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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Oct 15. 2023

기억


“엄마는 여섯 살 때가 좋아, 사십오살(막내에게 어른의 나이는 저렇게 읽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이 좋아?”

막내의 엉뚱한 질문이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등원길에 늘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있는데 이 또한 좋은 글감이 되었다. 

막내는 나의 글선생이다.      

“음....엄마는 지금이 좋아.”

“왜?”

“음....여섯 살 때는, 잘 기억나지 않아.”

대답을 해 놓고도 너무 성의 없이 답했나 싶었다. 

“기억나지 않아서 지금이 좋다는 거야?”

“어, 그때는 기억나지 않는데, 지금은 하루하루를 잘 기억하고 있거든, 그래서 엄마는 지금이 좋아.”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의 기억은 드라마처럼 또렷이 남아있다. 

여섯 살이면, 막내동생이 태어난 때다. 두 살 차이나는 동생 다음으로 다섯 살 터울의 셋째가 태어난 때다. 당시의 우리는 등대라고 하는 높은 산동네에 살았다. 월세방 항구 근처에 살다가 전셋집을 얻어 올라갔다. 한 지붕 아래 세 가족이 살던 시절이다. 대문으로 경계를 나누는 것이 아닌, 미닫이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집이 되던 그런 시절이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조금씩 나눠 먹기도 하고, 엄마가 늦게 오면 밥을 챙겨주기도 하는 정겨운 이웃이 기억나는 그때이다. 


내 또래의 아이들이 집집마다 있어서 더욱 친하게 지낸 듯하다. 지금도 여자 친구보다 남자친구들이 더 많고 편안한 건, 아주 어릴 때부터 이성친구들과 자주 어울려서 이기도 하다. 인형놀이보다는 칼싸움, 총싸움 더 재밌었다. 고무줄놀이보다는 새총쏘기가 더 좋고, 공기놀이보다는 비석치기가 더 맞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아주 어린 시절 주변에 남자친구들이 대부분이어서 자연스레 그런 놀이만 하고 컸다.      


여섯 살의 나와, 지금의 나, 공통점이 있다. 아버지의 부재다. 당시 아버지는 오징어를 잡는 큰 원양어선을 타고 계셨다. 일 년 중 한두 달만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 굶기지 않고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했던 그 시절 가장 빠르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택하셨던 거다. 아버지가 오시는 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난감들과 양과자들이 잔뜩 놓여있다. 외국의 물건은 아버지가 돌아오셨다는 신호이고 과자가 떨어질 때쯤 되면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 간 사이 아버지는 떠나고 없던 기억도 종종 난다. 아버지는 잠들어 있는 시간에 산타처럼 나타나신다. 그리고는 잊을 만할 때 다시 돌아오신다. 아버지가 오시면 사 오신 최신식 장난감과 과자들을 부러워하는 눈으로 보던 친구들에게 이때만큼은 원 없이 자랑했다. 나도 이렇게 장난감과 과자를 사주는 아버지가 있다고. 

그때의 아버지는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셨는데, 지금은 기다려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신다. 최신식 장난감과 과자를 한 아름 들고 오시던 아버지는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다.      



여섯 살 막내 덕분에 여섯 살 나의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내일은 막내가 어떤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 기억하게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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