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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Jan 31. 2024

질문하는 남자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편은 덥석 내 손을 잡는다. 한참 재밌게 이슬아작가의 에세이를 키득거리며 읽다가 내 손을 잡아챈 남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더니 바디로션을 다섯 번 펌프질한다. 다시 남편의 눈을 쳐다본다. 

남편은 뒤돌아서서 등을 보인다. 팔뚝에 살이 많은 남편은 등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 때마침 책상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 건조해질대로 건조해진 등에 로션을 발라주길 기다리고 있다. 

눈동자는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오른손으로 흐느적흐느적 가로 방향으로 남편의 등에 바디로션을 발라준다. 

“왜 이래?”

“..........??” 손닿지 않는 곳에 로션을 발라준 고마운 부인에게 하는 말이 왜 질문이지?

“왜 매사 대충이야. 도대체 왜. 꼼꼼하게 발라주면 되지, 그냥 슥슥슥 몇 번 문지르고 마냐.”

“아니, 오빠 등이 너무 굴곡져. 그래서 가운데 척추 부분에는 그냥 지나치게 돼. 인생도 등판도 굴곡 없이 매끈해야지. 왜 이렇게 굴곡져.”

남편의 어이 없어 하는 표정. 


남편이 방에서 나가고 홀로 남은 나는 다시 책 속으로 빠져든다. 30분 동안 현실과 다른 세상의 독서에 빠져있다가 샤워하러 욕실에 들어간다.

머리를 감다가 환청이 들려온다. 

“왜 이래~왜이래왜이래왜이래왜이래~~~~~”     


그러고 보니 남편이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니던가. 오늘따라 이 말이 유독 머릿속을 맴돈다. 왜.이.래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할 상황이 왜 이렇게 많이 생기는 걸까. 이 남자에게는.

호기심 가득한 유아기도 아니고 오십이 다 된 중년 남성이 뭐가 그리 궁금해서 끊임없이 왜이래를 외치는 걸까.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남편이 나에게 왜 이래라고 하는 경우 말이다. 

매일같이 새벽 6시 조금 넘은 시간에 이른 출근을 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어느날 쓸쓸해 보여 현관까지 따라간다. “잘 다녀와.” , “왜 이래~.”     


토요일 저녁 삼겹살을 굽는다. 무엇이든 줄세우기를 잘하는 남편은 삼겹살들도 차례대로 줄세워 굽는다. 모든 것이 진지한 이 남자. 애쓰는 것 같아 상추쌈을 하나 싸서 입에 넣어준다. 

“왜 이래~.”     


지난달보다 월급이 조금 더 들어와서 남편에게 얼마의 돈을 보낸다. 쿨한 여자인 척하며 이러쿵저러쿵 부연설명 없이 카카오페이로 띵 보내면 어김없이 “왜 이래~.”          


같이 산책을 하다가 남편의 팔꿈치쪽 티셔츠를 살짝 잡는다. 뒤돌아보며 “왜 이래~.”     


회사 나가서 주전부리로 먹어라고 남편보다 더 읽찍 일어나서 계란을 삶는다.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부은 얼굴로 하는 말. “왜 이래~.”     


주말 새벽 아이들이 모두 잠든 시간 나만의 시간을 더 갖고 싶어 서재 골방에서 열심히 읽고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왜 이래~.”          


나와 눈이 마주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왜 이래.”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았을때는 남편의 “왜 이래.”에 일일이 답변했다. 질문하는 아이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엄마처럼. 결혼 10년 차가 넘어서던 어느 날은 오른쪽 손바닥으로 남편의 입을 막았다. 여기까진 그나마 애정가득했나보다. 최근의 나는 “왜 이래?”라고 하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앉은 자리에서 훠이훠이 제스처로 나가라는 몸짓을 한다.      


이 남자의 “왜 이래.” 추임새 정도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까지는 거슬린다. 신경쓰인다는 건 그나마 남은 애정이 있는 거라고 누군가 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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