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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Apr 01. 2017

근대는 먹어야 하지만 근대는 먹기 싫을 때?

자메이카의 근대 요리

제철 식품을 챙겨 먹는다는 것은 사실 별 게 아니다. 내 기준에서는 시장에 갔을 때 제일 많이 싸게 팔리는 재료가 제철 재료이다.


한두 달 전에는 일반 시금치보다 조금 일찍 나오는 섬초 시금치가, 요즘(3월)에는 일반 시금치와 세발 나물, 취나물 같은 나물류가 제철인 듯했다. 적어도 집 주변 시장에서 느낀 인상은 그랬다.


요즘이 근대 철이라는 것 또한 시장에 가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웬만한 매대에는 근대가 가득이고 가격 또한 저렴하기가 그지없다. 팽팽하게 가득 찬 근대 두 봉지가 떨이에 천 원이라는 말을 듣고, 별생각 없이 현금 천 원을 내밀고 근대를 두 봉지나 냉큼 받아왔다.


요즘 정말 싼 근대. 줄기가 흰 것도 있고 붉은 것도 있다. -사진 출처: specialtyproduce.com


문제는, 내가 근대를 잘 알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근대에 대해 무지한 것은 검색을 약간 해보면 해결될 일이었다. 근대의 흐릿한 흙향과 질긴 줄깃대 부분을 싫어하는 것은, 글쎄, 뭔가 좋은 레시피를 찾으면 되지 않으려나?


천 원짜리 근대 두 봉에 세 곽에 오천 원하는 딸기, 당근 한 봉지를 주렁주렁 들고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15분 남짓한 거리의 길, 머릿속은 온통 미지의 세계, 근대 레시피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된장과 궁합이 맞아서 '근대 된장무침', '근대 된장국', '근대 쌈밥' 등의 토속적인 요리의 재료가 되기 때문에 근대를 한반도 고유의 식재료라 생각하기 쉽지만, 근대가 한국땅에 들어온 것은 17세기 정도였다. 근대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이라고. 줄기는 붉은색을 띠기도 하지만 흰색을 띠기도 한다. 빨간 뿌리를 먹는 비트와 잎 위주로 먹는 근대는 워낙 유사해서 친형제 같은 관계라고 한다.


남유럽이 원산지인 관계로 유럽에서도 한국 못지않게 다양한 근대 요리법이 발달했다. 유럽의 근대 요리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미네스트로네 같은 수프 요리나 파스타에 잎을 잘게 썰어 넣어 색과 향을 더하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이탈리안 수프, 미네스트로네에는 근대가 빠지면 섭섭하다. -사진 출처: BBC goodfood


둘째는 오일이나 버터를 두른 팬에 양파, 마늘 등과 함께 볶아서(sauté) 익혀먹는 방법이다. 레몬과의 궁합이 좋은지 팬에 볶은 근대에 레몬 제스트로 향을 더하는 레시피를 많이 보았다. 볶은 근대를 속으로 넣고 파이나 만두 형태의 파스타, 오믈렛을 만들기도 한다.



레몬제스트를 뿌려 살짝 볶은 근대요리. -사진 출처: pbs.com



근대와 치즈로 속을 넣어 만든 카넬로니 파스타. -사진 출처: foodnetwork.com



오늘의 요리는 특이하게도 한국식도, 유럽식도 아닌 자메이카식 근대 요리이다. 이름은 칼랄루(Callaloo). 유튜브에 '근대 레시피(swiss chard recipe)'를 검색하자 바로 상단에 뜬 요리법이었다.


딱 보기에도 건강해보이는 자메이카 요리 칼랄루  -사진 출처: caribbeanpot.com


자메이카 요리 만들기에 도전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지만 자메이카 요리를 먹어본 적은 있었다. 집 근처에 자메이카 스타일의 레게 바가 있어서, 그곳에서 '자메이칸 저크 치킨(Jamaican jerk chicken)'을 두어 번 먹어보았던 것이다. 이태원과 경리단길, 홍대 인근을 중심으로 세계 요리 음식점이 곳곳에 생기면서, 자메이카 음식도 조금씩 서울 지역에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자메이칸 저크치킨이 들어간 치킨버거. 약 8000원 정도의 가격인데 참 실하고 맛있다. 외식을 할 때 자주 가는 곳 중 한 곳이다.



