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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Aug 04. 2023

오늘의 쓸모, 오늘의 쓸 뭐.


아이들을 바라본다. 며칠 내내 아이들과 붙어 있으며 보고 있는 건 일 년에 딱 한 번, 여름휴가 때나 가능하다. 

살을 찌르듯 내리 째는 때양볕에 앉아 있어도 아이들 웃는 모습에 더위마저 잊는다. 

‘까르르르 까르르르’ 계속 들어도 싫증 나지 않는다. 

아이들을 보면서 고민거리들도 잠시나마 잊는다. 

일하지 않고 아이들만 돌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욕심도 스쳐 지나간다.      

큰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7년이 남았다. 

20살이 되면 독립시키겠다는 굳은 의지가 7년 뒤에도 잘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이 떠올랐다. 

생각은 징검다리 건너듯 폴짝폴짝 뛰어다니더니 사랑한다면 더 강하게 키워야한다는 나름의 교육철학이 있었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하던 대로 하며 살자는 현실적 삶과 타협한다.      

그저 이 순간이 행복한 이유는 그렇지 않은 시간도 함께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힘들게 일하며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같이 하는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입술이 다 불어터지는 피곤이 밀려와도 다음날 슈퍼우먼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건 바로 이런 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은 저축할 수 없지만 행복을 누리기 위한 시간은 인내라는 무형으로 축적할 수 있다. 

바로 지금, 넋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아이들만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는 동안 나도 여유를 즐겨야지 싶어 전자책을 읽으려 가져간 테블릿도 살포시 덮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장난치는 모습을 눈과 귀에 담고 싶었다.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문장 하나, 글 한 페이지를 읽어내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이다. 남의 삶을 읽는 것보다 내 삶과 삶 속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의미 있다.

6시간 동안 아이들만 바라보았다. 따로 수영강습을 시키지 않았는데도 학교에서 배운 생존수영으로 제법 수영을 하는 큰딸을 보며 대견해 하며 연신 물개박수를 쳤다. 늘 의젓한 모습으로만 생각했던 둘째 아이는 장난끼가 가득한 딱 초등 4학년 다운 모습이다. 물에 전혀 겁내지 않는 막내는 6시간 동안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정말 물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의 성향도 자세히 오래 바라보니 다른 모습들이 보인다. 내가 잘 알지 못했던 모습들이다. 남편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지 평소 아이들에게 엄한 모습만 보여주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한없이 다정한 아빠가 되어 있었다. 때론 여행이 평소 보지 못한 모습도 함께 데려와 준다. 

12년 만에 남편과 휴가일을 맞춰 며칠 동안을 함께 한다. 고급 호텔도 스파도 아닌 산속 펜션에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적당한 수영장이 있는 가성비 좋은 펜션에 가족 모두가 만족한 시간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오늘, 이 순간, 모든 것이 감사하다. 

오늘의 쓸모.

오늘의 쓸 뭐.     

오늘을 충실히 산 쓸모있는 나날은 다음날의 쓸 무언가가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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