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강박증 엄마와 살고 있습니다.
“말기, 4기셔요. 앞으로 3개월 정도 남으셨어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9년째다.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암환자 선고를 받고, 그렇게 4년을 더 계시다가 가셨다. 가족들 모두 선물같이 주어진 4년 동안 마음의 준비를 잘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앞에서 모두 주저앉았다. 엄마와 딸들은 목놓아 울고, 사위들도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가슴 아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빈자리를 정리하는 일이 더 힘겨웠다.
남기고 가신 흔적들을 찾아, 하나하나 정리하는 건 큰딸인 내 몫이었다. 사망신고서부터, 금융권을 정리하는 시간 동안 남은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을 더 오랫동안 슬퍼해야 했다.
한 달 동안 사망신고를 하지 않으면 벌금이 나온다는 정책은 잔인하게까지 여겨졌다. 동사무소 입구에서부터 눈물을 흘렸다. 엄마에게는 차에서 기다리시다고 하고 혼자 들어갔다. 한 부만 떼면 될 줄 알았는데 사무소 직원분은 그걸로는 안된다고 했다. 여기저기 제출해야 될 곳이 많아서 10부 이상은 하셔야 할 거란다. 다시 와서 이 서류를 떼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넉넉하게 20부를 떼고 그곳을 떠났다. 차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슬픔을 견딜 시간도 없이 현실적인 일을 처리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다. 어쩌면 이 현실적 일들이 남은 사람에게 슬픔을 빨리 잊게 해주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남은 사람은 그렇게 떠나간 이의 그리움과 현실을 한 번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살아가야 한다.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의 통장과 서류들을 챙겨 들고 올라왔다. 돈을 찾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다. 아버지가 남긴 돈을 입출금 통장으로 그냥 인출해와도 안된다고 한다. 상속재산이기에 상속인들에 대한 인적사항이 모두 파악되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상속재산에 대한 파악에 모두 완료되었다면 예금에 대한 인출권이 생긴다고 한다. 이거 참, 못할 짓이다. 동생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인감증명서와 인감, 그리고 서류 몇 가지를 보내라고 했다.
은행권 정리를 모두 마치고 나니, 상속세 지로가 날아온다.
동생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상속세를 납부했다. 재산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된다면서 딸 셋이서 똑같이 내기를 권하셨다.
아버지 소유의 부동산을 정리하려 보니, 그곳 또한 네 사람의 동의가 필요하고, 똑같이 나눠야 한다고 한다. 이것까지는 차마 못하겠다 싶어 그대로 두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타시던 차,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대로 시아버님께 가져다 드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아버지가 남기고 간 것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엄마의 것이 없다.
어느 것 하나, 엄마의 이름으로 된 것이 없다.
집안 가득 엄마의 물건으로 가득하지만, 진짜 엄마의 것은 어느 것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