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갱년기를 먼저 경험하고 있는 남편관찰일기5
브라보 마이라이프 나의 인생아~
히히히, 크크크크크크킄
방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남편 소리다.
주말 아침부터 저렇게 웃을 일이 무언가 싶어 들여다본다. 침대에 가로로 누운 채 넥플리스 플렉스 중이다. 한국어로 들리는 거 보니 오늘은 한국드라마인가 보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
”아니, 그냥 웃겨서. “
뭘 보고 있나 싶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화면 속 왼쪽 상단에 걸려있는 제목을 본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슬기로운 시리즈는 의사생활만 본 기억이 있다. 참 잘 만들어진 드라마라 시즌을 모두 챙겨보고 지금도 기다리는 시리즈 중 하나다.
”재밌어? “
”아니 뭐 그냥 보는 거야. “
”웃길래 물어본 거야. “
”... “
방에서 나와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비도는 주말이라 딱히 외출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아 오전 내내 테이블 앞에 앉아 독서도 하고 그리고 내 시간을 오롯이 즐겼다.
물론 남편도 남편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있었다.
식사 시간이 되니 오른손에는 태블릿을 들고 방에서 나온다. 밥을 먹는 내내 눈을 떼지 못한다.
”그거 몇 부작이야? “
”뭐? 드라마? “
”어 “
”16부작, 그런데 1회가 1시간 30분짜리야. “
”헉 “
16*90분=1440분, 24시간, 하루종일 쉬지 않고 봐야 마지막까지 볼 수 있는 드라마!
그렇다는 이야기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 주말 내내 저 드라마를 보고 있겠다는 이야기!
‘저 꼴을 또 어떻게 보지?’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은 이뿐이다.
”주혁이 내일모레면 나가는데 나가서 실컷 보는 게 어때? “
드라마 대사가 들려온다.
감빵인데 내일모레 나가면 드라마가 끝나는 게 아닌가? 이제 거의 다 봤나 보구나 싶어 물어본다. ”이제 마지막 회야. 나간다는데? “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야. 사건이 터질 거야. “
그랬다. 그건 드라마의 시작이다. 1시간 30분짜리 드라마는 더디게 흘러갔다.
”오빠, 내가 신박한 드라마 감상법 알려줘? 나도 최근에 터득한 건데. 시간이 없을 때 이렇게 보니 좋더라고. “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드라마가 궁금해 몇 편의 나만의 비법으로 본 적이 있다. 디테일한 내용과 대사는 모르지만 스토리는 전체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시간을 단축시킨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드라마를 ott로 보기에 가능하다.
바로 1편과 마지막 1편만 보는 거다. 사건의 발단과 결론만 본다. 절정이야 사건이 해결되기 전에 있을 갈등상황이니 그걸 보며 마음 졸이고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다. 그저 왜 이 사건이 벌어지게 되고, 결론은 어떻게 되는지만 궁금하다. 이야기의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 간혹 매 회마다 눈길을 끌게 하는 드라마도 있다. 그럴 땐 1,2,3회까지 충분히 보아준다. 그리고 띄어 넘기, 띄어 넘기로 빠르게 본다.
대단한 비법을 전수하자, ”싫어. “ 외마디 답변이 돌아온다.
침대에서도 소파에서도 식탁에서도 보는 드라마까지는 참을 수 있는데 화장실까지 가지고 들어가는 건 좀 그렇다. 잔소리를 하고 싶지만 괜히 심기를 건드렸다가 조용한 주말이 흐트러질까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못 본척한다.
구석 서재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집에 노래 부를 사람이 없는데 싶어 집중해서 들어본다.
남편이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저 노래가 저렇게도 구슬펐던가.
오십이 된 남편이 부르니 한 맺힌 민요처럼 들린다.
그래! 즐겁우면 그거면 됐지, 드라마 한 편에 살맛 나고 노래 부를 맛 나면 그거면 된 거다.
잘 이겨내라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