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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Feb 06. 2024

무게 중심을 뒤로 두세요.

인생은 정극이 아닌, 코미디2


"해오님, 아까부터 쓰시는 자세를 쭉 지켜봤는데요." 

서예 스승님이 옆자리에 앉으신다. 나보다 8살이나 아래인 스승인데도, 매우 어려운 존재다. 그녀가 다가오면 일단 긴장한다. 

"이번 글씨는 꼭 중봉으로 쓰지 않으셔도 되지만, 붓이 앞으로 너무 쏠리는 건 신경 쓰셔야 해요." 

오늘따라 자세가 불편하다. 어깨도 불편하고 팔꿈치의 위치도 어딘가 어색하다. 스스로도 어색함을 느끼고 있을 때 스승은 예리한 눈으로 집어주었다. 

"네, 선생님.“

"며칠 전 TV에서 봤는데요. 안정환 씨가 나이가 들수록 무게 중심을 뒤로 보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균형을 찾을 수 있다고요. 그 생각이 나네요. 해오님, 그리고 살도 안 찐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이가 들수록 무게 중심을 뒤로 둬야 하는 이유를 검색해보았다.     

나이가 들면 노화 등의 퇴행성 변화로 근육의 양과 기능이 저하되는데, 상태를 더 악화시켜 척추가 머리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점점 등 모양이 굽게 된다. 결국 몸의 무게 중심에 비해 골반과 머리가 앞쪽으로 나가 있는 형태로 보행 자세가 변한다. 실제로 노인의 보행 자세를 보면 대개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팔을 뒤로 한 채 걸어간다. 일명, '노인 자세'다. 팔을 뒤로 한 채 걷는 자세는 척추의 정렬에 문제가 생기면서 나타나는 보상 동작인 것이다. 이 동작마저 여의치 않으면 지팡이를 쓰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무게 중심을 뒤로 두라는 말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무게 중심을 뒤로 두어 신체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무게 중심을 뒤로 두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인 자세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삶의 여러 면에서 자연스레 균형과 안정을 찾아나가려는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본능이 삶 곳곳에 서려 있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오면 오늘의 이 깨달음을 함께 나눠주고 싶었다. 회식이 있어 늦는다는 남편은 밤 12시가 다 되어서 들어왔다. 남편을 보니 앞으로 10도 정도 쏠려 넘어질듯 불안한 자세로 걸으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이때다 싶어 뒤따라 들어가서 나이가 들수록 무게 중심을 뒤로 둬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결정적인 한 마디는, 

"그래야 살이 안 찐대요!"     




반쯤 풀린 눈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곧이어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진아, 유진아, 빨리 와봐." 

무슨 일인가 싶어 다급히 욕실 문을 열어보았다. 엉덩이부터 욕조에 빠져 있는 남편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자신을 좀 꺼내 달라고 한다. 8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를 꺼내려 애써본다. 무게 중심무게 중심이 너무 뒤로 가 있어서 꺼내는 게 쉽지 않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SOS를 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웃긴 상황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뭐해?" 

”사진 찍어 두려고, 너무 웃겨." 

"아니, 왜 사진을 찍어? 그러니 왜 무게 중심을 뒤로 둬야 한 대서....?" 

"엉??" 

욕조에 빠지기 전, 남편은 욕조 모서리에 앉아 양치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들어오기 전 아내가 말한 무게 중심을 생각해 보았다. 연습 삼아 무게를 살짝 뒤로 보냈는데 어느덧 욕조 안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무게 중심은 적당히 뒤로 보내야 균형을 찾을 수 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한쪽으로 중심이 쏠리면 결국 넘어진다. 인생에 또 하나의 교훈과 웃음이 남는 날이다. 

남편의 사진은 사진첩 안에서 두고두고 웃음을 주고 있다.     



PS.글감으로 남겨줘서 고마워,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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