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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Apr 06. 202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진지함

작정하고 에세이2

제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진지함

지은이 : 밀렵꾼될라.         




 

“아~, 왜 저래.”

여동생의 외마디. 표정은 놀랍지도 않다는 듯.

같이 온 남자친구는 ‘풉’하고 자기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나온 공기 터지는 소리에 놀란 듯한 표정이다.      

집 안으로 들어선 여동생과 그녀의 남자친구가 현관 앞에 앉아 있는 나와 맞닥뜨린 순간 두 사람이 일순간에 내뱉은 소리다.           





“언니, 이번 설에 시댁 갔다가 언제 올라와.”

“글쎄다.. 아마도 다섯 상의 차례 모두 지내고 상물리고 산더미같은 설거지를 혼자 끝내고 성묘를 갔다가 손님을 치르고 형님식구들 오시는 거 보고, 식사를 차리고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어쩌면 설당일이 아닌 다음날이 될지도 모르고. 뭐 그렇게 오겠지. 아마도....”

“.....아...........”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궁금해서.”

“갑좌기? 한번도 안물어 봤잖여. 그동안. 수상한데 뭐야뭐야뭐야뭬야. 뭔데 그려.”

“아니, 그냥..형부랑 그날 일찍 오면 오후에 누굴 좀 데려오려고 했지.”

“설 당일 차례 지내고 바로 올라 올거야. 아주 빨리, 전날에 올까?”

“에? 갑자기”

“어, 그날 빨리 올라 올거야. 갑자기. 근데 누굴 데려오겠다는 건데.”

시댁은 경상북도 영주. 안동권씨집안 장손 며느리가 명절 당일 일찍 올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궁금한 나머지 나오는 대로 뱉어버렸다.

“근데, 누군데. 혹시 결혼 같은 거 할 생각으로....”

“당장은 아닌데,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야.”

“띠로리~~~, (비장한 각오의 목소리, 흡사 사극에서나 들었을 목소리로) 내 그렇게 혼자 살라고 일렀건만...”

“헐...”     


이런 반응을 원했던 건 아닐 것이다. 분명 호들갑을 떨며 축하한다고 해주길 원했을 텐데.

40평생을 혼자 지내다 이번생은 결혼을 못할지도 모른다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하던 동생이다. 갑자기 결혼 상대를 데리고 온다는 말에 나도 놀라고 나의 예상치 못한 답변에 동생도 함께 놀랐다.

일장연설 시작~

“언니 사는 거 봐라. 어때보여.”

“뭐, 그냥 저냥..”

“그냥 저냥이 아니쥐...고되고 혹독하고, 쓸쓸하고 힘겨워보이지 않느냐, 이 말이다.”

“그 정도는 아닌데.”

“아니야. 기분 탓일거야. 자세히 보면 그래. 결혼이 그리 만만치 않아. 결혼이란게 자고로 둘이만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이것봐라. 애 셋에 일도 하지 집안 살림 도맡아 하지, 죽같으,. 아주.”

“누가 하래?”

“그래, 너가 하래서 한 건 아니지, 내 선택이었지. 그래서 말리는 거여. 너도 같이 지옥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결혼은 현실이요. 혹여나 결혼같은 거 하더라고. 아이는 낳지 말고, 둘이서 알콩달콩 살고, 개나 키워.”

“언니는 왜 셋이나 낳았어?”

“그거야 뭐. 어쩌다 보니..”

“본인은 결혼도 하고 애도 셋이나 낳으면서 동생한테 하지 말라는 건, 좀... 앞뒤가 안 맞지 않을까?.”

“..........”          

‘그게 아닌데, 결혼에 대한 나의 진정성이었는데, 가볍게 말해서 가벼이 들렸나.’




최근에 동생을 포함해서 세 사람이나 말렸다.

그 결혼 반댈세.

못 모르고 철없는 나이에 하려는 사람 말고, 모두 생각을 안 하다가 뒤늦게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왜 편하게 혼자 잘 살 수 있는 걸 결혼을 해서 피곤하게 살려고 해요. 혼자 사세요.”

“가진 자의 여유에요. 해보셔서 그런 거 아닐까요?”     

