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비스킷과 미국 비스킷의 차이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비스킷(biscuit)이라는 단어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KFC 비스킷이 왜 '비스킷'이라고 불리는지는?
나는 어려서부터 과자라면 환장을 했다. 아직도 그 관성이 남아있어서, 어디선가 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 고개가 소리나는 쪽으로 홱 돌아간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은 용돈을 주면 군것질만 할것이라고 생각을 하셨는지(사실 정확한 추측이다) 정기적인 용돈을 일체 주지 않으셨다. 슈퍼에서 장을 봐오는 따위의 심부름을 할 때에야 거스름돈으로 받는 동전을 네가 쓰라고 건네주시는 정도였다.
90년대 중반은 '자키자키'가 200원, '치토스'가 300원(곧 500원으로 올랐다), '쿠크다스', '초코하임' 등 상자에 든 과자가 500원 정도(곧 700원으로 올랐다)하던 때였다. 지금도 인기있는 '칙촉'이 처음 나왔을 때 1000원 정도하는 가격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군것질이 고팠던 일곱살짜리 꼬마는 엄마가 식사준비를 하실 때면 주방을 기웃거리며 엄마가 심부름거리를 떠올리시기를 애타게 기다렸고, 슈퍼에서 거스름돈을 받을 때는 지폐보다는 동전이 많이 남기를 간절히 바랐다. 운이 없어 거스름돈으로 100원, 200원이 나왔을 때에는 아쉬우나마 '새콤달콤'을 사먹거나 근처 문방구로 달려가서 '밭두렁'이나 '꾀돌이,' '쌀대롱' 같은 100원 짜리 문방구 과자를 사서 입을 오물거리며 아껴먹었다.
이토록 어려서부터 과자마니아였던 나의 세상에서, '비스킷'은 어쩐지 '치토스'나 '인디안밥' 같은 봉지과자보다 조금 더 쉽게 넘보지 못할 위치에 있었다. 현재까지도 한국에서 '비스킷'은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상자나 곽에 들어있으며 둥글거나 각진 모양의 딱딱한 과자 종류를 의미한다. 아무래도 이런 과자들은 봉지과자보다 1.5배~2배 정도 비싸기 마련이다. 어린 나도 과자마니아였던만큼 그 정도의 분류는 이해하고 있었다.
이렇듯 딱딱하고 수분기가 적은 과자 종류를 '비스킷(biscuit)''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비스킷은 고대 프랑스어 단어인 'bescuit'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라틴어 어원인 이 단어에는 '두 번 굽는다'라는 의미가 있다. 참고로 요즘 꽤 유명해진 이탈리아의 과자 '비스코티(biscotti)'와 그 어원과 의미가 동일하다.
밀가루 반죽을 두 번 굽는 것은 비스킷이 저장건조식품으로 (주로 선원이나 군인들에 의해) 애용되었던 사실과 관계가 있다. 두 번 혹은 그 이상 반죽을 구워 수분을 완전히 날려버린 후, 돌처럼 딱딱해진 비스킷을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저장하여 먹었던 것이다. 로마군과 이집트군이 전쟁을 하던 시절에도 각 군대가 저장과 운송의 편의를 위해 밀가루 반죽을 여러번 굽고 말린 상비식을 들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이 당시의 비스킷은 현대의 간식용 비스킷과 확연히 달라서, 크기가 큰 것은 큰 가방만했고, 딱딱하기가 이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수준이라 우유나 물에 불려서 먹거나 조리를 해서 먹어야 했다고 한다.
이렇듯 가히 '간식'이나 '디저트'로는 부르기 어려울 정도의 무지막지한 비스킷이 현대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은 설탕 사용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다. 현대의 비스킷은 딱딱한 것부터 잘 부서지는 것, 달콤한 것과 그리 달지 않은 것 등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밀가루 뿐 아니라 버터 등의 유지류와 달걀, 설탕을 이용하여 만든다. 따라서 이 재료가 민간에서 사용하기 용이해진 시점부터 다양한 비스킷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유럽보다 꿀과 향신료가 풍부했던 중동에서 밀가루와 버터, 꿀, 향신료를 섞어 비스킷 형태로 만든 디저트가 먼저 퍼졌고, 이것이 아랍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 및 십자군 전쟁 등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럽에서는 중세를 지나며 민간에 설탕과 제분된 밀가루 사용이 용이해지기 시작했다. 16세기의 기록을 통해 비스킷의 일종인 진저브레드 비스킷이 수도원과 약국 등에서 거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1850년대에 McVitie's, Carr's, Crawford's와 같은 영국 비스킷 회사들이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각각 'McVitie's Digestive', 'Carr's Water Biscuit', 'Crawford's Garibaldi Biscuit' 등으로 잘 알려진 이 브랜드들은 아지까지도 굳건하게 대표 비스킷 브랜드로 전세계에 판매되고 있다.
