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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Oct 27. 2016

니스 에어비앤비에서의 요리

모노프리 식재료 쇼핑과 20유로의 풀코스와 아티초크의 기억


온갖 그릇을 사 모아서 20kg에 육박하게 된 캐리어를 이끌고 아비뇽에서 기차를 타고 니스의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니스 해변보다는 니스역 근처에 있었는데, 기차역과 공항으로 가는 버스와의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었다. 사실 생폴드방스나 모나코에 가는 버스가 기차역보다는 해변 가까이에 있어 트램을 몇 번 타야 해서 약간의 불편은 있었다. 그래도 멀미에 시달리면서(역방향 기차에서 전날 산 도넛(베니에)를 먹다가 그 기름기에 멀미가 나버렸다!) 20kg짜리 캐리어를 끌며 숙소에 도착했을 때의 쾌감 덕에 아직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숙소는 마치 한국의 오피스텔과 똑같은 아담한 평수의 아파트로, 사이즈는 작아도 깔끔한 부엌과(드디어 요리할 마음이 생기는 깔끔한 부엌을 만났다!) 테이블이 있는 테라스, 작은 식탁과 DVD까지 갖추어져 있는 똘똘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보라색과 연두색 베이스의 귀여운 인테리어가 마음에 쏙 들었다.






베란다의 귀여운 테라스.



작지만 깔끔하고 있을 것이 다 갖추어진 주방을 본 순간, 나는 강렬한 인연을 느꼈다.


나는 장을 볼 것이다. 나는 요리를 할 것이다. 나는 최소 두 번을 요리를 할 것이다.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캡슐머신 등 오븐 빼고는 다 있다.




주방이 작아도 깔끔하고 접시와 기본적인 조미료가 갖추어져 있다.








니스를 여기저기 헤치고 다니던 나와 내 친구는 저녁 무렵 트램을 타고 해변으로 갈 때 보았던 큰 길 가의 모노프리MONOPRIX를 떠올린다. 아비뇽의 모노프리가 잡화 및 화장품 위주였다면, 이곳의 모노프리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식품매장이 갖추어져 있다. 왠만한 사이즈의 이마트나 홈플러스 매장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신이 나서 카트를 끌고 달리다시피 하며 마트 곳곳 구경에 나섰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채소 코너!

제이미 올리버의 키친이나 요리책 등에서 들어보아 이름과 모양은 낯익지만 한국 마트에서는 보기 어려웠기에 나를 흥분케 하는 채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큰 아티초크, 작은 아티초크, 엔다이브, 순무, 리크(leek), 그린빈 등등등.


무엇을 요리해볼까 두근두근 고르다가 한국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아티초크를 하나 집어들고 그린빈과 레드어니언도 곁들여 샀다. 그린빈은 한국에서 한 줌에 2천원쯤 하는데, 여기서는 두 줌 가득 500원도 안된다! 내 친구는 나의 이런 호들갑을 지켜보아 주었다.


아티초크. 차마 손에 집기도 겁이나는, 이게 먹는 건가 싶은 요상한 모양새.




엔다이브. 저것도 이제는 비싸긴 해도 한국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 아티초크에 집중해야하므로 패스.




사실 리크인지 다른 것인지 헷갈린다. 확실히 대파랑은 다르다. 옆에 당근이 한국과는 다르게 잎싸귀까지 통쨰로 진열되어 있는 것이 이색적이고 예뻐 보인다.





요즘 비싼 레스토랑에 가면 얇게 썰어 샐러드 데코를 하는 순무와 싱싱해 보이는 그린빈.




즉석 델리와 베이커리 코너도(프랑스이니까 당연히) 발달있다. 눈이 이리저리 뿅뿅 돌아간다.

뭔가 좀 익숙한 프랑스 디저트가 있으면 괜시레 반가워서 친구에게 아는 체를 했다. 이건 파리 브레스트고, 이건 레몬머랭타르트야!



파리-브레스트는 처음으로 프렌치 레스토랑에 갔을 때 시도해보려다 만 디져트이기 때문에 바로 알아보았다. 친구를 설득해서 하나 사서 디저트로 먹었다. 은근 땅콩버터 맛이 났다!





왼쪽부터 레몬머랭 타르트, 슈, 에클레어



친구는 레몬머랭 타르트에 꽂혔다. 욕심을 부려 그것도 사 본다. 암암, 다 먹을 수 있겠지.





스페인에서 먹었던 플란도 판다. 그런데 마드리드 식당에서 먹었던 녀석과는 꽤 다른 모양새이다. 계란찜과 치즈케이크 중간쯤으로 생겼다.





아몬드 타르트. 가격도 요즘 창렬창렬한 한국 디저트 물가에 비하면 무척 싸다! 한 조각에 2유로 정도.