자타공인 자메이칸 저크 치킨의 팬이면서도, 사실 나는 어느 시점까지 자메이카가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라고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내가 접한 자메이카의 이미지(레게 음악이나 밥 말리, 우싸인 볼트 등)는 항상 흑인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도 이런 오해를 한 지구인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웹상에서도 자메이카의 인종 구성에 대한 질문이나 "Is Jamaica an African country?"하는 질문이 자주 반복되는 모양이었다. 이런 오해를 할 만도 하다. 자메이카는 지리적으로 카리브해 지역, 즉 남미에 속해 있으면서도 인구의 92퍼센트는 흑인 조상을 두고 있다.



자메이카는 카리브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고, 쿠바의 남쪽, 멕시코의 동쪽에 위치해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자메이카의 인종 구성에 대한 사연은 이렇다. 자메이카는 쿠바의 남쪽, 멕시코의 동쪽에 위치해있는 섬나라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상륙한 지 2년 만에 알려진 곳이며, 곧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아라왁(Arawak)이나 타이노(Taino) 같은 토착 부족이 있었으나 스페인인들이 가지고 온 구대륙의 전염병에 그 수가 현격하게 줄었다. 이에 스페인 점령자들의 서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들여와 그들의 노동력을 다양한 사업에 활용했다. 오늘의 자메이카인들은 대부분 이 당시 이주한 흑인 노예들의 후손이다.


하지만, 자메이카의 식민지배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한 국가는 스페인이 아니라 영국이다. 1655년에 영국이 스페인으로부터 자메이카를 얻어낸 뒤로, 자메이카는 약 300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자메이카는 196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다만 흑인 노예들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1838년에 완전히 자유인의 지위를 얻었다. 자유를 찾은 흑인들은 노예노동의 상징이었던 플랜테이션을 떠나 소규모의 자영 농장을 일구려 했다. 이에 영국인들은 부족해진 노동력을 확충하고자  노동 계약을 통해 중국인과 인도인들을 자메이카 땅으로  불러들였다. 이들의 후손들이 흑인 인구를 제외한  자메이카 인구(약 8%)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리하여 자메이카는 남미에 속하면서도 아프리카의 리듬과 문화를 이어받은, 그러면서도 백인, 흑인, 아시아인의 문화가 충돌하며 교류하는 독자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집근처의 자메이카 스타일 레게바. 남미와 아프리카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자메이카의 음식 문화 또한 만남과 융합의 반복이다자메이카 원주민만이 살던 땅을 스페인이 먼저 발견하였고,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아프리카와 중국 출신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식문화를 자메이카로 가지고 왔기 때문에 자메이카의 요리에는 남미, 스페인, 영국, 아프리카, 중국 음식 문화 요소들이 혼재하고 있다.


덥고 습한 전형적인 열대기후에 섬으로 된 나라인지라 자메이카 요리에 쓰이는 재료는 플랜틴(요리용으로 쓰이는 바나나의 일종)과 같은 열대과일이나 생선처럼 지역적인 특징을 반영한 것이 많다. 하지만 이후 이주민들이 각지의 식재료를 가지고 와서 이를 널리 퍼뜨렸기 때문에 외래종인 과일 및 채소도 자메이카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게 되었다. 자메이카인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외래종은 바로 빵나무 열매(breadfruit)이다. 빵나무를 자메이카에 들여온 이들은 바로 영국인이다. 이들은 남태평양 및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자생하던 이 열매가 노예들에게 먹일 만한 값싼 식재료로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임을 직감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카리브 해의 식민지에 전파하였다. 바로 구운 것을 먹었을 때, 그 질감은 갓 구운 빵과 비슷하며 맛은 감자와 유사하고 탄수화물이 풍부하다고 한다.


식민지배와 이주의 역사는 요리 재료뿐 아니라 요리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스튜나 빵, 페이스트리 같은 요리 또한 발달하였으며, 요리에 코코넛 밀크를 많이 사용하고 커리 요리가 많은 것은 아무래도 인도계 이주민의 영향이다. 저크치킨 요리로 유명한 매콤한 저크(jerk)소스는 스페인 점령자들에 의해 서아프리카에서 자메이카로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이 가져온 레시피라고 한다. 중국계 이주민의 영향으로 만두 요리도 발달했다.




