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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Aug 05. 2023

나의 꿈은 나야.


휴가의 끝자락. 

몇 주 전부터 엘리멘탈이라는 영화를 보여달라던 둘째 아이의 말이 기억났다. 

가까운 영화관에 한글을 모르는 막내를 위해 더빙으로 나오는 시간대를 확인하고 새벽부터 서둘렀다. 

10시 20분 시작.

성격 급한 식구들은 8시 30분에 이미 영화관으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가는데 20분씩. 시작 20분 전에 도착할 것을 계산하면 9시 40분쯤 집을 나서면 된다.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큰아이들과 남편, 나는 각자 책을 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한글도 모르고 시계도 볼 줄 모르는 막내는 2분마다 얼마나 남았냐고 묻는다.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랄 뿐.      



신이 난 아이들은 20분 동안 달리는 차 안에서 즉석 노래방을 만든다. 누가 부른 건지, 무슨 가사 내용인지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신곡들을 줄줄이 따라부른다. 

그나마 아는 노래는 ’엄마 킹콩인지, 엄마 퀸카인지‘다.

13층에 숙소로 쓰고 있는 꽤 유명한 남자 아이돌그룹의 이름도 몰라서 아파트 현관에서 마주칠 때마다 머쓱하게 지나칠 뿐이다(핑크와 회색빛의 머리색과 외모만 봐도 연예인이라는 것은 알았다). 얼마 전 아이들을 통해 그룹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유명한 그룹이었냐며 혼자 호들갑을 떨었다.      

멀리서 보라색 알파벳 영화관 간판을 보고서 거의 다 왔음을 알았다. 처음 오는 낯선 길이어서 주차장 출입구를 찾는 눈은 바쁘다. 신도시에는 일방통행길이 많아서 잘못 들어서면 몇 바퀴를 돌아야 한다. 

지하 1층에 주차를 하고 영화관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간다. 휴가철에 영화관을 많이 올까싶어 예매도 하지 않고 무작정 왔다. 역시 몇 자리 남지 않은 상황. 그나마 세 자리는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한 자리는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앉아야 한다. 남편은 다른 상영관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본인은 ’미션임파서블‘을 봐야 한다며. 세 아이와 나는 미션임파서블보다 10분 앞서 상영하는 2관으로 향했다. 

’좋겠다. 남편아.‘



막내는 영화관에 데리고 다닌 횟수가 얼마 되지 않아, 상영관 내 에티켓을 이해하지 못한다. 

상영 중에는 조용히 해야 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통하지 않는다. 유선생을 통해 미리 본 영화의 장면마다 해설을 덧붙이고 스포를 날린다. 입을 틀어막아도 소용없다. 

에어컨이 빵빵했던 실내가 그렇게 덥게 느껴지다니. 얼굴이 화끈화끈. 등에는 땀이 날 정도였다. 2시간 가까이 이 아이를 통제해야 하니 영화에 집중하기에는 진즉에 글렀다고 예감했다. 

집중할 만하면 “엄마!”, 대답하지 않으면 연이어 두 번을 부른다. “엄마! 엄마!”     



4년만에 소개된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첫 장면부터 눈길을 끌었다. 소재가 신선하다. 물, 불, 바람, 흙 4가지의 원소들이 각자의 구역을 두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와우.”

피터 손 감독의 자전적이야기라는 글을 관람 후 인터넷을 통해 읽었다. 이민자로서의 미국에서의 삶을 그렸다는 이야기.

엘리멘탈’은 재미동포 2세인 피터 손(손태윤)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손 감독의 부모님은 뉴욕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손 감독을 뒷바라지했다. 픽사 동료들은 손 감독의 사연을 듣고 “네 이야기 안에 영화가 있다”며 다음 작품으로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이것이  ‘엘리멘탈’의 시작이었다.


영화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불의 구역에 물이 들어와 위기를 초래한다. 불이 만들 수 있는 유리벽을 치며 서로의 경계를 지켜낸다. 웨이드가 엠버의 마음속으로 다가가려 하지만 서로는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것을 엠버가 만들어내는 유리벽이 대변해준다. 결론은 유리벽이 허물어지면서 불과 물이 하나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랑이야기인가 싶었지만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더 깊은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민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정체성의 혼란과 성장 과정을 그렸다는 것을.      




막내의 화면설명에 깊은 의미까지 이해할 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엠버와 엠버의 아버지의 대화 장면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빠의 평생꿈인 가게를 이어받아 잘 운영해가는 게 목표였던 엠버는 웨이드를 만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알아간다. 자신이 원하는 삶과 부모의 바램 사이에서 갈등한다. 부모가 원하는 착한 아이로 남기로 결심한 후로도 내면의 소리에 괴로워한다. 결국 이 사실을 토로하고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한다. 

아버지의 꿈인 이 가게를 이어가지 못한다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자 엠버의 아버지는 말한다.

“이 가게는 내 꿈이 아니야. 내 꿈은 바로 너야.”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난 아닌데.. 내 꿈은 바로 난데..‘

내면의 소리가 들린다. 바로 나. 

나의 꿈은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이 꿈이 되는 순간, 바라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들, 하고 싶었던 것들을 아이들에게 투영할 게다. 

나도 성장 중이기에 이루지 못했다고 할 만한 꿈도 없다. 꿈은 계속 꾸고 있다. 멈추지 않으면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할 수도 없으니깐. 

아이들도 각자의 꿈을 꿀 것이고,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의 꿈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존중한다. 

나 자신도 누군가의 꿈이 되길 원치 않는다. 부담스럽다.      



“나의 꿈은 바로 너야.”

아니, 잠깐. 아버님~!     


“나의 꿈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니 네 갈 길은 네가 알아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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