하나로는 부족해서 팬을 하나 더 썼다. 반죽이 눌어붙진 않을까 해서 테프론 시트를 깔았는데, 논스틱 팬이어서 테프론 시트를 깔지 않는 쿠키도 아주 깔끔하게 잘 떨어졌다. 팬의 코팅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면 굳이 유산지나 테프론 시트를 깔 필요는 없을 것이다.



참고한 동영상에서 Chef John은 아이스크림 스쿠퍼를 이용해서 쿠키를 팬에 올렸다. 동영상에서는 비교적으로 동그랗게 모양이 잘 잡히던데, 밥숟가락으로 퍼서 올린 내것은 아무리 해도 정형적인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 부풀고 나면 둥글둥글 비슷해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8) (7)의 쿠키 반죽을 170~180도로 예열한 오븐에 넣고 12분간 굽는다.




칠리 초콜릿 쿠키 완성!




일단 향은 초코향이다. 모양도 투박한 초콜릿 쿠키. 어느 누가 이 안에 킥이 숨어있을 것이라 생각할까.



한 입 베어 물면 처음에는 진한 다크 초콜릿만 느껴지다가, 몇 초 후에 매큼한 후추향과 탁 치는 매운맛의 카옌페퍼가 밀려온다. 그렇다고 김치나 떡볶이처럼 대놓고 매운 것은 아니고, 진득한 초콜릿 쿠키맛이 입안을 채운 가운데 '오잉?'할 정도로 미묘하지만 충분히 감지할 정도의 매운맛이 확 나타났다가 다시 밀려오는 초코맛에 가려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조니 뎁에 푹 빠져 살던 고등학교 때 보았던 초콜릿 Chocolat (2000)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에 비엔(줄리엣 비노쉬)이 초콜릿 가게를 차린다. 딸과 함께 마을을 떠돌아다니면서 초콜릿을 만들어 파는 그녀는 달콤한 초콜릿으로 사람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비엔은 엄격한 가톨릭 규율과 신앙심으로 경직된 마을 사람들에게 달콤한 초콜릿을 전해주면서 서로 맘의 벽을 허물도록 도와준다. 노인들은 다시 활기를 찾아 뜨거운 사랑을 갈구하고, 위기를 맞은 연인들은 불타는 사랑을 되찾는다.

-줄거리 출처: 다음 영화



영화에서 비엔(줄리엣 비노쉬)은 자신의 초콜릿 가게를 찾은 풀이 죽은 손님(주디 덴치)을 위해 핫 초콜릿을 내놓는다. 그녀가 핫 초콜릿에 가루를 뿌리는 것을 보고 손님은 그것이 시나몬이냐고 묻는다. 비엔이 시나몬이 아니라 칠리 페퍼라고 대답하자, 손님은 미심쩍다는 듯이 "Chili pepper in hot chocolate?"하고 되묻는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마침내 맛을 본 손님이 씩 웃으며 하는 대답. "It tastes like... I don't know."


https://www.youtube.com/watch?v=iAcHY4gN-4U

                

이 손님의 대답으로는 칠리 초콜릿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 영화 초반부에서 칠리 페퍼를 넣은 핫 초콜릿을 묘사하는 절묘한 대사를 찾았다.


A tiny hint of chilli pepper... to play against the sweetness.  Tangy, adventurous. 


톡 쏘고(tangy) 저돌적인(adventurous) 칠리 페퍼의 맛이 달콤함에 대적하는 느낌, 딱 그 느낌이다.





이 쿠키는 선물 받은 사람이 먹는 모습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 쿠키이다. 어때? 어때? 뭐가 달라? 뭐가 들었게? 하고 먹는 것을 보는 사람이 더 조바심을 내게 된다.





앞으로 오븐으로 더 많은 쿠키를 구워내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Bon Appetit and sweet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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