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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05. 2021

이태준이 아끼고 아끼던 수연산방을 다녀왔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읽고.


‘너무 더웁다. 나뭇잎들이 다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하도록 더웁다. 이렇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보는 재간도 없으리라.’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냐. 하루 왼종일 저 푸른빛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오직 그 푸른 것에 백치와 같이 만족하면서 푸른 채로 있다. -이상의 <권태>


연일 도를 넘는 무더위 속에서 ’이상‘의 문장이 실감 난다. 천하의 ’이상‘이 더위와 초록으로 넘쳐나는 여름의 풍경을 <권태> 속에 잡아끌어다 놓았다. 구본웅이라던가. 이태준이라던가, 박태원 등등의 예술가들과 종로거리를 누비고 다니거나, 다방에 들어앉아 시시콜콜한 예술 잡담을 해야 제격일 이상에게 요양차 머물러야 하는 평안북도의 생활은 <권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언어는 일용잡화와 마찬가지의 생활용품으로 존재한다는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 하면서 여러 예시문을 보여준다. 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본 글이나 교과서에 나온 이름들이라 우선 반갑고 정답다. 사람이든 책이든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낯이 익으면 무장해제를 하게 되고, 기꺼이 마음을 열게 된다. <문장강화>가 그렇다. 시는’지용‘이고, 문장은’태준‘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정지용과 이태준은 각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사람들이다.

 

내가 홀랑 빠져 황홀에 읽은 책 중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있다. 1권이 나왔을 때 나는 몰입이 무엇인지를 이 책을 통해 몸으로 체험했다. 유홍준 선생의 필력은 그만큼 힘찼고, 독자를 매료시켰으며 흡인력이 대단했다. 지식은 풍부하나 글로 풀어내지 못하면 독자에게 전할 수가 없다. 그에게 입담만큼이나 센 글힘이 있었다. 그에게 글힘을 불어넣어 준 책이 바로 이태준의<문장강화>라고 했다. 이태준이 월북을 했으니 그의 저서가 금지되는 건 당연지사. 그는 어느 출판사 사장에게 빌려서 몰래<문장 강화>를 봤단다.

 

시절이 좋아지다 보니 이태준도 해금이 되고, 우리는 대명천지에 떳떳하게 그의 책을 함께 읽고 함께 배운다. 7월은 ’글너머‘ 친구들과 이태준을 ’오빠“라 칭하며 그에게 빠져 살았다.





책을 읽다가 훌떡 일어나 그의 지휘 진두 하에 지었다는 성북동 수연산방(壽硏山房)을 갔다. 1933년부터 1946년 그가 월북하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집안의 물건들과 집을 구분하여 두 딸에게 남겨 준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의 월북은 자신의 뜻으로 보인다. 그 시대의 지식인들이 의례 그랬던 것처럼 좌익사상에 이끌렸던 그의 선택은 당연히 북한이었다. 휘문고보 시절에 친구로 만났던 정지용은 납북 중에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뜰 안에 들어서니 70년 된 사철나무가 우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울타리 용이나 키 작은 정원수로만 보던 사철나무가 이렇게 '클 수도 있구나!.' 좀 놀랐다. 이태준이 월북하고 5년 후에 심은 나무다.




그의 집은 외종손녀가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예약을 하지 못해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영업시간은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월요일은 휴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누마루가 사랑방 역할을 했으며, 이태준이 작은 뜰을 바라보며 글을 썼겠다 생각했다. 뜰은 아담했으며, 주인이 떠나고 심어졌을 배롱나무가 땡볕 아래 꽃을 피워냈다. 다투어 꽃이 피는 시기를 피해 고아하게 여름에 피는 목백일홍은, 선비의 자존을 나타낸다.  부화뇌동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이 나무를 심음으로써 공표하는 것이다. 이 나무도 주인이 떠난 뒤 심었는지 등걸에 세월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시대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드나들며 사랑방 노릇을 했을 고택은 의연했다. 빅 자이언트! 수연산방에서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뜰의 낮은 부분에 자리 잡은, 이제는 쓸모가 없는 우물만이 주인과의 옛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듯 담장과 눈을 맞추고 있다. 꽃은 계절의 순리에 따라 피고 지고, 땅 밑, 수맥은 세월을 거슬러 흐르고 있다. 




예약한 손님들이 하나둘씩 입장을 하고 나면 정적이 감돌았다.  




