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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Oct 06. 2023

문제집을 모두 버렸다.


추석 전 일이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는 대신 가정에서 꾸준하게 문제집 풀이를 하고 있었다. 학년에 맞는 공부는 놓치고 싶지 않아 가정학습과 독학으로 잘 따라가 주길 바라는 마음에 학기별로 문제집은 사주었다.

오늘도 아이들은 새벽부터 오늘 해야 할 공부를 위해 책상에 앉았다. 큰아이와 둘째 아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집중을 하지 못한다. 억지로 앉아 있다.

“집중해야지, 할 때는 제대로 해봐.”

“네.”

대답은 하지만 10분 동안 같은 페이지를 멍하니 보고 있다.

“얘들아. 버리자, 문제집.”

큰아이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둘째 아이는 엄마가 잠시 화가 나서 하는 말씀이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듯한 얼굴이다.

“문제집 푸는 거 힘들고 재미없지?”

여기에서 어떤 답을 하더라도 혼날 것이라는 직감한 아이들은 아무 답이 없다.

“버리자.”


순간적 화에 못 이겨 내뱉은 말이 아니다. 억지로 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해도 머리에 남을까 말까 한 것이 공부인데 억지로 한들 얼마나 남겠냐 말이다.

“재활용장에 버리고 와.”

큰 아이는 내 눈치만 보면서 행동하지 못한다. 둘째 아이는 빈 상자 안에 문제집을 차곡차곡 넣기 시작한다. 서랍에서 테이프 박스를 꺼내와서 테이핑까지 한다. 무거운 짐을 쉽게 가지고 나갈 수 있도록 손수레에 얹어서 끌고 나간다.

진.짜.버.렸.다.

가격으로 따지면 20만원이 넘는다. 수학, 국어, 독해, 영어, 사회, 과학, 역사, 한자책까지 모조리 버렸다.

“앞으로 문제집은 안 사줄 거야. 필요하면 용돈을 모아서 사서 보든지, 아님 그냥 교과서로 공부해.”    


 

뒤늦게 이 상황을 알게 된 남편이 묻는다.

“왜 그랬어?”

“아이들이 억지로 하는 게 보기 싫어서.”

“그다음 대책은?”

남자들은 꼭 대책 혹은 해결책을 들어야 마음이 편한가 보다.

“아무 생각 없는데요. 그냥 책이나 읽히죠.”

진심이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독서나 하면서 하루를 보냈으면 한다.

학교 마치고 와서 조금 뛰어놀고, 문제집을 풀다 보면 어느덧 하루가 지나간다. 독서 할 시간은 이벤트처럼 주말에나 가능하다. 늘 안타깝게 생각하던 부분이다.

매일 습관처럼 하던 일이 사라진 아이들이 우왕좌왕한다.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이내 책을 손에 든다.      



문제집을 버린 다음날 EBS방송국에서 방영하는 ‘책맹인류’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읽지 않거나 읽을 시간이 없는 아이들을 위한 교과서 혁명, 책과 친해지게 만드는 강아지와의 책 읽기 프로젝트, 시끄러운 도서관 만들기 등 흥미로운 독서 혁명들이 가득한 내용들이었다. 평소 관심갖고 있던 주제이기도 했고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 한편에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늘 꿈꾸던 아이들 학교 모습이다. 저런 모습의 학교를 그리며 훗날 대안학교를 만들겠다는 꿈도 꿨다.

‘버리길 잘했어. 지금이 아니면 책을 충분히 읽힐 시간이 더 없어질 거야. ’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강제와 억지는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흥미와 호기심을 따라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문제집을 버리고, 자유롭게 책을 읽게 한 것은 그런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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