예전에 프랑스 친구에게서 얻어먹은 끼쉬 기억이 나서 키쉬로렝에도 앞에 서서 친구에게 진득한 눈빛을 보냈지만 친구는 그 눈빛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미 먹을 것을 많이 사긴 했다. 그래, 키쉬로렌은 요즘 한국에도  파는 곳이 많으니까!



이 거대한 사이즈의 빵 혹은 케이크를 아비뇽에서부터 여러번 봤었다. 참 맛있어보이는데... 2명짜리 일행으로서는 처치곤란이라 포기했다.




와인 코너가 한국 이마트의 음료코너를 모두 합친 것 같은 사이즈이고 특히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로즈와인 종류가 많다.


요것은 로즈와인만 모아서 통로에 내어둔 특별 매대. 티가 안나지만 사이즈가 어마어마하다.



기념품으로 살 만한 차와 과자, 잼 종류도 많아서 허기진 상태에 다 보기가 벅찰 정도였다.



첫날의 쇼핑 리스트


- 스테이크용 안심 두 조각 : 원래 6유로(한국에서는 싼 것도 1만 5천원은 하는데!) 저녁 세일가는 4유로!!

- 샬럿 대여섯 알: 마늘과 양파의 중간쯤 되는 채소로 내가 산 것은 양파보다 단맛도 매운맛도 더 강했다

- 당근 다섯 뿌리: 스테이크 가니쉬용으로 버터에 살짝 볶았다.

- 라비올리 한 봉지: 델리코너에서 직접 만든 것은 비싸고 냉장고에 있는 것이 더 싸다. 내가 산 건 시금치치즈 라비올리.

냉장고 것이 너무 싸서 (2유로 정도)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샀는데, 기왕이면 더 좋은 것을 먹을 걸 그랬다.

- 토마토 소스 한 병: 라비올리에 간단하게 곁들여 내기 위해 병에 든 제품으로 샀다.

- 인스턴트 크림 야채호박스프 한 팩: 사각 종이팩에 든 쥬스형태. 이것은 간단하게 아침식사에 곁들이려고 샀다.



이렇게 모두 해서, 한끼 저녁&다음날 아침으로(두 명분) 20유로도 들지 않았다.



첫날 저녁의 식사. 스테이크와 라비올리.


첫날 저녁의 레시피


고기 굽는 것, 라비올리기 만들기 다 간단하다. 이 날은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였으므로 일부러 쉽게쉽게.


[안심 스테이크]

1. 상온 상태의 안심을 올리브유와 허브, 소금, 후추를 발라 토닥토닥해준다.

2. 팬에 올리브유를 넣고 뜨겁게 달군다.

3. 스테이크를 굽는다.

4. 스테이크가 목표치의 60% 정도 익은 것 같으면 버터를 던져 넣어 향을 돋군다.

5. 양파(이번에는 샬럿), 당근을 함께 익히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토마토 소스 라비올리]

1. 올리브유에 잘게 썬 양파를 좀 볶다가 토마토 소스를 끼얹어 소스를 만든다.

(사실 인스턴트라 '소스를 데운다'에 가까운 듯하다)

2. 끓는 물에 라비올리를 포장지에 적힌 시간보다 짧게 익힌다.

3. 1의 토마토소스에 2의 라비올리를 넣고 1~2분 정도만 더 익힌다.



나름 제이미 올리브의 유튜브 동영상 등을 보고 스테이크 굽기 스킬을 몇 번이고 연습한 만큼 스테이크 굽기에 자신이 있었는데, 첫날은 부엌의 불 세기에 익숙하지 않아 너무 익혀버렸다. 나는 미디움레어를 좋아하는데 아차차하는 사이에 웰던까지 가 버린 것이다. 그래도 요리까지 하느라 배가 너무 고파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의 아침식사. 바게트와 호박스프와 라비올리.



아침은

집앞 빵집에서 산 바게트와

스페인의 호텔 조식에서 살짝한 버터,

전자렌지로 데운 인스턴트 호박야채스프,

어제 먹다 남긴 라비올리.






둘째날의 쇼핑 리스트


- 스테이크용 안심 한 조각 : 어제 샀던 그 안심 오늘도 샀다.

- 델리코너에서 파는 닭다리 두 조각 : 친구는 안심 말고 다른 걸 먹어보고 싶다 했다.

- 레드 어니언 두 개: 한국에서도 많이 먹어 익숙한 것. 흰 양파보다 달다.

- 그린빈 두 움큼 : 싱싱한 그린빈을 한 움큼 넘게 500원에 샀다. 데친 다음 간을 해서 버터를 섞어 먹을 것이다.

- 뇨끼 한 봉지: 유럽에서 꼭 요리해 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뇨끼. 요즘 한국에도 드물게 라비올리는 파는데 뇨끼는 식당에서도 마트에서도 파는 곳이 잘 없다. 너무너무 먹어보고 싶어서 직접 감자반죽을 해서 만들어 본 적도 있다.

