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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Oct 27. 2016

바르셀로나의 기쁨, 시체스

바르셀로나에서 40분, 파스텔톤의 해변마을

바르셀로나에 가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이렇게 말하면 바르셀로나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에서 아비뇽으로 넘어가야 하는 이번 여행의 일정에서 바르셀로나를 빼는 것도 고려해볼 정도로 이번 여행 전 나는 바르셀로나에 대해 시크한 태도를 유지했었다. 지난 유럽여행때 4박5일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며 몬세라트만 빼고 웬만한 것은 다 봤다고 느꼈고, 대도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와 데면데면한 사이인 느낌이었다. 시체스와 타라고나의 존재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블로그를 통해 바르셀로나에 가서 바르셀로나 시내 외에 볼 것이 무엇이 있을 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시체스Sitges'라는 지명을 알게 되었다. 바로 구글에서 Sitges 해변의 사진을 검색해보고 사랑에 빠졌다. 시체스를 가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간다.




이제 어떻게 가느냐가 문제인데, '몬.타.시 투어'라고 해서 몬세라트-타라고나-시체스를 엮어 하루 안에 볼 수 있는 현지 여행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알았다. 세 군데를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시도해 보려했으나  우리의 계획과 요일이 맞지 않았다. 그럼 우리끼리 기차를 타고 가면 된다. 몬세라트를 못가게 된 것이 아쉽긴 해도, 바르셀로나에 두 번을 가게 됐는데 세 번을 못가겠나 싶어서 가볍게 마음을 접는다.


바르셀로나 산츠역에서 기차를 타고 시체스를 먼저 갔다가 타라고나를 들렀다 바르셀로나에 돌아오기로 했다. 바르셀로나 도착예정시간은 저녁 6시. 출발은 언제나처럼 최대한 빠르게이다.(그러면 대부분 9시 반쯤 숙소를 나오게 된다) 바르셀로나-시체스 간 약 40분, 시체스-타라고나 간 약 40분, 타라고나-바르셀로나 간에 50분 정도가 걸린다. 구글맵을 이용하여 탑승시간을 계획해 본다.




시체스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참 유쾌한 일이 있었다.


바르셀로나 산츠역에서 시체스로 가는 기차를 타려는데 기차가 하도 많아서 이놈이 맞는가 싶었다. 백금발에 휴양객 복장의 미국인처럼 생긴 남자가 바로 이 기차이니 얼른 타라고 손짓을 한다. 우리를 기차 안으로 먼저 올려 보내고 나서야 자신도 기차에 몸을 싣는다. 마침 빈 자리도 많지 않아 백금발의 남자는 5~6명이 서로 마주 보고 가는 좌석 중 우리 맞은편의 오른쪽 자리에 않았다.


내 앞쪽에는 보따리 가방을 한 가득 발치에 둔 백발의 할머니가 창가에 앉아 있었고, 할머니의 왼쪽이자 내 친구의 맞은 편에는 큰 눈이 인형 같은 4~5살께의 단발머리 아이가 앉았다. 아이 옆에는 아이의 엄마가, 그 옆에는 아까 우리를 도와준 남자가 앉았다.


어색함을 깬 것은 단발머리 아가였다. 갑자기 자신의 배낭에서 주섬주섬 인형들을 꺼내놓더니, 창가 자리에 있는 할머니에게 부탁해 그것들을 창 옆에 늘어놓아 달라고 부탁한다. 무표정이었던 할머니가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가 내미는 작은 플라스틱 장난감들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창가에 올려놓기 시작한다. 마주보고 있는 모두가 그 광경을 웃으며 바라본다.


도라에몽 가방 같이 끝이 없이 장난감이 나올 것 같았는데, 어느덧 모든 인형이 다 나왔나 보다. 아이는 이제 할머니에게 인형을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할머니는 다시 조심스럽게 인형을 집어 아이에게 건내준다.


그런 가운데 아이가 호랑이 장난감을 들고 팔을 뻗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Tiger~"


바로 알아들었다. 우리도 대답했다.


"Tiger~"


아이가 이번에는 드래곤 길들이기의 용 장난감을 집어든다.


"Dragon~"


우리는 이 작은 스페인어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단어들을 열심히 따라 외쳤다. 수업을 끝내자 마자 선생님은 칭얼거리며 뒷자석의 아빠를 찾았고, 아쉬운 우리를 남겨두고 아빠가 앉은 좌석으로 넘어가 버렸다.


아이 가족은 다음 역에서 다 내려버리고 이제는 나와 내 친구, 할머니, 백금발의 남자만 남았다. 용기를 내어, 할머니에게 짧은 스페인어로,  "Habla ingles?(영어 하시나요?)" 하니 할머니가 고개를 휘휘 젓는다. 백금발의 사내도 대충은 알아듣는데 생각보다는 영어로 말하는 게 영  불편한 눈치.


