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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Jun 03. 2022

파친코를 읽고 기억하다

에피소드5 그녀들은 누구일까

오사카 츠루하시역

일본 속 작은 한국, 코리아타운


역에서 부터 달큰한 불고기 양념(타레) 냄새가 난다.  가게마다 손님들로 가득하다. 

혼바(본고장)의 맛을 찾아 이곳에 온 사람들. 




어학원을 마치면 곧장 츠루하시역으로 향했다. 

역근처에 있었던 가게는 3층 규모의 그 지역에서는 꽤나 알아주는 가게였다. 

시골 출신이었던 나는 큰 식당에서 일해본 것도 처음이었고 식당 안 음식들이 전용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광경도 낯설었다. 

픽사베이 무료이미지


"이랏샤이 유짱(어서와 유짱)"

"콘니찌와"

"유짱, 가게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말은 오후 시간이어도 '오하요~'로 하면 돼."

"하이, 오하요고자이마쓰."

"하잇~, 이랏샤이, 오하요~!"


1층 가게 안을 들어서면 주방요리 담당의 요시오가 매일 같이 환한 얼굴로 반겨준다.  손에는 늘 칼과 고기가 들려있다. 오후 장사 준비, 분주한 손놀림으로 고기를 장만한다. 

나와 마주보며 대화를 하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이 일을 얼마나 한 것일까.' 

칼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30대 초반정도로 보이던 요시오는 이 일을 꽤 오래한 듯하다. 

요시오의 곁에는 주방 일을 도와주는 두 분이 함께 계신다.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자. 


"오하요고자이마쓰."

"........................."

인사를 건네면 힐끔 쳐다볼 뿐 대답없이, 하던 일을 이어간다.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 

어디가 마음에 안드는 걸까. 손님으로 가득한 가게 안에서 서툰 일본어에 느릿느릿 일을 배워나가는 초짜 알바생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일 게다. 분명..

인사를 마치면 곧장 3층으로 올라간다. 2층은 덴쵸(점장)이 담당한다. 

앞서 작은 고깃집에서 일본에서의 아르바이트 삶은 녹녹치 않다는 것을 배웠기에 손님이 없거나 여유있는 시간에는 구석구석 기름때를 닦고 또 닦았다. 기름때로 얼룩진 벽면, 메뉴판, 어디 하나 손 안가는 곳이 없다. 

청소를 마칠 때쯤 되면 손님이 들어선다. 1층에는 1인석으로 되어 있던 곳이라 2인 이상의 손님들은 2층부터 자리를 잡아간다. 3층까지 손님이 채워지는데 한 두시간이면 충분하다. 

소의 혀부터, 간, 그리고 고기 부위부위...2.30종이 넘는 메뉴를 서빙을 하는 동안에도 중얼중얼 외웠다. 거기에 술의 종류도 다양해서 모두 익히는데 시간이 걸렸다. 메뉴판을 들고가서 집에서도 단어외우듯 외우기도 했다. 

한국의 소주 한 병을 시키더라도 그냥 마시는 법이 없다. 찬물을 섞어달라는 사람, 얼음을 넣어 달라는 사람, 따뜻한 물을 부어달라는 사람, 참으로 가지가지. 거기에 더해 1병을 모두 마시는 손님도 드물다. 꼭 반 병 정도는 남기고 이름까지 써서 보관해달라고 한다. 

발음도 힘들었던 메뉴들, 20여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기억하는 걸 보면 필사적으로 외웠다는 표현이 맞겠다. 

발음으로 손님들에게 지적받았던 적도 몇 번 있었는데 한번은 이런 적도 있다. 

회사원으로 보이는 4명의 손님들.

일본에서는 손님에게 주문을 받아적은 후에는 반드시 되읽기를 해서 확인시켜줘야 한다. 


"추어탕(도죠~지루) 1개 맞으시죠?"

"어? 아닌데"

"도죠~지루 1개 아니신가요?"

"도죠~지루 아니고, 도죠~~지루 해봐."

"도죠~~지루."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 너가 발음 하는 것은 도우조(부디, 제발의 의미) 잖아."

"도죠~~지루."

"그래그래, 바로 그럭야. 다음부터 제대로 발음해 알았지? 한국에서 왔지?"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멀리서 지켜보던 덴쵸(점장)이 다가와 괜찮다는 듯 어깨를 두드리고 간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던 그녀는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차분함이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동요하지 않고 차근차근 해결한다. 

손님의 신발에 들고 있던 음식을 쏟았을 때도 그녀가 나서서 도와줬다.

"카마헨와(괜찮아) 유짱, 괜찮으니깐 다시 한 번 손님에게 공손하게 사과하고 돌아와."

손님을 대할 때는 바닥에 반드시 무릎을 꿇고 낮은 자세로 대하던 그녀.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일을 대하는 자세를 보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와타나베상.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재일교포 3세였다. 한국의 성은 김.



1층에 계신 아주머니와 언니는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단지, 일본어를 못할 뿐이었다. 

일본어로 인사하는 나에게 일본어로 답을 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두 분 모두 제주도에서 왔다고 한다.

불법체류.

일본에 온지는 3년, 5년째.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서는 안되는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나의 인사에 반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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