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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Sep 04. 2022

죽음에 대한 단상

죽음

태어날 땐 스스로가 울음을 터트리며 세상에 나와 

세상을 떠날땐 남겨진 이들의 눈물을 보며 돌아간다. 


....


남겨진 이들에게 기억되며 떠난다.

어떤 기억으로 추억되는 삶을 살아보고 싶은가.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되고 말았다. 




목요일 저녁시간.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식사 준비로 분주한 시간,

남편과 내 핸드폰으로 각각 1통의 부재중 전화.

시어머니셨습니다. 

평소 전화 한 통하시고 안 받으시면 두번을 잘 하지 않으시는 분이신데 남편과 저에게 번갈아가며 전화하신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생겼음에 틀림없습니다. 

다급히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요양원에 계시던 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의 전화였습니다. 



시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금요일 저녁. 

그곳의 풍경과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며 '나의 죽음'에 대한 짧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시할머니는 결혼을 하기 위해 시댁에 처음인사를 하러 가서 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할머니를 대하는 식구들의 태도가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남편의 태도에서확실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있다고 직감했습니다. 남편은 어른들에게 매우 예의가 바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 어른에게는 유독 벽같은 걸 사이에 두고 대하는 듯 했습니다. 

직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묘한 분위기의 이유는 결혼식을 마치고 알게 되었습니다. 

친할머니가 아니라는 것을요. 


큰할머니 다음 작은할머니, 드라마에서나 봤을 법한 두번째 부인, 부정적인 어감으로 말하면 소위 첩입니다. 

큰할머니, 그러니 남편의 친할머니가 서른을 갓 넘겼을 때 집으로 들어오셔 7남매를 당당히 낳고 본가 바로 옆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시죠. 진짜 드라마에나 나올 법하죠. 

이 기막힌 사연을 결혼을 하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큰할머니의 삶을 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화가 났습니다. 홧병 탓인지 큰할머니가 가장 먼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에도 작은 할머니는 저희 시어머니의 바로 옆에서 살아오셨습니다. 가까이서 지켜보며 살아오신 집안의 장남이자 장손이신 아버님은 어떤 마음이셨을지 시어머니를 두 분이나 모셔야 했을 어머니는 얼마나 고단하셨을지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듣으면서도 믿지 못할 현실같지 않은 스토리를 명절 때마다 조금씩 들었습니다. 들을 때마다 한번도 뵙지 못했지만 큰할머니의 순탄하지 않은 삶이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을까. 남편의 다른 여자를 눈 앞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괴로움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할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시다 싶을 정도였다고 지금의 식구들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을 알고 난 이후 제가 어떤 태도로 할머니를 대해야할지 조금은 난감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5년 정도가 지나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하루가 다르게 심해져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시댁을 가도 할머니를 뵙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저녁, 어머니를 통해 별세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댁에서는 저희 남편이 장례식장으로 가서 장손의 역할을 해주실 바라셨습니다. 장례식에 도착하여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그곳의 풍경을 지켜보는 동안 동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에 있던 어느 누구도 할머니의 살아생전 모습의 추억담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검은 상복과 어두운 분위기의 조합이 마치 할머니의 삶이 그리 떳떳하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 했습니다. 


평생을 누구네 댁의 첩으로 살아온 할머니, 서류상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7명의 아들딸도 모두 큰할머니의 자식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남들과 다른 삶의 이름은 마지막 가시는 길 장례식장의 빈소안내전광판에서야 떳떳히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결국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나의 인생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살아온 흔적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내가 가는 마지막에는 울음 소리 가득한 슬픔 장면이 아니었으면 한다. 나의 삶을 추억하며, 기억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어주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쩌면 태어났을 때 받았던 기쁨의 축복만큼 돌아가는 길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축복받으로 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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