비스킷의 본 고장인 유럽에서 비스킷이 이렇듯 유구한 역사에 걸쳐 발전한데 반해, 한국에서의 비스킷은 어느 특정시점에 외래문물로서 도입되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납작하고 딱딱한 과자류를 '비스킷'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개화기에도 서구문물을 접하며 비스킷을 맛본 한국인이 일부 존재했을 수는 있지만, 비스킷이 한국인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 및 미군과 관련이 있다. 전쟁 후 미군이 나누어준 밀가루, 가루우유 등의 음식 중 비스킷이 있어서, 어머니들이 배곯는 아이를 위해 배급 받은 비스킷을 물에 풀어 죽을 만들어 먹이곤 했던 것이다. 또한 미군부대에서 몰래 빼서 유통하던 품목 중에 비스킷이 있었고, 전후의 힘든 상황에서도 이것을 어설프게 카피한 'ㅇㅇ비스케ㅌ' 따위의 상품들이 출시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비스킷류 과자 중 맏형뻘인 과자로는 1961년에 출시된 '크라운 산도'가 있다. 이름 그대로 '샌드'형태이긴 하지만 기본은 비스킷인 것. 이후 70년대에 '꽃반지 비스킷', '마미 비스킷', '봉봉 비스켙' 등 비스킷이라는 단어를 아예 자신의 상표로 내건 제품들이 꾸준히 등장하였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내가 '비스킷'의 개념을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과자를 꼽자면 '빠다 코코낫 비스킷'을 빼놓을 수 없다. 1979년에 출시된 이 장수과자는 90년대 중반까지는 TV광고를 할 정도로 그 인기가 굳건했는데, "빠~다 코코~낫 비스킷!"하는 캐치프레이즈가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 이 외에 '비스킷'의 전형으로 분류되는 과자에는 '다이제(1982년 출시)' 나 '그레이스(1985년 출시)', '사브레(1975년 출시)' 등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EaDIVEm0y8
이렇듯 나는 자연스레 '비스킷'이라고 하면 무조건 위에 언급한 과자들처럼 딱딱하고 수분이 부족해서 우유와 함께 먹거나, 여의치 않으면 침을 일부러 고이게 해서 천천히 녹여먹는 다소 비싼 과자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비스킷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개념을 뒤흔든 사건이 두 번 있었다.
첫번째는 'KFC 비스킷'과의 만남이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신도시에서 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KFC나 맥도날드, 베스킨라빈스는 아직 촌티를 벗지 못한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집근처 홈플러스에 있었던 KFC에서 KFC비스킷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생긴 것은 두툼하고 빵 같은데 비스킷이라니? 비스킷은 납작하고 딱딱한 과자가 아니던가?
그러나, 버터가 들어가 살살 녹아드는 뜨끈뜨끈 포슬포슬한 KFC비스킷을 딸기잼에 발라서 입에 넣는 순간 나의 의구심은 아득한 너머로 멀리 날아가버렸다. 그냥 KFC에서 그렇게 이름지은 것이겠지뭐. 이런저런 비스킷이 있는거겠지.
두번째는 미국 대학의 카페테리아의 비스킷을 보고 '미국식 비스킷'이라는 분류가 존재함을 의식했을 때이다. 트레이 가득 들어있는 두툼한 비스킷과 바로 옆에 놓인 희여멀건한 소세지 그레이비를 보았던 것이다. KFC비스킷과 닮기는 했는데, 바로 오른쪽의 흰 소스는 어찌하란 것일까?스프인가?
내가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사이, 내 앞에 서 있던 미국 학생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비스킷 한 조각을 접시에 올리고 옆에 있는 흰 소스를 한 국자 퍼서 그 위에 올린 후 유유이 사라졌다. 내가 바로 뒤에서 한순간 깨달음과 충격에 접시를 들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은 전혀 모른 채로.
두 번의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된 것은, 미국에서 비스킷은 유럽 및 우리나라의 비스킷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왜 북미(미국 및 영어를 사용하는 캐나다 지역을 포함)의 비스킷은 유럽 및 세계 다른 지역의 비스킷과 다른 형태를 갖게 되었을까?
영국 비스킷 vs. 미국 비스킷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에서, '비스킷'은 작고 납작하며 딱딱거나 바삭한 과자류를 일컫는다. 반면 북아메리카에서 이러한 과자류는 '쿠키' 또는 '크래커'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미국에서 '쿠키'는 영국인이 '비스킷'으로 생각하는 딱딱하고 납작하며 틀에 찍은 모양의 과자부터 초콜렛칩쿠키 등 촉촉하고 부드러운 과자류를 통칭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단어이다. 반면, 영국과 연영방 국가에서는 비스킷과 쿠키의 구별이 확실하여, 거의 대부분의 단단한 과자는 '비스킷'으로 불리며, '초콜릿칩쿠키' 정도의 한정된 종류의 부드러운 과자만이 '쿠키'라고 불린다.