- 바질 페스토 한 병: 왠지 뇨끼에는 바질 페스토가 어울릴 같았다. 한국에서는 한 병에 최소 6천원은 하는데 여기서는 3~4유로쯤 한다.

- 로즈 와인 한 병: 와인 한 병이 한 자리 수 가격이다. 와인은 잘 몰라서 3G를 켜서 한국 블로그에서 추천하는 것 하나 이름도 모르고 사왔다.


그리고,

- 대망의 아티초크 한 송이 : 도전!!




친구가 먹은 닭고기 요리. 그냥 델리에서 파는 것을 데웠다. 입맛에 잘 맞았다.



다 차린 저녁식탁.


둘쨋날 저녁의 레시피


[안심 스테이크]

위의 레시피 반복.

하지만 이번에는 집중하여 최상의 미디움레어 상태로 익히고 만다.

키 포인트는 미디움레어보다 살짝 덜 익은 상태일 때 프라이팬에서 내려 레스팅하는 것.

잔열로 미디움 레어까지 익힌다.


[바질페스토 뇨끼]

1. 끓는 물에 뇨끼를 넣는다. 뇨끼는 뇨끼알이 동동 떠오를 때 까지만 익히면 된다.

2. 뇨끼를 건져내어 아직 뜨거울 때 바질페스토를 넣어 섞는다.


[그린빈]

1. 끓는 물에 그린빈을 삷는다. 대충 부드러워지면 꺼낸다.

2. 뜨거울때 소금 후추 간을 하고 버터와 섞는다.



여행지 요리는 아무래도 단순하게 최고!




완벽한 자태의 스테이크





미디엄 레어. 어제와는 달리 부드럽다.






짭짤 고소한 맛의 바질 페스토 뇨끼. 쫄깃쫄깃하다.



스테이크와 뇨끼 등으로 허기진 배를 빵빵하게 만든 후,

와인 안주 삼아 드디어 아티쵸크 요리에 도전해 본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유튜브 파일을 두어 개 찾아 보았다.


오븐이 없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것은 가장 간단한 찌기!




알고나니 아티초크는 정말로 비효율적인 채소임이 틀림 없었다.

감자와 양파는 얇은 껍질만 한 겹 벗겨내면 되고, 그린빈은 그냥 통째로 삶아 먹으면 되는데,

아티초크는 그 수많은 입싸귀를 벗겨내고 (입싸귀 안쪽에 있는 녹말을 앞니로(!) 갉아먹어도 된다)

아티초크 하트heart 를 덮고 있는 얇은 실 같은 조직을 떼어낸 후에야(이건 먹을 수 없다)

아이 손바닥 만한 녹말덩어리인 아티초크 하트를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아티초크는 이런 모습이다. 사실 이것은 아티초크 하트heart만 다듬어 통조림으로 만든 것!





실제 아티초크는 저렇게 복잡한 형태이다. 실 같은 조직 아래 아티초크 하트를 꺼내어 먹는다.





가시가 있는 잎싸기 맨 윗부분은 잘라내고,




잎싸귀를 하나하나 해체하고, 해체하면서 잎싸귀 안쪽의 전분을 앞니로 긁어 먹어도 되고,





실 같은 조직 아래 아티초크 하트가 있다. 사진은 반쯤 먹다 남은 것.




순전히 내 욕망에 의해 내가 선택한 요리이건만,

손질하고 요리하느라 온갖 수선을 떨고, 없어 보이게  앞니로 이파리를 줄줄 빨다가 지저분 해진 테이블을 보니 함께 먹어준 친구에게 뭔가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아티초크를 요리해본다는 나의 목표는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다.





한편, 아티초크를 먹느라 난리를 떠느라 기껏 사온 레드와인과 디저트(파리 브레스트와 레몬머랭파이)는 잊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9시가 넘었고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꾸역꾸역 먹어본다.



레몬머랭파이보다는 파리브레스트가 맛이 더 좋다. 파리브레스트는 바삭한 슈(살짝 눅눅해져 있었지만) 사이에 땅콩크림 같은 고소한 크림이 샌드되어 있다. 살살 녹는다.



파리 브레스트와 레몬 머랭 파이






디저트에 술까지 마셔 알딸딸한 정신에 친구와 DVD를 보고 자기로 결심한다.

이 집에서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여행지에서 보는 영화가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공감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친구는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나는 친구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비행기에 바로 탈 수 있을 정도로 짐을 다 싸 두었다. 이제 남은 것은 스페인에서 사 온 하몽 프링글스를 와인과 함께 먹으며 침대에 누워 DVD를 보는 것.


그날 우리가 고른 것은 하필이면 충격과 반전의 연속,"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였다.




알 수 없는 외국어에만 둘러싸여 있다가 술 기운에 귀에 익은 미국영어를 들으니 몸이 녹녹해진다.




니스에서의, 유럽여행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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