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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Aug 21. 2023

옥수수 익어가는 계절

아버지의 추억도 함께 익어간다. 


‘이건 제대로 된 옥수수가 아니야. 이런 옥수수를 재료로 쓰면 제대로 된 맛을 낼 수가 없어. 듬성듬성 이빨 빠진 듯 고르지 않은 알갱이도 마음에 안 들어.’

꿈이었다. 

한 알 한 알 맛보고 냄새도 맡아봤는데 꿈이라니, 현실이라고 해도 믿겠다. 전날 저녁 한 솥 가득 삶아놓은 옥수수를 다 먹지 못하고 냉동실에 보관한 아쉬움이 꿈으로 나타났다.     

 

토요일 낮 12시가 채 되기 전에 이른 택배가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시골에 계신 아버님이 직접 수확하신 농산물이 가득하다. 복숭아로 전부 채워져 있는가 싶었는데 아래쪽에 40여 개쯤으로 보이는 옥수수들이 가지런히 누워있다. 

‘옥수수다.’

시골에서 옥수수가 오면 딱 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집에 당원이 있었나? 이걸 언제 다 삶아서 처리하지?’     



속도 중에서 가장 빠른 건 추억을 떠올리는 순간일 테다. 어느덧 기억은 8년 전으로 왔다. 이맘때쯤 되면 아버지가 계신 강원도에서 옥수수가 온다. 푸른 노끈으로 겨우 입구를 묶은 듯 포대 자루 안은 터질 듯 옥수수로 가득하다. 

“이걸 누가 다 먹는다고 이렇게 많이 보내셨대.”

당시는 이걸 어떻게 다 처리할지가 걱정스러웠다. 지인들에게 조금씩, 그리고 주인 할머니와 윗집에 사는 이웃에게도 한 봉지씩 드린다. 적당하다 싶은 정도의 양을 남기고 모두 나눠준다. 딸 셋에게 손수지은 농작물을 보내주는 재미로 농사를 지은 아버지는 보내오는 양도 자식 사랑만큼 넘친다. 


아버지의 옥수수는 특별하다. 강원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찰옥수수 씨앗으로 심은 거다. 쫀득쫀득하고 알이 실하다. 돌아가시 전 아버지는 시댁에 특별한 씨앗 두 가지를 드렸다. 하나는 옥수수, 또 다른 하나는 감자다. 두 가지 모두 강원도하면 생각나는 농산물이다. 강원도는 맛이 다르다고 자부하시던 옥수수와 감자. 시아버지께서는 8년 전 받은 씨앗으로 새끼를 치셔서 아직도 그 품종으로 농사를 지으신다.      


해가 바뀔수록 시아버님이 보내주신 옥수수의 아버지가 계실 때이 맛과는 다르다. 토질이 달라서 그렇다고 남편이 알려주었다. 어릴 적부터 농사일을 도와온 남편의 말은 일리가 있다.      


한 솥 가득 삶았다. 당원도 듬뿍 넣었다. 소금만 넣어도 맛있다고 당부하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탑을 쌓듯 쌓아올려 거실에 내놓는다. 남편과 아이들이 ‘우와’를 연발하며 하나씩 짚는다. 많이 먹어도 2개 이상을 먹지 못한다.


먹다 남은 옥수수, 그리고 오늘 중으로 다 처리해야 하는 옥수수들은 모두 삶아서 냉동실에 보관했다. 아버지와의 추억도 함께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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