영연방의 비스킷. 납작하고, 단단하며, 달콤한 후식 개념의 과자이다. -사진출처: 버즈피드, 위키피디아
미국이나 캐나다인은 '비스킷'하면 대부분 밀가루, 버터, 버터밀크, 베이킹파우더와 베이킹 소다 등으로 만든 둥근 형태의 빵을 떠올린다. 과자류인 비스킷과는 확연히 다른 음식이다. 정확히 말하면 별도의 부풀리는 과정 없이 재료를 섞은 것을 바로 구워낼 수 있기 때문에 '퀵 브레드(quick bread)'로 분류되는 빵이다.
북아메리카의 비스킷. 베이킹소다와 베이킹파우더를 사용해서 빵처럼 부풀리며, 그레이비를 올려 짭짤하게 먹는다. 주로 아침식사를 위해 먹는다. -사진출처: 버즈피드, 위키피디아.
사실 북아메리카의 비스킷은 영국의 스콘와 그 제조법과 형태가 유사하다. 다만 미국의 비스킷은 짭짤한 그레이비나 치즈, 달걀 등을 곁들여 식사용(주로 아침식사)으로 먹으며, 영국의 스콘은 클로티드 크림이나 버터 등의 유지류와 딸기잼 등을 곁들여 먹는 티푸드(tea food)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미국의 비스킷에는 설탕이 들어가지 않지만, 영국의 스콘에는 설탕이 들어간다.
클로티드 크림과 잼을 올려 달달하게 먹는 스콘과 소시지, 그레이비 등을 곁들여 짭짤하게 먹는(savory) 미국식 비스킷.
영국 스콘 vs. 미국 스콘
한편, 미국에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스콘(scone)'이라는 이름의 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이 미국식 스콘의 대명사가 바로 코스트코에서 팔리는 달달한 세모 모양의 스콘이다.
차이가 있다면 외형적으로 미국식 스콘은 주로 삼각형 모양으로 성형하고 영국식 스콘은 둥근 형태로 만든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미국식 스콘은 표면에 설탕을 뿌리는 경우가 많은 반면, 잼을 곁들여 먹게 되는 영국식 스콘은 달큰한 미국식 스콘보다는 좀더 담백한 맛이라고 한다. 라즈베리나 초콜릿, 시나몬 등 다양한 재료가 가미되는 것은 미국식 스콘의 특징 중 하나이다.
(왼쪽) 미국식 스콘. 삼각형에 슈가글레이즈가 뿌려져 있다. (오른쪽) 영국식 스콘. 둥근 형태이다.
-사진출처: www.thewhistlingkettle.com
왜 북아메리카에서 영국과 확연히 다른 비스킷이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위키피디아에서 한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둘다 시초는 이동저장식인 거대한 비스킷(hardtack이나 ship's bisctuit이라고도 불림)이었고, 이것이 발전하여 영국에서는 과자류의 비스킷과 도톰한 빵류의 비스킷이 지역별로 공존하였다는 것(빵류의 비스킷은 주로 스코틀랜드 지역).
미국으로 온 초기 이주민은 각박한 삶의 환경 속에서 자연히 사치 기호품에 속하는 과자류의 비스킷은 잊고, 포만감이 높고 실용적인 퀵브레드 비스킷을 주로 먹게 되었다. 영국에서 도톰한 비스킷이 티타임 문화를 대표하는 스콘과 과자류 비스킷에 밀려 설 자리를 잃는 동안, 미국인들은 만들기 간편하고 그레이비와 곁들이면 든든한 한끼가 되는 미국식 비스킷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언어의 혼동을 막기 위해 과자류를 지칭할 때에는 '비스킷'이라는 단어를 지양하고 '쿠키'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인과 미국인들이 이 '비스킷'의 정체를 두고 논쟁을 하는 것이 재미있다. 'British People Try Biscuits And Gravy' 등의 동영상의 댓글에서 양국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British People Try Biscuits And Gravy ㅣ Buzzfeed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qIvQs1F3i2U
비스킷에 대한 열띤 논쟁은 미국인과 영국인들에게 넘기고, 나는 이 세상에 다양한 형태의 비스킷이 존재한다는 점에 감사하려 한다.
영국식 비스킷과 미국식 비스킷 중 어느것을 더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미국식 비스킷을 선택하려 한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살던 시절의 추억이 덧씌워진 비스킷이기 때문이다. 물론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비스킷의 버터향과 포슬포슬 무너지는(flaky)한 식감을 사랑하기도 하고.
며칠 전 홈플러스에서 이미 한국에서 유명해진 비스킷 믹스인 'Bisquick'을 사서 오븐에 구웠다. 만들기도 정말 간편하다. 포장지 뒷면의 설명서에 적힌 대로, 물을 섞어 대충 반죽하고 오븐에 넣어 구우면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든 나의 비스킷.
겉면은 바삭하지만 속은 포슬포슬하다.
'비스킷에는 그레이비가 빠질 수 없지!' 하면서도 제대로 만들기는 귀찮아서 밀가루와 버터를 이용한 루에 우유를 섞어 화이트 소스를 만들었다. 짭조롬한 그레이비 특유의 감칠맛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갓 구운 비스킷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
추억이 담긴 음식은 항상 더 맛있는 법.
당신은 어떤 종류의 비스킷을 좋아하시나요?
Bon Appet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