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다양한 부추 요리 1
부추 한 단을 샀다.
겨우내 부추요리를 해먹으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부추 가격은 도통 내리지를 않아 항상 3천원을 넘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좀더 싼 가격에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장을 볼 때마다 부추를 눈여겨 보면서도 사지는 않았다.
그러던 며칠 전! 드디어 마음에 쏙 드는 부추를 발견했다. 우연히 어느 동네 슈퍼에서 부추 한 단이 1500원 하는 것을 본 것! 대뜸 부추 한 단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튜브에서 부추로 할 수 있는 요리를 폭풍 검색했다. 검색어는 'chive recipe'.
부추의 정확한 영어 명칭은 'garlic chive'이다. 중국과 한국, 일본, 베트남 등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는 주로 요리용으로 쓰이지만, 북미나 유럽에서는 잎과 꽃이 발달한 아종을 관상용으로 기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잡초로 분류된다고.
동아시아 지역의 부추에 대한 사랑은 각별한 구석이 있다. 일단 한중일 모두 만두(중국식으로는 교자)의 속재료로 부추를 애용한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각종 전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부추전 또한 즐겨 먹으며, 중국에도 부추를 넣은 전의 일종인 jiucai bing (韭菜饼)을 만들어 먹는다.
일본에서 부추는 '니라(nira, 韮)'라고 불리며 특유의 향과 달큰한 맛을 살려 국이나 샐러드에 사용된다.
맵고 시원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 때문인지 부추 요리를 검색하면 한국 요리가 높은 빈도로 검색된다. 부추전, 부추김치 등의 요리에서 주재료로 사용될 뿐 아니라 돼지국밥, 감자탕 등의 국물요리에 고명으로 듬뿍 넣어 잡내를 없애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부추는 태국과 네팔,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요리재료로 활용된다. 태국에는 부추에 타피오카 전분을 섞어서 찐 떡 같은 요리가 있고, 베트남에서는 국물 요리에 자주 활용된다.
오늘 만들 요리는 일본식 죽인 '조스이'이다. 유튜브에 'chive recipe'를 검색하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널 중 하나인 'cooking with dog'의 '부추 달걀 조스이'레시피가 바로 떠올랐던 것이다.
'조스이'(ぞうすい , 雑炊잡취)는 일본식 죽의 한 종류이다. '조스이'는 '잡'다하게 섭'취'하는 것(雑炊잡취)을 의미하며, 어찌보면 한국의 꿀꿀이죽과 일맥상통하는 요리이다.
주로 익힌 밥을 간장이나 다시마, 된장으로 간을 한 국물에 넣어서 끓여 만들며, 밥 외에도 고기, 해산물, 버섯, 야채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요리한다. 한국의 죽과 마찬가지로 주로 아플 때 먹는 회복식의 역할을 하며 주로 겨울에 먹는 요리이다.
남는 나베육수를 조스이 국물로 재활용하기도 하며, 최근에는 밥 대신 우동과 같은 국수를 넣어 먹는 것이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조스이의 유래는 우리 나라 죽요리의 유래와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오늘날과는 달리 한번 지은 밥을 뜨뜻하게 유지하기 어려웠던 사정상, 밥을 다시 따뜻하게 먹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뜨거운 국물에 말아먹는 것이었다. 밥을 데우기가 간편해진 요즘에 와서는 감기에 걸렸을 때나 추운 겨울에 먹는 요리가 되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구글에 zosui를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들. -사진출처: (좌)wazen.com/(우)livejapan.com
재료.
-다시육수 300ml
-간장 1/2 티스푼
-소금 1/4 티스푼
-찬밥 120g
-당근 약간
-표고버섯 약간
-부추 1/5~1/4 단 정도
-달걀 한 알
1. 다시물을 준비한다.
사실 한식이나 일식을 잘 해보지 않아서 다시물을 우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미지근한 물에 오래 두는 것이 좋다는데 급하게 준비하느라 따뜻한 물에 담그어 두고 다른 재료를 준비하면서 기다렸다.
2. 당근과 버섯을 채썰고, 부추를 1~2cm 크기로 썬다. 뿌리쪽에 가까울 수록 다지듯이 작게 썬다.
3. 찬밥을 채에 올려 흐르는 물에 헹군다.
찬밥을 그대로 국에 넣으면 전분이 우러나와 국물히 탁해지게 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흐르는 물에 밥알을 씻어 표면의 전분을 제거하는 것.
한국식 죽 만들기와 차별화되는 부분으로 이 레시피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기도 하다.
4. 다시마를 건져내고 간장, 소금으로 국물에 간을 한다. 입맛에 맞게 간을 조절하는데, 기호에 따라 간장과 소금의 양을 조절한다.
5. 씻어낸 쌀을 넣는다.
6. 채썬 당근과 버섯을 그 위에 넣는다. 당근이 익을 때까지 끓인다.
7. 당근이 익었을 때 잘게 썬 부추를 넣는다.
8. 부추가 익기 전에 재빨리 달걀을 풀어 넣는다. 달걀을 조금씩 돌려가며 뿌리고, 살짝 익어서 모양이 잡힐 때까지 휘젓지 않아야 깔끔한 국물을 유지할 수 있다.
9. 달걀이 다 익으면 불을 끈다.
정말 간단하게 일본식 죽, 부추 달걀 죠스이 완성!
밥알을 씻어낸 것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국물이 탁하지 않고 점성도 거의 없어서 죽의 형태이지만 맑은 국을 먹는 느낌이다.
밥알은 뭉치지 않고 숟가락으로 휘저으면 동실동실 떠오르는데, 밥이 주가 되는 죽과는 달리 국의 재료 중 하나로서 밥이 들어있다는 인상을 준다.
육수랄 것도 없는 간단한 국물인데 깨끗하고 가볍지만 단조롭지는 않다. 다시마의 옅은 감칠맛 바탕에 당근의 단맛, 버섯향, 부추향이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일본의 어느 시골 게스트하우스에 가면, 영어가 통하지 않아 미소로만 화답하는 주인 할머니가 아침식사로 내놓을 것 같은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