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갱년기를 먼저 맞이한 남편 관찰일기 2
‘저러려고 산 소파가 아닌데 말이야.’
곁눈으로 스윽 쳐다본다. 눈이 마주친다.
“왜, 뭐??” 자신을 쳐다보는 눈이 왜 흰자가 더 많은지를 확인하듯 눈이 동그래져서는 말한다.
“........” 말없이 다시 한번 쓱 째려본다. 싸울 생각은 없었기에 잔소리는 하지 않는다.
방문을 닫아준다.
‘실컷 봐라.’
이사를 하고 서재다운 서재를 갖게 되었다. 남는 방 하나를 욕심내 그동안 모아두었던 책들은 한 곳으로 몰아넣었더니 책방다워졌다.
서재는 고풍스러워야 한다면 엄마의 우김으로 산 빨간 소파.
절대 집에 소파를 두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를 꺾고 평소 거래하던 가구 사장님께 주문을 해 두었다.
2인용이라기에는 조금 크고 3인이 앉기에는 각 잡고 앉아야 하는 의자는 명화에서나 봤을 법한 붉은 벨벳으로 되었다. 고급 드레스를 입고 가로로 앉은 채로 책을 읽거나 정면을 응시하는 바로 그 장면!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브룅이 모델을 앉혀놓고 그렸을 듯한 그런 소파다.
부담스러운 색에 편안함은 찾아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장식용 소파다. 서재를 더욱 고급스럽게 빛내줄 소품.
그런 소파를 자취시절 편안하게 쓰다 버릴 생각으로 샀던 이케아 소파 취급을 하는 남편. 아무렇게나 누워있고 앉아있고, 쉬도 때도 없이 한 몸이 되어있다. 언젠가부터.
‘이때부터였구나, 남편의 객년기(남편이 낯선 손님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해)’
변했다고는 생각했다. 예전 같지 않다.
날씨가 좋으면 자전거를 타거나 축구를 즐기던 남편은 마흔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드라마나 영화 마니아가 되어가고 있다. 지나가는 말로 두 번째 인생은 영화감독이 될 거냐고 비아냥 거렸지만 마음으로는 걱정되었다.
‘괜찮을까.’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니, 남자들도 갱년기가 오니 잘 관리해야 하고 병원을 가게 하라 한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나 자존심에 상처가 될지도 모르니.
“오빠. 갱년기 아니야?”
조심스럽게 한다고 했지만 직설적 성격의 나는 디렉트로 질렀다.
“응?? 글쎄...”
“병원 가보래. 그거 그냥 두면 안 된대.”
“어.. 그래..”
자기 몸은 스스로 잘 챙기는 남편이니 병원에 가라는 말을 흘려듣지는 않았다.
그날 오후 남편은 병원에 들렀다.
“호르몬에 변화가 왔다고 하네, 약 처방받아왔어.”
“그래, 잘 챙겨 먹어.”
“어.” 이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내가 구원해줘야 하는 사람, 그 자체였다.
남편의 어깨가 오늘따라 처져 보인다. 튼튼한 팔다리와 어깨가 자랑인 남편인데, 유난히도 내려간 어깨를 보니, 마냥 웃고 있던 내 입꼬리도 같이 내려간다.
‘뭘 해줄 수 있을까. 남편을 위해. 우선 마음을 편하게 해 줘야겠지. 심기 건드리지 않게 잘해줘야겠다.’라고 결심한 마음은 불과 3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아고 진짜. 맨날 누워만 있을 거야?? 좀 일어나 봐. 그 영화 벌써 3번째 아니야? 도대체 몇 번을 보는 거야? 돈이 나와 밥이 나와. 제발 좀!!”
“어머 머머머머,,,,진짜. 가지가지하네. 이제는 이런 것도 봐??” 뒤늦게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 하고 있는 남편은 드라마의 분위기와 묘하게 닮아있었다. 그게 그렇게도 꼴 보기 싫을 수가 없었다. 밤늦게까지 드라마에 꽂혀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있는 남편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노무 객년기!!!! 나한테 먼저 왔어야 하는데. 그래야 제대로 나의 우울감을 보여줬을 텐데..!!!”
“너랑 나랑 같이 갱년기를 겪으면 우린 아마 같이 못 살지도 몰라. 다행이지 나한테 먼저 와서.”
“으~~ 그!!!!!”
병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얼마간은 괜찮아진 듯 보였다. 건강한 사람이라 이것도 잘 이겨내고 보냈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어제 ‘의욕이 없다.’는 카톡 메시지를 받고 나서 나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음을 또다시 확인했다.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의기소침, 소파동침, 넷플빡침.
이 꼴을 또 어떻게 지켜본담 싶어 나도 모르게 남편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희번덕 하얘진다.
큰딸의 생일파티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고 동굴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고는 밤늦도록 우주여행(넷플릭스 영화)을 시작한다.
이른 새벽 거실에서 마주친 우리는 한없이 낯설다.
말을 섞기 시작하면 싸움이 될 것 같아 냉랭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어젯밤 집에 와서 주무신 엄마가 깨신다. 그나마 다행이다. 둘 사이가 덜 어색할 테니.
늘 그랬듯이 엄마는 주방으로 향하셨다.
“호박 있냐?”
“주말에 사뒀어요. 냉장실에 있으니 꺼내둘게요.”
뚝딱뚝딱하더니, 매콤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애호박을 가늘게 채 썰고, 돼지고기와 파를 듬뿍 넣고서는 고추장을 풀어 매콤하게 끓여내는 호박찌개는 엄마의 으뜸 요리 중 하나다. 남편은 결혼하고는 이 음식을 처음 먹어보았다며 장모님의 호박찌개는 정말 최고라 한다.
출근준비를 마친 남편이 주방으로 들어온다. 아침을 거르지 않는 남편은 냄새에 이끌리듯 주방으로 온 듯한 표정이다. 찌개를 보자마자 큰 그릇을 꺼낸다. 밥을 듬뿍 푼다. 찌개를 산더미처럼 올린다. 한 술 크게 뜬다. 또 뜬다. 계속 뜬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싹 긁어 비워낸다.
“간이 맞던가?”
본인 음식에 늘 한마디를 듣고 싶어 하는 엄마가 묻는다.
“덕분에 정말 잘 먹었습니다. 장모님.”
흐뭇한 표정의 엄마,
그 장면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
‘갱년기 맞아?? 갱년기면 입맛도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 싶었지만
잠시나마 남편을 살맛 나게 해 준 호박찌개, 만들어주신 엄마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시작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