별채는 비어 있고. 북 카페 <구인회>간판이 보였다. 구인회는 멤버가 아홉 명인 문학단체이다. 처음 발기한 인원들이  나가고,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최후엔 이태준, 정지용, 박태원, 이상, 김유정, 김환태, 김기림 등 9인회 답게 9명이 이끌어 갔다.

시가 아름답고, 문장이 뛰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예문으로 자주 등장하는 <정지용>과는 우정 이상의 애정이 느껴진다. 정지용이 <문장>지에서 추천한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은 청록파로도 유명하다. 

또한 예문으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상'의 작품들은 읽고 또 읽어도 기발하고 신선하다. 그가 27세로 요절하지 않고 천수를 누렸더라면 더 좋은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누군가 일언지하에 자른 사람의 말은,  'NO'였다. 짧은 생애를 압축해서 평생 쓸 것을 불꽃처럼 토해 놓고 갔다고 했다. 천재 '이상'의 작품들은 <문학 교본>으로 삼아도 좋을 터. 이태준이 조선중앙일보 편집부장으로 근무할 때 '이상'의 <오감도>를 연재한 사건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난해한 시에 대한 항의는 30편 중 15편을 싣는 것으로 막을 내려야 했다. 사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로 <오감도>연재에 꿋꿋했다. 천재는 천재가 알아보는 법이다.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는 휘문고보 시절 그의 선생님이었다. 이병기 시인의 글도 예문에서 자주 보인다.




차가 막혔다. 왕복 3간쯤 소요됐으나 그의 고택을 다녀온 마음은 대단한 무더위임에도 서늘했다. 서늘하다는 상태는 마음이 평안해졌다는 뜻으로 나름 해석했다. 터가 좋으니 평안했을까!

다시 문장강화로 돌아오자.

<문장강화>는 1939년 그가 주관하던 <문장>지 창간호부터 연재되던 것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문장의 작법은 물론 문장과 언어를 비롯하여 산문과 운문, 각종 문장의 요령, 퇴고의 이론과 실체, 대상의 표현과 문체에 이르도록 <예문>을 들어가며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가령, 기행문은 어찌어찌 써야 한다고 제시하며 예문을 드는 형식이다.

 

<글은 아무리 소품이든 대작이든, 마치 개미면 개미, 호랑이면 호랑이처럼, 머리가 있고 몸이 있고 꼬리가 있는, 일종의 생명체이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한 구절,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인, 생명체적인 글에서는, 전체적이요 생명체적인 것이 되기 위해 말에서보다 더 설계하고 더 선책하고 더 조직. 개발. 통제하는 공부와 기술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한 공부가 <문장작법>이라고 설명했다.

 

인상에 남는 말은 폴 발레리의 말을 빌려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지 한 가지 말밖에 없다’며 그 한 말, 그 한 동사, 그 한 형용사를 찾아내야 한다는 ‘모파상’의 말을 상기시켰다. 유일어를 찾으라는 말씀이다.            

글쓴이의 됨됨이가 첫마디부터 드러나는 글이 수필이다. 그 사람의 자연관, 인생관, 그 사람의 습성, 취미, 그 사람의 지식과 이상, 이런 모든 '그 사람의 것'이 직접 재료로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수필은 심적 나체다.


그렇다. 글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안에서 내 날것의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 글이다. 나를 가꾸기는 등한시하고 글만 가꾸려는 마음은 , 국빈이 왔을 때, 또는 권력자가 통과하는데 초라하고 불결한 것들을 가린 채 근본을 개선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통령에게 임대주택의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4000여만 원을 투입해 수리를 한 주택은 실제의 현장이 아니다. 교활한 눈가림뿐이다. 눈가림 속에서 자라는 것은 음모의 독버섯이다. 글을 잘 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글과 함께 내면이 다져지는 발판이 됐으면 좋겠다.


 끝으로 우리가 '태준 오빠'라는 애정 가득한 눈으로 찬사를 보낸 이태준의 말씀을 덧붙인다.


좋은 글을 쓰려는 노력은 좋은 말을 쓰려는 노력일 것이다. 생활은 자꾸 새로워지고 있다. 말은 자꾸 낡아지고 있다. 말은 영구히 ‘헌 것’, ‘부족한 것’으로 존재한다. 이미 존재하는 어떤 언어에도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끊임없는 새 언어의 탐구자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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