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잡스 유진 Jul 12. 2023

40대 일상사전

ep1.  건망증

화장실에서 문득 오늘 쓰기 좋은 글감이 떠올랐다. 샤워를 준비하던 중이라 다시 나갈 수가 없어 머리를 감으면서 몇 번이나 되새긴다. 기록을 바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만이 최선이었다. 

‘신난다. 오늘 글감 너무 좋은데, 앗싸!!!’     


     

3시간 뒤, 노트북을 열었다. 

하얀 종이

막막하다.     

‘아 맞다, 화장실에서 생각했던 글감이 있지.’

'......................................................................... '(내 머릿속 상태)

    

생각나지 않는다. 

초몰입을 하고 가만히 멈춰 있어보기도 심지어 숨소리도 죽여본다.

하지만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어. 떡. 하. 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놓치면 아까운 글감이라는 느낌은 확실했다.      

내가 화장실을 들어가기 전까지 읽은 책이 뭐더라. 

완독을 끝낸 책이라 분명 마지막 장에서 무언가 힌트를 얻고 떠올린 글감일 게 분명할 거다. 

급하게 책을 펼친다. 

뒤에서부터 5장 정도를 거꾸로 넘긴 뒤 빠르게 재독을 한다. 

새벽 5시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글을 읽고 화장실로 향한다. 새벽에 샤워하기 전에 세면대에서 간단한 손빨래를 했다. 비슷한 손놀림으로 조물조물해본다. 누가 보면 손놀이를 알게 된 아기의 잼잼짝짝꿍이다. 

아...이렇게까지 하는데도 기억나지 않는다. 

풀메이크업에 출근복까지 입은 상황에서 글감살리기를 위해 다시 샤워를 해야하나?

고민이 스친다. 

일단 샤워기라도 집어보자. 

물을 틀어보자. 

흐르는 물이 아까우니 화장실 청소라도 하자.      

'...................................' (멍한 상태)



또 시간이 흐른다. 

내가 무얼하려고 화장실에 들어왔는지 조차 잊었다. 

글쓰기를 하려했다는 처음의 목적마저도 잊는다. 


망각의 동물...

작가의 이전글 40대 감정사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