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강박증을 아시나요.

by 생각잡스 유진

멀리서 짠 내가 풍겨온다. 몇 해 만에 오는 것일까. 청록빛을 띤 동해바다가 있는 친정 동네. 강원도 동해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2년 만이다. 장례식 이후로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집으로 돌아가길 힘들어하던 엄마는 그렇게 딸들이 있는 경기도에 정착하게 되었다.


망상IC로 들어가는 길은 기다란 해안선을 따라간다. 좌측에는 너른 바다가 보인다. 결혼을 결심하고 인사시키러 가는 길에 산골출신 남편이 바다를 보며 호들갑을 떨던 모습이 떠오른다. ‘저렇게 좋을까.’

대학 입학 전까지 바닷가 마을에 살던 나에게 바다는 낭만의 장소는 아니다. 그저 어린 시절 무료함을 달래주던 놀이터다. 갈 데라곤 바다밖에 없던 소녀에게 품을 내어준 너른 마음이다.



2년 만에 동해시를 가는 길, 차 안은 평소와 다르게 정적이 흐른다. 운전 중인 남편은 힐끗힐끗 지나치듯 쳐다만 볼 뿐 오랜만에 본 바다를 좋아하는 내색은 하지 않는다. 나는 앞만 본다. 바다를 바라볼 수 없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이곳은 그저 슬프다. 날씨마저 눈치 없이 에메랄드 바다색이다.


2년 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었던 집은 티가 난다.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다. 현관에 잔뜩 쌓인 우편물부터 치웠다. 현관 도어락이 방전되어 문이 열리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온 6볼트 건전지로 긴급 충전을 하고서야 겨우 열렸다.

‘아버지 저 왔어요.’

우리는 오늘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왔다. 며칠 전 꿈에 나오셔서 춥다고 하신다. 아버지를 묻고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해 그동안 유품정리를 하지 않았다. 집안 곳곳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그때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안방에 벗어 놓은 옷도 그대로이고, 사용하시던 칫솔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저녁이면 다시 경기도로 올라가야 한다. 가방을 싸는 손이 바쁘다. 아버지가 자주 입으시던 옷을 싸고, 신발도 넣었다. 춥다는 아버지를 위해 두툼한 자켓도 챙겼다. 아버지꿈을 꾸고 시어머니께 상의를 드렸더니, 아버지를 위해 옷가지를 태워드리는 게 좋겠다고 하신다.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엄마 옷이 왜 이렇게 많지? 이 많은 옷을 언제 다 입으셨어. 엄마가 돌아가신다면 이 많은 옷을 어떻게 다 처리하지? 남겨진 사람드를 위해서라고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지면 안 되겠다..’

생각의 속도는 통제할 겨를도 없이 상상하기 싫은 일까지 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두 어 배나 많은 옷과 신발, 그리고 구석구석 쌓인 주방 도구들. 저 물건들을 다 처리하는 동안 겪을 슬픈 감정들이 한 번에 몰려와 눈물이 솟구쳤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엄마는 ‘저장강박증’이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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