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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Jun 04. 2024

갱년기의 배신

나보다 갱년기를 먼저 맞이한 남편 관찰일기1

2024. 6. 4. 큰 딸아이의 생일날 아침.       


   

-이런 책 어떠삼?

- 주위에서 괜찮은 내용이라고 하던데. 왜요 사게요?

남편이 보내온 카톡에는 부부가 평소 읽지 않는 장르의 책표지 이미지가 보인다. 


네이버이미지



‘리틀 라이프 전 2권 세트’     

사주겠다는 건지, 사겠다는 건지 의향을 알 수가 없어서 사려고 하냐고 질문한 것이다. 사주려고?라고 하면 해주고 싶은 마음도 사라질 것 같아 돌려 말한 건데

남편은 

-어, 사볼까해서

-아     

요즘 책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다 시들시들해져서

  뭔가 계기가 있었음 해서     

-음...(이제부터 나는 다섯 살 어린 부인이 아닌 중년의 인생을 같이 걸어가는 인생 조언자다)

 환경을 바꿔봐요.

 내가?? 싶은 취미나 그 사람을?? 싶은 사람을 만나봐요.

 아님...(뜬금없지만 이유는 가득한) 고전을 읽어봐요. 18사략같은 (욕하고 싶어 추천한 것이 아닌 진심)

 인생에서 가장 활기를 돌게 하는 건 연애인데, 유부남인 당신에게 그건 범죄니...음....     

- 뭐랄까, 열정? 의욕? 이런것들이 좀 사라졌다고 할까...

  회사에 와도 맨날 사무실에 혼자 틀어박혀 있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도 업무적인 거 밖에는 할 말도 없고. 하기도 싫고..

- 음...그래, 취미를 가져봐요.

- 어제 회사 팀하고 회식을 하는데도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모르겠더라고.

- 음....그래, 취미를 가져봐요(진심어린 조언인데 AI처럼 답변하기 시작) 그런데,,나이들수록 입은 무거워지는 건 좋은 건데..쩝

- 입이 무거워지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감각이 사라진다는 느낌, 늙어간다는 그런 느낌...알까.

- 요즘 잘 보는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건 어때요? 사람이 닭강정이 되는 그런 신선한 주제로.

- 아..그렇지 그런거라도 이야기할 걸 그랬다. 넷플이야기면 할 말이 많은데.

- ㅋㅋㅋ

- 그리고 자꾸 이야기가 길어지면 충조평판이 되어가.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니 어느 순간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고 있어.

- 그래서 난 글을 쓰지, 그런 감정으로 글을 쓰면 글빨이 그냥 아주~~~

- 그러니, 넌 참 다양한 취미를 즐기고 있어서 좋겠다. 목공을 다시 시작하라! 그것도 좋은 생각이다. 그걸 할 땐 아무 생각이 안드니깐

- 목공해요(연두해요~~같은 느낌). 취미도 조용히 혼자하는 그런 종류가 좋아요. 생각도 할 수 있고. 

 - 주식이나 이런 거에도 관심이 뚝 떨어졌어

- 안 오르니깐!

- 뭘 해야할지

- 목공

- 오르진 않지만 종목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는데, 그런 모든 게 의미가 없어졌다고 해야하나

- 혹시...오빠...지금 배고파??

- 조금...왜? 에이 설마 배고파서 그럴까봐..-.-. 지금은 동물적인 게 아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음

- 삶을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보세요. 하고 싶은 일만하고 살아도 인생이 짧습니다. 말하기 싫음 하지 말고, 안하고 싶은 안하고, 안 만나고 싶음 안만나는 권리!!! 50대의 권리!!

- 그렇긴 하지..

- 책을 이제부턴 주식 투자같은 거 말고 고전을 읽어봐요. 멘탈을 확실히 잡아줘요. 

  그리고 상담이 필요하심 언제든 콜하세요!     



다음 일정이 바쁜 나는 황급히 남편의 카톡 상담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고 밀려드는 걱정,

이 남자를 어찌하누~~

이건 분명 갱년기야. 

갱년기는 나부터 시작할 거라고 철썩 같이 믿었건만, 남자에게도 오는 건가요?? 진짜 몰랐어요~~!!


남편과의 카톡을 마무리 짓고 이 남자가 왜 평소 보지도 않던 장르의 책에 끌렸는지 이해가 갔다.

울고 싶은 본인의 마음을 대변해주듯 울고 있는 이 남자의 사진, 표지에 마음에 이끌린 거다. 


이 남자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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