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다양한 부추 요리 2
사실 내가 만들어본 부추 요리는 기껏해야 '부추전' 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것도 거의 10년 전의 일로, 학과에서 여는 장터의 메뉴로 어설픈 부추전을 구워 팔았던 허접한 경험이었다.
대학교 학과나 동아리 장터음식은 예나 지금이나 위생적으로 열악하고 재료가 부실하며 맛과 모양이 어설픈 것으로 알고 있다. 기부 등의 좋은 취지로 운영되는 장터도 많았지만 그 당시 내가 참여했던 장터는 부족한 학과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윤을 많이 남길수록 주최 측에 좋은 일이었기에, 당연히 가격에 비해 하등의 요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부추전을 만든다 치면 오징어도, 하다못해 홍고추 고명도 없이 부침가루 반죽에 부추를 듬성듬성 올린 부추 밀가루떡을 내놓기 일쑤였다.
그래서 당시 캠퍼스에 돌았던 루머 중 하나가 바로 '잔디 부추전'에 관한 것이었다. 장터를 진행 중이던 어떤 동아리에서 부추전의 주재료인 부추가 떨어지자, 주변에 널린 잔디를 뽑아 부추전을 계속 만들어 팔았다는 흉흉하고 믿기 힘든 소문이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루머를 말도 안 된다며 넘겼지만, 앳된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캠퍼스 장터의 요리들이 제대로 된 요리가 아닌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바였다. 단지 만드는 친구나 과에 대한 의리로, 또는 좋은 날씨에 야외에 모여 앉아 허접하나마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기 위한 핑계로 3천 원, 4천 원을 모아서, 바빠서 정신없는 총무에게서 허접한 요리 티켓을 구매했을 뿐.
나를 포함해 요리에 대한 경험이 없다시피 한 동기들은 쏟아지는 주문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맡은 요리는 부추전이었는데, 다행히 두세 장을 굽다 보니 어느 정도 요령을 가까스로 체득했다. 그러던 와중 급하게 서울 출신의 여자 동기가 내 파트너의 대타로 조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녀는 대뜸 프라이팬에 식용유 한 컵 정도를 들이붓고 "기름은 이 정도면 돼?"라고 순진한 표정으로 물어 모두를 경악하게 하였다. 웬만한 것은 터지고 설익어도 정신없이 손님에게 내놓았던 상황이었지만, 그녀의 첫 부추전은 모두의 동의하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부추 한 단이 재미있는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제 요리에 대해 고민할 차례이다.
이 생소한 요리명을 번역하면 '부추가 들어간 두부 국'이 된다.
베트남 요리에서 'Cahn'으로 시작하는 요리는 무조건 수프(국) 요리를 의미한다고 하니 이 점은 이번에 확실히 배웠다. ' hẹ'는 부추(chives)를 의미하며, 'đậu'는 기름(oil)을 의미한다고 검색되는데 이 요리명에서도 그 뜻으로 사용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요리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재료가 별로 없고 만들기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토요일의 늦은 아침식사로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었다. 전날 저녁 산책을 나간 길에 집 앞 대형마트에서 30% 할인하는 돼지고기를 한 팩 샀더니 그것으로 재료 준비는 끝이었다.
-부드러운 찌개용 두부 1 모
-부추 1/4 단
-돼지고기 200g : 돼지고기는 안심이나 앞다리처럼 기름이 적은 부위를 사용한다. 되도록이면 잡채용으로 손질된 것을 사자. 직접 돼지고기를 한 조각 한 조각 자르다가 조리시간의 절반은 쓴 것 같다.
-샬럿(작은 양파처럼 생긴 채소) 2개 또는 양파 반 개
-닭 육수 2컵 또는 생수 2컵과 치킨스톡 1 큐브
1. 돼지고기는 잡채용 고기처럼 가늘게 자르고 양파(또는 샬럿)를 잘게 썬다.
2. 식물성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다진 양파를 튀기듯이 익힌다. 양파 향이 나는 기름을 만드는 것이다.
3. (2)의 양파와 기름을 손질한 돼지고기 위에 얹어서 잘 섞는다. 후추와 소금을 듬뿍 뿌리고 30분 정도 마리네이드 한다.
이 레시피에서 상당히 독특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실온 상태의 재료를 섞어 고기를 마리네이드 하는 방식은 알고 있었지만 뜨거운 향유를 섞어 마리네이드 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고기가 익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몇 군데 표면만 살짝 익었을 뿐이었다.
베트남 요리에서는 고기를 뜨거운 기름으로 마리네이드 하는 방식이 상당히 많이 쓰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 어머니가 고기를 준비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네요!"나 "저도 뜨거운 기름을 섞어 마리네이드 하는 것을 좋아해요" 따위의 레시피 영상 댓글에서 이를 추측할 수 있었다.
4. 두부는 한 입 크기로 썰고,
부추는 3 cm 길이로 자른다.
5. 치킨스톡 큐브를 넣어 끓인 물에 (3)의 돼지고기와 양파를 넣고 고기가 익을 때까지 중 불에서 끓인다.
거품이 기름과 섞여 상당히 많이 올라오는데, 이 거품을 잘 걷어낼수록 맑고 깔끔한 국물을 얻을 수 있다. 양파가 물 위에 뜨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양파를 상당이 많이 건져 올리게 되어 아쉬웠다.
6. 돼지고기가 얼추 다 익었을 때 두부를 넣고 살짝 끓인다.
7. 두부가 익으면 부추를 넣고 몇 초간 끓이다가 바로 불을 끈다. 소금과 후추를 조절하여 최종 간을 본다.
완성!
Canh đậu hủ hẹ(깐 다우 후 헤).
이름은 길고 생소하지만 생김새는 한국식 국 요리라고 해도 모르고 넘어갈 정도로 친숙하다.
다만, 한국식 맑은 국에는 주로 소고기가 들어가는 반면 이 요리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간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더욱 큰 차이는 맛의 차이. 한국의 국 요리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치킨스톡이 들어가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치킨 누들 수프의 국물 맛과 제사에 오르는 탕국의 두부, 부추가 듬뿍 들어간 재첩국이 동시에 떠오르는 맛과 생김새이다.
거품을 잘 건져낸 덕택인지 국물이 참 맑다. 돼지고기 냄새가 날 법도 한데 마리네이드의 힘인지 부추의 힘인지, 치킨스탁이 향을 가려버려서인지 몰라도 고기 맛이 참 깨끗하다.
베트남 요리라고 하면 쌀국수와 월남쌈, 반미 샌드위치 정도밖에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이 요리는 워낙에 가정식 요리인지라 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간단하고 쉽게 집에서 베트남 요리를 맛볼 수 있다니, 이 나라의 레시피도 유심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 같다.
지난번 일본식 죽, 조우시를 만들 때도 느낀 점이지만 부추의 힘은 대단하다. 향을 돋우고 비린내를 잡고 색감까지 잡아주는 부추의 다재다능함을 몸소 체험했다.
부추 한 단으로 세계 요리, 부추 한 단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Bon Appet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