그러나 일단 말문을 튼 이상 멈출 수 없다. 5년 전 딱 한 학기들은 스페인어 수업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부서진 스페인어로 띄엄띄엄 말을 걸었다. 손가락으로 장바구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Que es este?(what is this?)" 할머니가 내가 마치 스페인 사람이라도 되는 양 엄청 빠른 스페인어로 대답하는데, "comida(food)" "visitar(visit)" "mi hija(my daughter)" "Tarragona" 만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확인해 본다. "Tu hija en Tarragona?(Your daughter in Tarragona)?


내 대답에 할머니 수다의 빗장이  풀렸다. 뭐라뭐라 그러는데 하나도 못알아 듣고 백금발의 남자를 바라보자 그도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간신히 딸은 타라고나, 아들은 마드리드에 있어 오가기가 무척 힘들다 정도만 알아들었다. 나도 무언가 답하고 싶다. 엄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는 단어를 쥐어짜본다.


"Mi madre..vivir...en otra ciudad...quatro ahoras de mi casa...quatro horas. Siempre visitar mi madre, mi madre para mi mucho comida me gusto"

(My mother live in other city..4 hours from my house. All the time visit my mather, my mother for me much food I like)


그녀의 눈빛이 살짝 바뀐다.

뭔가 물어보는데 왜 엄마와 떨어져 사는 지 묻는 것 같다. 다시 머릿속을 쥐어 짜내 본다.


"Mi voy a Seul para estudiar. Mi familia vivir en sul de Corea. Seul 4 horas de mi familia. Pero Mi no es estudiante. Mi ahora trabajar en Seul."

(My go to Seoul for study. My family live in south of Korea. Seoul 4 hours from my family. But my am not student. My now work at Seoul)


순 엉터리 스페인어이다. 할머니가 따뜻한 표정을 짓는다.


기차가 시체스에 서고, 타라고나에서 내리는 할머니보다 우리가 먼저 내리게 되었다. 할머니가 작별인사를 하며 장난스럽게 우리에게 자신이 75살이라고 말하며 눈을 찡긋한다. 절대 그 정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muy bonita!하고 외친다.


금발의 남자는 시체스역에 내려서도 우리를 챙겨주려 한다.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우리 옆으로 다가와 해변의 방향을 알려준다. 자신은 한 달 간 break를 갖게 되어 여행을 하고 있다고 뒤늦은 자기소개를 한다. 서로 좋은 여행하라는 인사를 하며 셀카 하나를 남기고 헤어졌다.


시체스 여행 시작이다.





남자가 알려준 방향을 따라 역 출구에서 나온 걸음 그대로 직진하니 각종 식당과 상점이 즐비한 번화가가 나온다. 티셔츠 위로 뒷목에 묶은 비키니 끈이 보이는 여성이 많은 것을 고니, 보통 소도시 같지는 않고 여러 곳에서부터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 휴양지 같은 분위기이다.


요런 엽서 같은 타일이 붙어 있는 벽을 만났다.




특히 이 타일이 예쁘다.




여름 지중해의 햇살을 받아 빛나는 거리





완만하게 내려가는 골목을 걷다 보면 골목 사이로 푸른 지중해가 보인다.



탁 트인 해변에 다다라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 예뻐서 화가 날 지경이다. 이 사람들은 예뻐 보이려고 작정하고 바닷가 옆에 성당을 짓고, 건물을 파스텔 색으로 칠한 건가?



우리가 나온 곳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선박장과 해수욕장이 있었고 왼쪽에는 성당과 성당으로 이르는 계단이 있다. 성당 쪽으로 먼저 가보기로 했다.









성당을 지나치면 골목길이 나온다.



골목길을 나서면 엄청나게 예쁜 골목이 또 나오고
또 다른 해변이 나온다. 반대쪽의 해변보다는 더 자유롭고 편한 분위기.



멍하니 해변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상의를 탈의한 여성들이 많이 보여서이다. 썬글래스를 쓰고와서 다행이다 싶었다.




해변으로 내려와서 뒤를 돌면 마치 인스타그램 사진 같은 색감의 건물.


아무 골목이나 들어가도 예쁜 것은 마찬가지.




이곳은 웨딩촬영지로 적격이겠다.


친구와 이런 곳에서 결혼하면 정말 좋겠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우리 나이가 호들갑만 떨 나이는 아니다 싶어 조금 풀이 죽었다.


성당 오른편 선착장.



시체스까지의 기차여행과 시체스에서 보낸 시간이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스페인어를 조금이라도 배워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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