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마음 한구석에서는 희미한 감정이 밀려온다.
그 감정은 내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들, 나의 품에서만 울음을 멈추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 알아서 할 줄 아는 것들이 늘어나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딸아이가 어느새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라면도 혼자서 뚝딱 끓여먹는다. 어쩌다 마주한 그 모습이 왜 그리 낯설었을까? 예전에는 “엄마, 양말 신겨줘, 엄마! 준비물 어딨어?” 하며 나를 찾았던 딸아이가 이제는 아무 말 없이 스스로 해낸다. 이제 다 컸다는 기쁨과 함께 나도 모르게 서운함이 스쳤다. 내 품을 떠날 시간이 그리 길지 않겠구나.
아이들은 점점 커져가는데,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아니 나의 존재가 희미해 지고 있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중년이 나이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쓸쓸함 같은 것일 게다.
거실 구석에 있는 초라한 스탠드조명을 떠올린다. 결혼할 때 샀던 그 조명은 가족이 늘어나며 저 멀리 밀려났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위험할까봐, 어느 정도 커서는 환한 불빛 아래서 책을 읽을 아이들을 위해 스탠드불조명은 켜지 않았다. 한때는 집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이제는 빛을 발할 일이 거의 없다. 조명이 켜질 일도 거의 없고, 먼지만 덮여 있다.
나는 그 스탠드조명을 닦으며 나 자신을 떠올렸다. 한때는 가족의 중심에 서 있던 나, 아이들이 "엄마, 엄마!" 하며 나를 불러주던 시간들. 이제는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고, 학교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해간다. 기쁘지만 동시에 텅 빈 듯한 마음이 든다.
조명을 거실 한가운데로 옮겨 본다. 그리고 켜보았다. 방을 부드럽게 밝히는 따뜻한 불빛처럼, 나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들은 커지고 나는 작아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아이들이 커져갈수록 나는 뒤에서 더 넓고 큰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 아이들 개개인의 빛이 강해질수록 나는 그 빛을 받쳐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 이제는 나도 내 마음속 조명을 켜고 조금씩 나를 비추는 연습을 한다. 작아지는 게 아니라, 더 단단해지는 나를 발견해가는 것이다.
"엄마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따뜻한 불빛으로 남아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