이번에 만든 '칼랄루(Callaloo)'는 서아프리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요리이다. 주로 칼랄루(아마란스와 유사한 식물)라는 식물의 잎과 줄기를 익혀서 만드는 요리인데, 꼭 칼랄루가 아니더라도 근대나 시금치 같은 잎채소를 쓰는 경우도 많다. 즉, '칼랄루'는 주재료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잎채소를 볶아서 만드는 요리의 요리명이기도 하다.


원래 주재료가 되는 칼랄루는 이렇게 생겼다. -사진 출처: hunker.com



자메이카의 칼랄루 요리는 주로 칼랄루 잎을 사용하며, 소금에 절인 대구나 토마토, 양파 등을 넣어 함께 요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빵나무 열매(breadfruit)이나 플랜틴을 곁들여서 아침식사로 먹는다고 한다. 


튀긴 만두와 빵나무 열매를 구운 것을 곁들인 칼랄루. 이 한 접시에 아프리카와 중국 이주민, 영국에 의한 식민지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진 출처: Pinterest




[참고한 레시피]

자메이칸 칼랄루와 근대 요리 

Jamaican Callaloo And Swiss Chard  ㅣ caribbeanpot

https://www.youtube.com/watch?v=ThvPndRxpYU





재료.


- 코코넛 오일 약간 (없으면 카놀라유, 해바라기씨유 등 식물성 오일로 대체)

- 잘게 썬 마늘 2 톨과 양파나 대파 다진 것 반 컵 정도

- 근대 한 단 (시장에서 파는 일반적인 한 묶음 기준)

- 자메이칸 칼랄루 잎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으므로 생략, 만약 있다면 손질한 칼랄루 6컵, 근대 6컵을 사용하는 것이 원래 레시피)

- 방울토마토나 토마토를 깍둑 썰기한 것 1 컵

- 코코넛 밀크나 요리용 크림 반 컵(코코넛 밀크 파우더 밖에 없어서 파우더와 크림을 섞어서 사용했다)

- 라임즙 1 티스푼 (시중에 판매되는 인스턴트 라임즙 사용 가능)

- 소금, 후추, 칠리 플레이크(고춧가루) 약간



조리법.


1) 근대를 사진처럼 잘게 자른다. 근대 특유의 흙 맛이 싫다면 흰 줄기 부분을 제하고 푸른 잎 위주로 사용하면 된다.


사실 원래 근대를 좋아하지 않는 나의 경우, 근대를 줄기까지 완전히 사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원래 근대는 열에 익으면 특유의 쓴 맛이 많이 사라질뿐더러, 부드러운 코코넛 크림의 맛이 특유의 향을 상쇄해주어 근대 향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2) 코코넛 오일 또는 식물성 오일을 한 큰 술 두른 팬에 마늘과 양파, 또는 대파를 넣고 마늘이 노르스름하게 익을 때까지 볶는다.




3) (2)의 팬에 손질한 근대를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볶는다.



4) 근대가 부드러워지면 소금, 후추, 칠리 플레이크로 간을 하고 코코넛 밀크 또는 요리용 크림을 넣어 끓인다.


원래 레시피에서는 뚜껑을 덮고 끓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나는 크림의 수분감을 조금 날려주고 싶어 뚜껑을 열고 끓였다.



5) (4)를 3~4분 정도 끓이다가 손질한 토마토를 넣고 토마토가 부드럽게 익을 때까지 끓인다.



6) 최종적으로 소금, 후추 간을 하면 자메이칸 칼랄루 요리 완성! 여기에 라임즙을 휘휘 둘러서 섞으면 더더욱 카리브의 이국적인 풍비가 살아나게 된다.




일단은 색이 참 고와서 마음에 든다. 사실 원래 레시피의 결과물을 보면 이렇게 크림 국물이 흥건하지 않은데, 이렇게 된 것은 내가 크림을 좀 많이 부어서 그런 것 같다. 



소스에는 친숙한 맛과 이색적인 맛이 섞여있다. 크림은 고소하고 부드러워서 크림 파스타를 떠올리게 하는데, 새콤한 라임즙의 맛이 있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크림과 토마토, 라임즙의 신맛에 가려서 근대 특유의 흙향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크림이 들어가서 묵직할 것 같아도 재료가 워낙 가벼운 재료이고 라임즙이 새콤한 맛을 잡아주어서 산뜻한 느낌이 든다.



그냥 근대를 간단하지만 새롭게 먹을 궁리로 만들게 된 요리인데, 덕분에 며칠간 자메이카 공부만 실컷 하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것, 공부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자메이카 요리에 더 많이 도전해봐야겠다.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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