네, 맞습니다. 해봤기 때문에 말린 겁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하는데, 안 하고 후회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엄마는 나중에 원망들을 수도 있으니 그러지 말라고 하신다.

결혼은 반대하면서도 명절날 시댁에 오래 있지 않아도 되는 근사한 이유가 생겨서인지 새벽부터 콧노래가 나온다. 늦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된다.

야호~~~~~~~~~~~~~

막내동생이 신랑감을 데리고 와서 일찍 가봐야 한다고 남편은 집으로 출발하기 2시간 전에 말한다.

이 남자 보소.  

당연히 다음날 갈 거라고 생각했던 어머님은 잠시 당황하신 기색이시다가 이유를 듣고선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라며 어서 가보라신다.

빠른 동작으로  차례음식과 갖가지 채소, 쌀, 참기름을 챙겨주셨다.

결혼 11년 만에 이렇게 일찍 집으로 가본 것은 처음이다.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셨던 그 해에도 다 저녁이 되어서야 친정집을 갈 수 있었다. 져녁 8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했는데 그 시간까지 밥도 안드시고 큰딸과 사위를 기다린 부모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머금고 밥알을 삼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가 혼자일 때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이 심각한 고민거리로 다가올 때이다.      




집에 도착한 나는 손님맞이로 바빴다. 음식준비 같은 건 아니고, 청소하느라. 요리에 젬병인지라 애초에 시켜먹자고 했고, 그래도 처음 오시는 분께 좋은 인상이라도 남기자 싶어 열심히 청소를 했다.

청소가 끝나고 남편은 그래도 고기라도 먹여야 한다며 동네 가장 큰 마트에 다녀왔다. 고기 손질을 하는 것을 보고 이내 방으로 들어갔다.

치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무언가, 재미난 일 없을까?’

45년 평생을 진지함이란 찾아볼 수 없는 나에게 딱 적당히 찾아온 생각이었다.

‘생각났다. 그래. 이거다.’

적당히 결혼 훼방도 놓고 우리집안 사람들은 이렇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

드레스룸 문을 열고 깊숙이 박혀있던 상자하나를 꺼냈다.

결혼식 당일에 입었던 한복.

스드메 패키지가 유행하던 당시, 청담동 어느 고급스런 한복집에 끌려가서 맞춘, 그 돈만 비싼 싸구려 원단 한복.

초록과 핑크가 ‘나 새로운 신부에요.’를 말하는 듯 어우러진,

"이런 색동 한복."


한창 고기 손질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다가갔다.

“허허, 참~~~~너 답다.”

한복을 곱게 입고 서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한마디 한다.

“손님 오시니깐, 갖춰입워야재. 암..그럼..그렇고 말고.”

“진짜 그러고 있을거야? 근데 좀 재밌긴 하다. 크크크킄”

썰고 있던 고깃덩어리와 뚱뚱한 남편의 배가 같이 출렁이며 웃는다.    

       

약속시간에 맞춰 초인종이 울린다.

현관비밀 번호를 알고 있던 막내동생이 예의상 왔다는 걸 알리느라 초인종 한 번을 누른 것이다.

현관문이 열리고, 동생과 동생의 남자친구와의 첫 대면.

한복을 곱게 입고 현과앞에 앉아. (일본어를 전공한 나는) 일본의 쿄도 료칸에서나 봄 직한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 로 인사한다. ‘갑자기 왜 이 말이 나온겨.’     

“왜 저래.”

“풉.”

동시 송출.  


                  

<후일담>

식구와 첫 인사를 나누고 간 남자친구는 동생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결혼하면 큰누님 근처에서 사는게 어떻겠냐고. 신혼집을 그 근처 아파트로 알아보고 다니자고. 같은 아파트면 더 좋고.

“도대체 왜?”

“어, 준이씨가 너무 좋았대. 조용한 가정에서 자라서 집안 사람들이 말수도 적고, 그런 분위기 인데. 우리집 같은 분위기는 처음이래. 같은 동네에서 살면 정말 재밌게 살 수 있겠대.”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물처럼, 공기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진지함이 부른 실패극.

역시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돌아가야겠다.       


                        

인사하러 온 날, 온 집안의 술을 다 끌어다가 쌓아놓고 성대하게 기다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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