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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Jan 09. 2022

하이힐에서 내려왔더니
자존감이 높아졌다.

    

여러분들은 몇 센티미터의 하이힐을 신어보셨나요? 하이힐 좀 신어본 저로써는 7센티미터가 자신감넘치고 몸매도 예쁘게 보이게 해주더라고요.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라는 매개체로 신분상승을 합니다. 

유리구두로 인해 하루아침에 왕족이 된 신데렐라는 유리구두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유리구두에서 내려오게 되면 자신의 본 모습을 들여다볼 용기가 필요했거든요. 재투성이에 외톨이였던 신데렐라로 다시 돌아가는 악몽을 꿨을지도 모릅니다.     



20여 년 전, 꿈많고 겁 없던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꿈이 있었기에 힘든 줄 모르고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본 유학의 꿈을 키우고 결국 이루었죠.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을 때 여대생은 꿈많던 여대생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외부의 기대감과 현실의 차이로 방황하는 모습으로요.

몇 개월을 방황하고 있는데 모교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와서 일하라고요. 교육공무원이라는 타이틀에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1년밖에 버티지 못했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괴로운 나날이었습니다.     

박물관 학예사나 미술관 큐레이터가 되고 싶은 꿈이 있어서 한 개인미술관 면접을 보고 합격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후배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학원에 취직을 했는데 잠깐 오겠냐고요.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얼굴을 보러 갔죠. 거기가 면접 자리가 될지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후배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원장님이 같이 일해보고 싶어 한다고, 고마운 말씀이었죠. 그리고는 한 통의 전화가 옵니다.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미술관에서요.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참 재미있습니다. 어느 순간, 누구와 함께,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인생이 180도 바뀌기도 합니다. 이날은 저의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였습니다. 

예상밖의 선택을 한 것이죠. 학원요. 엄마에게 상의를 했어요. 그랬더니 남들 앞에 나서는 직업보다는 가르치는 직업이 낫지 않겠냐는 말에요. 그때부터 저의 직업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원을 선택하라고 했던 엄마가 저를 창피하게 생각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친척이나 친구분들이 오시면 저의 직업을 얼버무리시는 것을 몇 번 봤죠. 그리고 설명이 장황해집니다. 

자존심이 높은 분이셔서 자식들에 대한 긍지가 강한 분이셨습니다. 본인의 꿈을 투영시키는 전형적인 구시대 어머님타입이시죠. 

어릴 때 한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말괄량이였던 제가 집에서 입던 내복 차림으로 밖에서 친구들과 소리소리 지르면 논 적이 있었어요. 작은 아파트였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회초리를 드시는 거에요. 그 꼴로 나가서 놀았다는게 매를 맞게된 이유였습니다. 그때는 너무 억울하기도 했었죠. 그 일은 엄마가 남의 눈을 얼마나 의식하시는 분이신지를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동생들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를 다닙니다. 저의 직업은 늘 부연설명이 필요한 직업이었고요. 어느 날부터 거짓말도 하시더라고요. 자존감이 땅으로 내려앉은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세자매 중 그래도 나름 공부도 많이 하고 가장 기대를 했던 딸이라서 그러셨을 거라는 건 이해합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설명을 해야만 하는 직업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 외모에 힘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늘 정장에 하이힐 차림을 했죠. 

운이 좋게 종로 학원가에서 강의를 할 때는 하이힐을 절대 벗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게 저의 자존심이었고, 저를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하이힐 자존심은 결혼을 하고도 이어졌습니다. 남편에게도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그 자존심때문이었죠. 편하게 모이는 장소를 가더라고 갖춰입고 늘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었습니다. 

보통 아침 6시 반쯤부터 시작되는 강의는 많을 땐 10시간을 이상을 서서 하기도 했죠. 다리가 얼마나 아팠겠어요. 한 달에 한 켤레 정도는 새 구두를 샀었던 것 같아요. 어떨 땐 가방에 신발을 2개씩 가지고 다니기도 합니다.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진 사람은 두 가지 양상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던져놓고 포기하거나 자존감을 착각한 잘못된 자존심 세우기로 자신을 점점 더 코너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해집니다. 스스로가 외부적으로 당당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나는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몸부림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되죠. 방황과 함께 시작된 자기계발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멈추게 되는 순간 세상 가운데 도태되는 느낌에 괴로웠죠.     

하이힐에서 내려오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끊임없는 배움은 저에게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내려오라고요. 괜찮다고요. 너답게 가다 보면 어떠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요.       

하이힐은 나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허리 건강이나 발건강을 생각한다면 10시간 이상 하이힐을 신고 다닐 수는 없는 거죠. 잘 생각해보면 하이힐은 남의 눈을 의식한 허세였습니다. 어쩌면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다는 욕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감 넘쳐 보이고 몸매도 아름답게 보이는 그 하이힐은 사실은 다리 끝에서는 미세한 흔들림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이힐을 신은 저는 조그만한 돌멩이나 멘홀뚜껑의 구멍, 가벼운 밀침에도 금새 무너지곤 했습니다.      


당당히 서서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힘은 하이힐이 아니었다는 걸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하이힐을 신지 않은 저도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요. 나다움의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자존심은 스스로 존경받으려고 하는 마음이고 자존심과 비슷한 자존감은 스스로 존재하는 이유를 느끼는 감각입니다. 자존심은 외부로부터 외부로 그러하게 보여지려는 마음이며, 자존감은 내부로부터 다시 내부로 들어가 나를 단단히 일으켜 세워주는 힘입니다.      

자존심이 세다, 혹은 강하다, 그리고 약하다. 자존감이 높다, 낮다. 

자존심이 세다, 약하다는 것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다보니 강약으로 표현하지만 자존감은 내부의 낮은 곳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라가는 힘이기에 고저로 표현합니다.   

   

하이힐은 저에게 그런 자존심같은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사람 한사람 다른 이야기를 써나가는 개별 존재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누구를 비교대상으로 두고 따라갈 필요도 없는 나만의 스토리를 써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요. 

누구의 기대에도 부응하며 살지 않아도 됩니다. 비슷해지려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자신의 자존감으로 세상을 누릴 수 있는 힘을 길러 나답게 살아갈 것입니다.      

불편하면 벗고 불편하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말과 행동은 가급적 보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변하고 싶다면 불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은 있습니다만 여기서 변한다는 것은 긍정적 의미의 변화지, 나를 혹사시키는 변화가 아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어때, 그럴 수 있지, 나는 나지 이렇게 생각하면 사니 삶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그 시간에 저를 조금 더 자세히 바라봤다면 방황의 시간이 짧아졌을 겁니다.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상대도 그렇게 대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제가 늦게 알게 된 것을 일찌감치 알려 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떠한 기대감으로 무게를 더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이뤄나갈 거라 믿습니다. 그냥 아이들의 뒤에서 지지해주고 응원해줄 겁니다. 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힘에 조금 보탬이 되는 정도로요. 

귀하고 천한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든 귀하게 임하면 귀해집니다. 그리고 저도 귀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자존감을 높이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좋은 이야기,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우리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이야기와 사람을 자주 만나는 겁니다. 좋은 이야기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항상 배우려는 자세로 사람을 대하면 좋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세요. 내가 얼마나 괜찮은지 알기 위해서는 저와의 대화를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좋은 방법은 일기고, 혹은 어떠한 형태로든 글을 조금씩 써보는 것입니다.  

    

앞으로, 단단한 마음으로 세상을 누릴 수 있도록 저 자신과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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