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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Mar 24. 2023

가라앉지 않으려는 백조

매일 아침 막내의 등원시간. 9시 44분.


'왜 아무도 없지.'

평소같은 시간에 등원하는 친구는 5명.


'벌써 차가 지나갔나. 내가 늦진 않았는데.'

불안해하며 멀리 노란 등원차가 보이길 기다렸다. 46분쯤 되니 모퉁이를 돌아나오는 버스가 보였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오늘 왜 안보이지.'

막내를 등원차량에 태우고 버스가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전화기를 쳐다본다.

나오기로 한 친구가 아직 안 나왔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1분 정도 더 정차한 후에 버스 문이 닫혔다. 출발을 알리는 시동소리. 그리고 저 멀리서 뛰어오는 할머니 한 분과 6살 꼬마아이. 같은 시간에 버스를 타은 친구 시은이다.


하이힐을 신고서는 있는 힘껏 내달려서 버스 뒷꽁무니 터치에 성공. 기사님은 금새 알아차리시고 버스를 정차시켰다. 시은이가 무사히 등원차량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이고 할머님께 인사를 하고 출근길에 나섰다. 


다음날 아침, 할머니께서는 주변 어머님들에게 민채엄마 덕에 어제 버스에 태웠다며 다시한번 감사인사를 하신다.

별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는 동안 등원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타서 좌석에 앉는 모습을 확인하고 손인사를 하고 있는데, 시은이 할머니가 뒤에서 한마디 하신다.


"이 엄마가 젤 부지런한 것 같아. 아침마다 화장도 쏵~~하고 옷도 잘 입고 나오고 말이야."


'분명 칭찬의 말씀이신데, 듣는 나는 왜이렇게 무안하지.'

칭찬에 대한 감사의 인사로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인스타에 댓글 하나가 달렸다.


'읽고 글을 쓰는 모습..꿈의 모습입니다. '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을 보던 인친이  남긴 글이다.

답글.'인스타의 모습에 속으시면 안되어요. 실상은 전투입니다^^'대댓글'전투적인 일상도 우아하실 것 같아요.'대댓글 답글'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도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은 편안함 그 자체이다. 백조는 물 위에서 우아하게 떠다니기 위해 물아래서 쉴새없이 발버둥치고 있다.난 백조다. 

답글.

'인스타의 모습에 속으시면 안되어요. 실상은 전투입니다^^'

대댓글

'전투적인 일상도 우아하실 것 같아요.'

대댓글 답글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도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은 편안함 그 자체이다. 

백조는 물 위에서 우아하게 떠다니기 위해 물아래서 쉴새없이 발버둥치고 있다.

난 백조다. 


하루를 관찰해보았다. 

아침 4시 기상.

전투적인 책읽기시작

5시 반~6시 씻고

6시 40분까지 화장과 머리를 하고

7시 부터 큰아이, 둘째아이 밥먹이고 아침공부

8시 30분 등교.

8시 30분 막내 밥먹이고 등원준비

8시 50분 짬시간 이용, 독서 혹은 글쓰기

9시 44분 등원차량태우기

9시 50분~ 전투공부, 글쓰기, 서평, 커뮤니티활동, 서예

1시부터 6시 30분까지 공부방 수업

7시 30분 저녁식사, 막둥이 씻기기

8시 30분 아이들 공부봐주기

10시 짬독서

11시 취침


맘먹고 일주일가량 24시간 관일기를 써보려고 했다. 

그런데, 매일이 매일 같다. 

가끔 일정에 없는 일이 생기기는 하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분 1초를 허투루 쓰지 않고 정말 빡세게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슈퍼우먼이다. 대단하다. 남편이 잘벌어다줘서 편안하게 사는가 보다 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다. 

24시간을 48시간 처럼 써서 시간이 많아서 가능한 일들이다. 

잠기지 않기 위해 물아래서 쉴새없이 발버둥을 치며 사는 격이다. 


김미경 강사님의 최근 작, 마흔 수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바닥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보이는 모습은 꼭대기. 그래서 자기 바닥은 자기만 안다. 비교는 자신만 아는 바닥과 타인이 보여주는 꼭대기와의 대화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 상대도 역시 나와 같다는 것이다. 


나 역시 바닥은 나만 안다. 밑바닥에 닿을 듯 말듯, 힘껏 발버둥을 치며 가라앉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조금이라도 쉬어가면 우아한 백조의 모습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나의 꼭대기가 누군가에게 우아하게 보이는 일상이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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