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은 분명 있었다.
1월 초부터 바로 어제까지, 두 달간의 시간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방학이 시작될 때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설렘보다는 각오가 앞섰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라는 말이 얼마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인지, 대국민적 리플리증후군에 빠진 명제(?)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따라서 방학 초 세웠던 수많은 계획들은 추억쌓기를 위해서보다 그저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겨울은 추웠고, 돈도 없었다. 내가 부자였다면 추울 때 더운 데서 놀 수 있었을텐데.
아무튼 허황된 계획들은 대부분 실천되지 못했다. 포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날씨가 춥지 않고 지갑이 궁상맞지 않았어도 네 아이의 일정을 맞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아이들은 마지못해 학교생활로 돌아갔고, 거실은 적막하다 못해 공명음이 들린다. 그리고 멀뚱히 서 있는 내 옆엔 아이러니하게도 아쉬움과 후회가 함께 서 있다. 그토록 기다리던 해방의 날이 왔는데 왜 이리도 아쉬운 걸까. 시간 앞에 간사할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라 변론해 본다. 계획이란 건 미래의 나에게 맡기면 될 뿐이니 매우 쉽고,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후회로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유야무야 흘려보낸 시간 동안 아이들이 너무 컸지 싶은 것이다. 난 뭘 한 게 없는데. 해 준 게 없는데. 다음 방학엔 더 커서 이 시간마저도 사라질텐데.
더 나은 방법이 있었다는 것은 항상 뒤늦게 깨닫고 만다. 그 당시엔 충분히 현실적인 계획이었지만, 결국 내 의지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항상 그 의지를 불태울 여력을 빼놓았어야 했다. 가령 엄마를 건드리지 않는 시간을 지정한다던가. 그랬다면, 적어도 모든 아이의 시간을 맞출 수 없다는 이유로 내심 좋아하며 포기를 일삼던 게으름을 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택이라는 것은 본디 불완전한 것. 나의 귀찮음과 나태함조차 그때의 현실 중 하나였음을 부정하진 않으련다. 우리는 언제나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의 계획과 선택을 찾지만, 최선이라는 건 상황과 주관마다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후회는 과거로부터 비롯된 감정이므로 지나온 시간만큼의 경험으로 인해 보다 높은 시각이 생겼을 수 있고, 더 나은 선택도 그제야 보이게 되는 건 아닐까. 퍼즐게임에서 보이지 않던 그림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시점처럼 말이다.
역시 만족스러운 선택은 영원히 없다.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을 쿨하게 잊을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애초에 아무런 계획도, 선택도 하지 않은 삶일 테니 중요한 것은 후회를 줄이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후회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방학이 끝났다는 것은 개학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맺고 끊어짐을 수없이 맞이하지만, 그것이 살아가는 길목 위에서 일어나는 이벤트임을 잊는다. 흩어진 방학계획 따위는 삶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 선택과 그 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음에 올 여름방학 역시 완벽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선택할 것이다. 다만, 쿨하게 잊어도 괜찮을 만큼의 후회만 남길 바란다.
어쨌든
나의 시간이 있다는 건 정말 정말 정말로 행복한 일이다.
아이들에게 해 준 것도 없었으면서 내 시간도 없었다는 것은 냉정하게 되짚어볼 일이지만, 계획대로 살아가는 것이 때론 힘든 것이 네 아이 엄마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