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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Apr 05. 2023

삼인행 필유?

작정하고 에세이1

삼인행 필유아사언이라고 했던가?

어디서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게 되면 누구나 스승으로 보인다.      



막내를 등원시키고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부리러 갔다. 책 한 권과 라떼는 아침에 부릴 수 있는 최대의 사치다. 결혼 생활 11년 만에 찾은 호화로운 시간이다. 달달한 라떼에 한 번, 좋아하는 원목테이블과 인테리어에 또 한 번, 현기증이 일 정도로 행복감이 밀려온다.     

 

“유지니님, 돌체라떼 그란데사이즈 나왔습니다. ”

40대의 나이에도 귀여움은 잃고 싶지 않다는 증거가 스타벅스 닉네임이다. 

‘유진. 유지니. 그래 귀여워. 충분히’ 

선물로 받은 쿠폰이 있어 가장 큰 사이즈의 라떼를 받아들어 2층으로 올라갔다. 커피를 가장 큰 사이즈를  1시간 20분 동안 나눠마시기에 적당한 양이다. 

우유성분에 민감한 장을 가진 나는 라떼를 마시고 나면 어김없이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나때당들은 라떼를 마셔야 한다. 평소 믹스커피를 즐겨 마신다. 달달한 맛에 익숙한 입맛에는 그나마 라떼가 채워줄 수 있다. 믹스커피에서 갑자기 아메리카노로 넘어가는 것은 가나초콜릿을 먹다가 카카오 80프로 이상의 다크초코를 먹는 느낌이랄까. 생경하다. 믹스커피에서 아메리카노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에 라떼만한 게 없다. 아메리카노는 왠지 서운하다. 까만물이 그냥 서운하다. 

맛도 서운하고 색도 서운하고.      


2층에 올라서서는 행동은 느릿느릿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가며 최대한 우아한 목돌림으로 자리를 물색한다. 눈동자와 뇌는 쉴새없이 자리들을 스캔을 하며 장단점을 따지고 있다. 

‘찾았다.’

적당히 <사람들의 시선>을 즐길 수 있으며 짱박힐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      



<과거회상타임>

언젠가 부터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남의 시선을 꽤나 신경쓰는 타입니다. 

어릴 때 내복차림으로 아파트 단지 안에서 뛰어놀다가 잔뜩 화가 난 엄마가 건넨 한 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 누가 보면 엄마도 없는지 알겠어.” 

그리고 한 대 맞았다. 그것도 잘못 맞아서 밤샘 공부에도 흘려본 적 없는 코피도 흘렀다. 엄마는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가진 거 없이 시작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다 못해 우주로 간 지 오래다. 부리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자존심을 찾는다. 그나마 동네에서 딸 셋 잘 키운 집으로 소문나서 그걸로 일평생의 자존심을 유지하는 중이다. 하필 엄마에게 받은 유전은 그 많은 것들 중에서도 ‘남의 시선’이다. 피곤한 삶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내삶의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처럼 말이다.      




마음 편안히 몸을 맡길 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카페를 혼자 찾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임무다. 

오늘 임무는 잘 처리한 듯하다. 앉은 자리가 편안하다.

테이블에 커피를 올려두고,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 새벽부터 읽기 시작한 소설 한 권을 꺼냈다. 몇 달 동안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던 책의 푸른색 책표지마저 이 카페와 어울린다. 완벽하다. 


1시간 20분 정도의 시간이 있다. 

라떼를 천천히 음미하며 한 장 두 장 읽어나간다. 

몇 년 만에 보는 소설이라 그동안 읽었왔던 자기계발서들과는 다른 문장체들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혼자 실실 웃어대기도 하고, 앗! 남의 시선.      

그란데 사이즈, 먹어도 먹어도 샘솟나? 이게 그란데~

줄어들지 않는 양이다. 

우아하게 한모금 홀짝홀짝 마시다가 식어가는 커피를 벌컥 마셨다. 

성질이 급한 나에게 우아한 홀짝은 어울리지 않았다. 

‘아오, 속시원해.’

3분의 1쯤 남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 비싼 커피를 남기고 가면 안되지.’

이런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을 것이다. 분명.      


벌컥 마신 커피가 ‘나 여깄어요.’하고 아는 척을 한다. 

식도를 타고, 위장을 지나 어느새 대장 ~ 소장에 이르렀나보다. 

“저 여기 왔어요.”

‘그래, 알았다. 알았어. 너 거기왔는지. 나도 알겠다.’


왼손에 들고 있던 소설책을 테이블위에 올려둔다. 

급하지만 세상 급한 일이 없다는 듯 우아한 발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이 장면 어디에서 봤더라. 

얼마 전 모닝 라떼를 마시고 화장실에 앉아서 스치듯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가급적 아침에는 라떼 마시지 말자!!’ 아! 그 장면이구나.     


 

삼인행 필유아사언이라고 했던가?

어디서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게 되면 누구나 스승으로 보인다.   

   

화장실이 편안하게 느껴질 쯤 얼마 전에 받은 서평 도서가 떠올랐다.  

<화장실 수학탐험대>, 화장실 내에서 수학을 배울 수 있는 기발한 내용의 아동 도서이다. 

갑자기?

나는 어디든 배우려는 자세를 갖춘 사람이니깐, 그럼 화장실 안에서도 분명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거야. 

기,승도 없이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는 중 눈앞에 보이는 화장실 문구.     


이곳에서 담배를 피지 마세요. 

화장지를 변기에 버리지 마세요. 

Don't smoke here.

Don't throw toilet paper in the bin.     

두 번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오~~, 화장실에서 영어공부가 가능하구나. 

변기를 bin이라고 하는 구나.      

(지금도 이 문장은 외워서 쓴 것이다. 확실히 공부가 되었군)



삼인행 필유아사언이라고 했던가?

어디서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게 되면 무엇이든 공부가 되는 구나. 


화장실 안에서 볼일을 보면서도 끝까지 우아함을 놓지 않는 나의 인생.

배움에 때와 장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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